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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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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한 천사와 해바라기 -2- 「에리쨩... 괜찮은 거 맞지? 응?」 나도 모르게 다그치듯이 물었다. 불안함이 목소리에 묻어나 가늘게 떨렸다.옆에 선 우미와 코토리, 그리고 1학년들까지. 모두가 경직된 표정으로 에리를 바라봤다. 에리가 가벼운 한숨을 내쉰 다음 다시 숨을 들이켰다.그 숨쉬는 소리가 병실안에 가득 울려퍼졌을 정도로, 다들 호흡하는것조차 잊어버리고 에리가 할 말에 집중했다. 에리는 입꼬리를 올리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평생, 제대로 걷지 못할 수도 있대.」 에리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웃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웃고있는 에리의 얼굴은 우는것보다도 훨씬 슬퍼보였다. 에리의 시선은 우리를 향하고 있었지만, 눈동자 속에는 우리가 담겨있지 않았다.하늘이 비치는 연못만큼 맑고 푸르던 에리의 눈이, 바닥이 갈아엎어진 웅덩이처..
추락한 천사와 해바라기 -1- 평화로운 일상이, 호노카와 함께 잡은 손이.지금 이 순간 하나하나가 내겐 너무나 소중해서, 언제까지고 계속 되길 바랐다. 장애물이 나타난다면 서로 어깨를 기대며,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누가 보란듯이 자신만만하게 외칠 때도 있었다.언제든지 호노카와 함께라고,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장애물은 생각한것보다 수십배만큼이나 거대했다.가까이 다가가려 하는것만으로도 짓눌리고 상처를 입었다.아픔을 참고 온힘을 다해 밀어내려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커지기만 해서, 포기하고 싶어졌어. - 「우와아!」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8월의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꽤 긴 시간동안 걸어다녔기에 땀이 뺨을타고 주르륵 흘러내렸지만.그 노력을 보상해주려는 듯, 알록달록 예쁜 꽃으로 가득 찬 공원이 눈앞을 반겨주자 기운이 잔뜩 ..
별의 곁에 머물고 싶어 -完- [이전 이야기] 재수 이후 의사 면허 시험에서 여러 번 탈락한 마키는 점점 무감각한 삶을 살아간다.그러던 도중 수년간 연락이 끊겼던 니코와 우연히 마주쳐 연락하고, 니코의 초대로 라이브 공연을 직관한다.하지만 니코에게 옮은 감기 때문에 도중에 뛰쳐나와 쓰러진다.공연을 끝마친 후 마키를 찾아낸 니코는 쓰러진 마키를 부축해 집으로 데려온다. - - - - 「오늘 당번인가보네?」 방과 후 혼자 부실의 책상을 열심히 닦고 있던 니코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니코는 고개를 저었다. 「난 부장이잖아. 다른 애들한테 청소를 맡길 순 없지.」 「나도 도울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신경 안 써도 괜찮아. 마키는 지금까지처럼 뮤즈를 위해서 좋은 노래를 만들면, 그거로 됐어.」 그렇게 태연히 말했지만 니코는..
별의 곁에 머물고 싶어 -3- 마키는 책상에 턱을 괸 채 티켓을 눈앞에 대고 살랑살랑 흔들었다.니코의 단독 라이브의 최전열 티켓.너무 작아서 아직도 어린 아이같은 손으로 티켓을 내밀며「와줄 거지?」하고 조심스럽게 묻던 니코. 마키는 창문 너머로, 니코의 자그마한 입에 커다랗게 피어난 함박웃음을 떠올렸다.자연스러운 웃음.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현재의 열정에 충실한 웃음.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웃음. 마키가 멋대로 해석한 것일 뿐이지만, 니코의 미소는 그녀가 가진 엉성한 미소와는 달랐다. 웃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웃으면 저절로 기쁜 감정이 생겨난다는 유명한 말이 생각나 억지로 입 꼬리를 올렸다. 창문에 비친 마키의 웃음은, 지켜보는 사람을 웃음짓게 만들정도로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그녀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주진 못했다. 「순 엉터리..
별의 곁에 머물고 싶어 -2- 「...오랜만이야.」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겨우 한 마디를 뱉었다.대답이 돌아오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긴 연락의 공백은 서로에게 어색함을 남긴다.니코 쪽에서도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고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래. 오랜만이네.』 「…….」 『마키. 방금 전엔 왜 도망친 거야? 아니, 그보다 이 근처에 사는 거였어?』 「...이것저것 일이 있어서. 혼자 자취해.」 『일?』 「응.」 전화기를 잡은 손끝이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제발 그 이상은 묻지 말아줘' 라는 바보 같은 심정이 니코에게 전해지기를 바랐다. 충동적으로 전화를 걸어버린게 후회스러웠다.지금까지 줄곧 니코와는 연관되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왜 니코에게 전화를 걸었던 거지?우연히 니코와 마주쳤을 때 느꼈던 기쁨 때문일..
별의 곁에 머물고 싶어 -1- 「후우ㅡ」 아직은 추운 3월의 늦은 밤. 추위가 느껴져 숨을 불어냈지만 입김은 나오지 않았다.바람이 살짝 불어와 단추가 풀린 재킷을 뒤로 밀어내려했다.대충 옷을 여미고 팔짱을 꼈더니 한결 따듯해진 기분. 마키는 비니를 눌러쓰고 지겨울 만큼 익숙해진 거리를 주욱 훑어보았다.이 방향으로 한참 걷다보면 모퉁이, 그 모퉁이를 돈 다음 좀 더 걸으면 편의점. 집 근처의 편의점은 썩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끼니를 값싼 돈으로 해결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적었다. 손가락으로 세려면 손을 열 번은 쥐었다 폈다 해야 할 만큼 편의점을 제집처럼 들락날락했더니, 이젠 편의점 직원이 주로 사는 물품을 기억할 정도였다.『어서 오세요! 담배는 늘 피던걸로 드릴까요? 아, 오늘은 토마토샌드위치가 떨어졌는데ㅡ』같..
노조에리 초콜릿 작전 아무도 없는 한적한 부실.천천히 문이 열리며 그녀들이 들어온다. “저기 니코. 초콜릿 만들었어? 응? 만들었지!” “에? 당연하지. 너희들한테 주려고 사랑이 담긴 수제♡러브니코♡초콜릿을 잔뜩 만들어왔다고.” “그런 걸 아무런 표정변화도 없이 잘도 말하는 구나…….” “먹고 싶어! 니코가 직접 만든 수제♡러브니코♡초콜릿 먹고 싶어!” 2월 14일.BiBi 유닛 곡의 연습을 위해 모인 그녀들이었지만, 연습 이야기는 온데간데없이 어느 샌가 발렌타인 초콜릿 이야기로 변질되고 말았다. 시초는 아야세 에리였다.초콜릿을 보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하는 그녀로써 발렌타인데이는 그야말로 사랑의 결실, 1년이라는 긴 세월 사이의 하루뿐인 축복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사물함은 후배들의 사랑이 담긴 초콜릿으로 가득 차..
호노카의 저녁 어두운 밤이 찾아올 무렵, 호노카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창문 밖에선 달빛이 쏟아져 그녀의 방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책상 위엔 노트북 하나가 올려져 있었고 그곳에는 어라이즈의 영상이 끝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호노카는 그 영상을 끝까지 보게 되면 다시 반복해 처음부터 보는 것을 되풀이했다. 그래서 어라이즈의 노래는 멈출 줄 몰랐다. 방 가득 계속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녀의 방에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시야를 비추는 유일한 빛은 형광등이 아닌 달빛이었다. 호노카는 되풀이해서 재생하는 것을 수십 번 한 뒤 어느 순간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 그만두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침대로 향해 등을 맞대고 두고 누워버렸다. 호노카의 눈빛에는 어쩐지 서글픈 분위기가 자리 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