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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호노카의 저녁

어두운 밤이 찾아올 무렵, 호노카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창문 밖에선 달빛이 쏟아져 그녀의 방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책상 위엔 노트북 하나가 올려져 있었고 그곳에는 어라이즈의 영상이 끝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호노카는 그 영상을 끝까지 보게 되면 다시 반복해 처음부터 보는 것을 되풀이했다. 그래서 어라이즈의 노래는 멈출 줄 몰랐다. 방 가득 계속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녀의 방에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시야를 비추는 유일한 빛은 형광등이 아닌 달빛이었다. 호노카는 되풀이해서 재생하는 것을 수십 번 한 뒤 어느 순간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 그만두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침대로 향해 등을 맞대고 두고 누워버렸다. 호노카의 눈빛에는 어쩐지 서글픈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그렇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혹은 생각이 너무 많아 하나씩 정리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방 바깥에서 유키호가 '새로 만든 제품'을 먹어보라고 말까지 했지만 호노카에게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유키호는 소리가 전혀 들려오지 않자 귀를 방문에 대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유키호의 귓가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궁금해진 그녀는 언니의 방문을 열었다. 사실 걱정되는 면도 있었다.


유키호는 무력한 호노카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 모습은 언니에게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기에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그녀는 꽤 당황했다. 그래서 살짝 호노카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새로 만든 화과자 안 먹어볼래?"


그러나 호노카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마치 유키호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유키호는 이번엔 늘어진 호노카의 한쪽 팔을 살짝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호노카는 별 반응이 없었다. 단지 다른 쪽 팔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가려버렸다. 그리고 입으로 이런 말을 건넸다.


"미안. 지금 먹고 싶지가 않은데, 나가줄래?"


그러나 유키호가 나갈 리가 없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그녀는 오히려 양쪽 발을 더 굳건히 두었다. 유키호가 열고 온 방문 틈으로는 방 바깥의 형광등 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 빛은 호노카의 얼굴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 줘. 이런 건 언니 모습이 아니잖아. 무슨 일 있는 거지?"


호노카는 잠깐 대답하지 않기를 원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유키호가 여전히 그녀의 침대 앞에 서 가만히 기다리는 것을 알고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어라이즈 말이야."


유키호는 살짝 놀랐다. 언니가 어라이즈에 대한 이야기로 자신의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짧은 시간에 '그 문제구나.'하는 생각이 그녀 머릿속에 스쳤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유키호는 '왜 그런 고민을 하는 거야?'라고 당장에라도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너무 침울한 호노카를 보고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마음을 고쳐먹고는 호노카의 팔을 살짝 잡고 이렇게 말했다.


"어라이즈 영상 봤어?"


호노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으로도 모자라 여러 번 그랬다.


"너무 많이 보지 마. 선배 그룹은 적당히 보고 배우는 것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잖아."


"너무 멋지잖아. 정말 빛나잖아. 어떻게 안 볼 수가 있어? 그들과 경쟁하는 나조차도 이렇게 미친 듯이 반복해서 보게 하는데, 내가 어떻게 이길 수 있지? 가끔 너무 말도 안 되는 모험에 내 욕심으로 멤버들을 몰아세운 것 같아. 결국 상처만 받고 끝나지 않을까? 그냥 평범하게 학교 생활하면 될 텐데. 우리가 어떻게 폐교를 막아? 괜히 희망만 주고 다 끝나 버리겠지."


그러나 유키호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이번엔 참을 수 없었다. 순간 호노카의 팔을 잡은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호노카는 그 힘에 놀라 살짝 팔을 흔들고 놀란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유키호에게서 심상치 않은 표정이 감돌았다.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한 건 언니였잖아."


호노카는 어쩐지 소리를 높여 반박했다.


"그때는 그랬지. 아무것도 모르고 금방 하면 척척 다 배우고 따라잡을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더라. 해도 안 되는 게 있더라. 그냥 하면 되는 줄 알았던 그게 사실 엄청난 재능이더라. 내가 해도 잡지 못하는 거였어. 애초에 평범한 사람들도 아니었던 거야. 어라이즈는!"


"그들처럼 해보기는 했어? 매일 운동한다면서 우미 언니가 연락해야 겨우 일어나고 나가지 않았어?"


"처음엔 나도 그렇지 않았어! 그런데 하면 할수록 그 격차가 더 눈에 보여서, 계속 생각나서 집중을 못 하겠더라. 쓸모없는 노력인 것 같고 그래서 허튼짓 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거 아닌가 싶었어. 그런데 일이 너무 크게 벌어진 거야. 지금은 정말 돌이킬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도 안 나잖아."


유키호는 오히려 그 말에 살짝 마음이 풀어졌다. 호노카의 솔직한 말을 듣고 싶었고 매일 요즘 그녀가 입버릇처럼 하는 '어라이즈 새 무대 영상 봤어?' 와 같은 소리로 짐작하고 있었던 속마음을 직접 알게 되었으니. 그래서 지난 시간 그 말에 대답해 줄 것도 미리 생각하고 있던 그녀였다. 그리고 그 기회가 지금 찾아온 순간 유키호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언니."


호노카에게는 그 말이 와 닿지 않았다.


"지금 물론 그럴 수 있겠지만, 어쩌면 가장 황당한 말은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에게 육상 선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인지도 몰라."


호노카는 미동이 없었다. 속으로 듣고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가로막고 있는지 겉만 봐서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유키호는 자신의 말이 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잖아? 황당하잖아. 어라이즈도 처음이 있었을 거야. 누구든지 꿈을 시작하는 건 앞선 사람들을 동경하면서부터야. 그러면 그들의 시작은 어땠을까? 시작부터 완벽했을 거라고? 어떻게 사람이 그래. 가장 어리석은 비교인 거야."


호노카는 단지 얼굴을 가린 팔을 내린 것 외에는 다른 반응이 없었다. 유키호는 등을 돌리고 호노카의 방 바깥으로 천천히 걸어 빠져나갔다.


"마음 풀리면 먹으러 내려와."


아주 조용한 발걸음으로 그녀는 호노카의 방문을 닫았다. 문고리의 '딸각'소리가 살짝 호노카의 귓가에 스쳤다. 호노카는 문이 닫히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침대에 걸터앉아 노트북에 일시정지 된 어라이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아예 일어나서 노트북을 닫았다. 호노카의 입에선 작게 노랫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가능성을 느꼈는걸. 그래 나아가자. 후회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고개를 들어 창문 밖 달을 바라보고 노래를 이어갔다.


"바로 눈앞에 우리의 길이 있는 걸."


호노카의 몸에서 힘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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