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날들

“호노카?”

우미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호노카는 잠시 머릿속에서 떠오르던 생각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지 우미는 놀란 표정으로 호노카를 바라보고 있었고 갑자기 심각한 것 같은 상황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냐고 되묻는 호노카의 말에 그런 감정이 담겨 있었다.

우미는 호노카가 단순한 물음에 심하게 놀란 것 같아서 어리둥절했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오토노키자카의 아침 햇빛이 우미의 뒷머리를 향해 따뜻해지는 동안 호노카는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멍하니 있었다. 우미의 한 손에는 펜이 들려있었고 그 손 밑에 적혀있는 가사들 주변엔 지우개의 흔적들이 가득 남았다.

“무슨 생각하길래 그렇게 놀란 건가요?”

호노카는 그냥 살짝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별일 아니야. 그런데 왜?”

“그냥 너무 눈에 초점이 없길래 무슨 일이 있는건지, 궁금했어요.”

호노카가 앉아있는 책상 위에는 교과서가 마구 어지럽힌 채로 호노카의 손에 구겨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보고 ‘어’하고 놀라더니 손을 황급히 떼서 제대로 책을 폈다. 그래도 여전히 책은 많이 손상되어서 원상태로 만들기는 힘들어 보였다. 호노카는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다시 우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신곡 가사 준비는 다 된 거야?”

호노카의 말에 우미는 잠시 고민하더니 솔직히 대답해주었다.

“아니요. 도저히 생각이 잘 안 나서 전에 쓴 가사도 참고하고 단어들도 찾아보는데 잘 안되는 중이에요. 호노카는 다음 라이브 준비 잘하고 있어요?”

호노카는 잠깐 고개를 위로 올리고 ‘그런 게 있었나’하는 표정으로 기억을 짚어가는 듯 보였다. 우미는 호노카가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보다가 나중에야 알고는 호노카에게 다그치듯이 말했다.

“설마 호노카 잊어버린 거에요? 지금 멤버들이 직전 라이브 끝나고 놀고 있는 것 같아도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가사 옆에서 쓰는 것 보고 드는 생각도 없어요?”

호노카는 우미의 그런 말투에 살짝 당황하여 서둘러 둘러대었다.

“미안해. 요즘 정신이 없어서. 그런데 그래도 아직 다음 라이브는 엄청나게 많이 남았잖아! 잠깐 쉬자고 당분간 옥상에 올라가지 말자고 해놓고는. 그거 우미가 한 말 아니었어?”

우미는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호노카가 뭔가 쉬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이상해지는지, 자기는 항상 열심히 하는데 호노카는 대충하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서인지, 따지고 보면 호노카가 연습할 때 만큼은 대단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뭔가 안심이 안 되었다.

“오늘부터 다시 만나서 연습하기로 했으니까 이제 다시 시작이에요.”

“알아 나도!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호노카는 억울한 감정이 들어 조금 따지듯이 대답했다. 우미는 언제나 엄마가 잔소리하듯이 그녀에게 말을 하고 보호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게 사실 가끔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엄마보다도 더 많이 그런 소리를 들어서 요즘은 뮤즈 활동과 겹쳐서 피곤하기도 했다. 그래도 말을 들으면 대부분 좋은 방향으로 가니 분명 우미는 좋은 친구지만, 듣는 것 자체가 힘든 날도 많았다.

그때 호노카의 등 뒤로 회색 머리를 한 갈색 눈동자가 다가왔다. 그리고 한 번에 확 튀는 목소리가 그녀들에게 향했다.

“호노카?”

호노카는 아주 잠시간 ‘왜 사람들은 나만 자꾸 부르나?’ 했지만 코토리가 울적한 기분을 풀어줄 것 같은 생각에 적극적으로 코토리에게 대답했다. 고개까지 휙 돌리고서.

“코토리! 우미가 또 잔소리한다.”

코토리는 언제나 보이는 부드러운 눈웃음으로 상냥하게 타일렀다.

“그래도 우미 말 들어서 나쁜 일은 없었잖아.”

“그건 그렇지만.”

호노카는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말고 그냥 축 팔을 내린 채로 앞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인지 아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겉만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코토리가 다시 물었다.

“무슨 고민 있어?”

사실 호노카는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안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코토리가 워낙 상냥하게 말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이야기해 버렸다.

“나 살찐 것 같지 않아?”

내심 우미는 호노카가 심각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느라 힘든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가끔 호노카가 활발하고 힘이 넘치는 성격이어도 혹시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울거나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상상도 해본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방금 호노카의 대답에 우미는 안심의 웃음 혹은 호노카의 귀여움 때문인지 미소가 지어졌다.

“별걱정 아니네요?”

우미가 말하자 호노카는 억울하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내가 말했잖아! 별일 아니라고.”

그러나 그 말투가 심한 감정이 들어있지는 않아서 누구도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코토리는 기분을 전환해주려고 그녀가 좋아하는 말을 꺼내기로 작정했다.

“호노카! 내 생각에는 하나도 안 쪘어. 오늘도 맛있는 빵 먹으러 갈래?”

그런데 호노카의 말은 꽤 예상 밖이었다.

“아니야. 내가 보기엔 엄청나게 쪘어. 진짜야.”

“내가 보기에는 하나도 안 그런데.”

코토리의 이어지는 말에도 호노카는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살에 대한 고민이 큰 것 같았다. 우미는 조금의 조언을 주려고 말을 꺼내려 했지만, 그때 마침 수업의 시작을 알리며 선생님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기에 더 말을 할 수 없었다. 코토리와 우미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호노카는 손을 살짝 흔들며 수업은 ‘아무 상관 없다’는 것처럼 교과서에 고개를 박듯이 ‘쿵’ 소리 내며 붙였다. 그러나 곧 이마에서 시작된 통증이 그녀에게 다가가서 힘들어하던 와중에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져 손으로 황급히 자신의 이마를 만지던 호노카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우미가 좋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건가요?”

라는 입 모양으로 우미가 소리 없이 말하자 호노카는 당황하고 변명을 하려 했다.

“아니.”

그러나 자기가 소리 없이 말하는 것을 깜빡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서둘러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이미 선생님은 그녀의 말을 듣고 한마디 하게 되었다.

“호노카. 요즘 매일 자기만 하는데, 오늘은 들어야지.”

호노카는 그보다 더할 수 없는 표정으로 죄송하다는 것을 표현하면서 선생님께 한마디 한 후 그 수업시간 내내 조용히 있었다.

“죄송합니다.”

우미는 언제나처럼 꼼꼼히 들었고 코토리도 평소처럼 열심히 교과서를 써가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수업시간이 끝난 것은 호노카가 잠에 막 들었다가 깬 직후였다. 사실 호노카는 그동안 꿈을 하나 꾸었다. 꿈의 내용은 간단했다. 길을 걷다가 일이 꼬여서 이리저리 도망치게 되었는데(무슨 이유인지는 몰랐다.) 갑자기 우미가 나타나서 길을 알려줘서 간신히 살게 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꿈에서 깬 것도 우미 때문이었다.

“호노카? 수업 끝났어요. 또 잔 거에요?”

호노카는 눈에 강하게 내리쬐는 한낮의 빛을 맞아서 눈을 떴다. 뜬 그곳에는 우미와 코토리가 서서 책상에 누운 자신을 내려보고 있었다. 호노카는 가만히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는 이렇게 말했다.

“점심시간이지!”

호노카가 그렇게 점심을 맞아 벌떡 일어나 다른 두 멤버와 함께 먹으러 가는 동안, 오토노키자카 고교의 다른 한 곳에선 니코가 먹는 것도 잊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니코는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듯 맞서면서 대화하는 사람의 말을 하나하나 반박해나갔다. 그 목소리가 너무 완강해 말하는 한 사람은 살짝 지칠 법도 했지만, 그녀도 물러서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그래도 분명히 안무 수정은 못 해.”

“어차피 니코가 안무 만들어 온 것도 아니잖아? 에리한테 물어봐.”

니코는 마주한 빨간 머리의 1학년에게서 아예 등까지 돌리고 섰다. 지나친 흥분 뒤 찾아온 차가운 공기가 그들을 갈라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도저히 가만히 있어서는 풀릴 것 같지 않은 이상한 시간이 흐르던 중 그들이 서 있는 음악실 앞 복도에 에리가 나타났다. 그녀 옆에는 노조미가 조용한 걸음으로 뒤따라오듯이 천천히 오고 있었다. 에리는 단번에 간파하고 마키와 니코에게 다가갔다. 사실 그녀도 안무 이야기를 할 참이었다.

“무슨 일이야?”

에리의 말은 마치 그들을 혼내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순간 싸우던 둘 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에리가 전 학생회장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낮고 어딘가 무거운 말에 니코는 마치 자백하듯이 실토했다.

“마키가 신곡을 수정했다는 소식 들었어?”

에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왜 갑자기 차갑게 된 거야?”

니코는 억울하다는 듯이 거침없이 대답을 이어갔다. 그동안 마키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나는 솔직히 그대로 곡을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맞춰서 계속 연습까지 해왔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바꾼다는 게 말이 돼? 이건 좀 아니지 않아?”

에리는 가만히 있던 마키에게도 말할 시간을 주었다.

“솔직히 의미를 모르겠네. 아직 다 같이 만나서 연습하지도 않았잖아? 그동안 내가 곡 만들어서 온 건데 안무 바꾸고 다시 연습할 시간은 충분한데.”

에리는 난감했다. 둘 다 이유가 있었지만 솔직히 그녀의 판단은 마키의 생각에 가까웠다. 그러나 니코가 요즘 남몰래 남아서 오래도록 연습하는 것을 아는 것도 에리와 노조미뿐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해오던 니코 입장에선 마키가 쉽게 곡을 수정하고 안무도 바꿔 버리는 것이 활동에 대해 가볍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에리는 마키의 입장을 지지하는 대신에 적당한 타협을 원했다.

“그러지 말고 오늘 일단 다 만나서 같이 연습하기로 했으니까 그때 이야기 하자. 모두와 같이 이야기하면 더 쉽게 풀릴 거야.”

그리고 에리는 마키에게 잠시 후 보자는 인사를 하고 니코를 데려갔다. 니코는 아직도 약간은 굳은 표정으로 음악실 앞 복도를 지나서 갔다. 마키와 멀어지는 그들 사이에서 노조미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마키는 멀어지는 삼 학년 세 명을 바라보다 등을 돌려 반대쪽 복도로 향했다. 린과 하나요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날 점심시간은 모두에게 유난히 짧게 느껴졌다. 어쩌면 다시 연습이 시작하는 탓에 설렘이 가득해서 일지도 몰랐다. 일과가 끝나고 오토노키자카의 옥상에 모인 그녀들은 서로의 인원을 확인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했다.

“니코랑 노조미, 호노카, 우미, 코토리도 왔고 린, 하나요, 마키까지. 다 왔네. 오늘부터 다시 연습 제대로 시작이야!”

에리의 선언이랄까 기운을 불어주는 스포츠단의 주장 같은 모습에 호노카는 살짝 부러워졌다. 리더라고는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이런 역할은 에리가 전담하고 있었기에 자신감이 떨어지려 하는 때도 종종 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도 호노카 성격이 아니었기에 그럴 때마다 더 힘내서 뭔가 하자고 말하는 것이 그녀의 버릇이었다. 호노카는 에리의 말을 받아 한층 힘차게 외치듯이 말했다.

“그러면, 뮤즈 다 모였지? 안무 연습부터 하자!”

우미가 옆에서 거들어주었다.

“그런데 들어보니 마키가 곡을 약간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어떻게 된 건가요? 안무는 그대로 하는 건가요?”

우미가 꺼낸 마키의 신곡 수정 소식을 호노카와 코토리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자 우미가 다시 덧붙였다.

“소식 못 들었어요? 마키가 신곡을 수정했다고 하던데.”

우미의 말에 에리가 살짝 정정해 주었다.

“신곡의 일부를 수정했다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곡으로 대체하겠다는 뜻이야.”

“아, 그런가요. 그러면 안무는 당연히 바꾸어야 하겠네요. 그러면 전부터 각자 어느 정도 연습하던 그 안무는 안 쓰이는 건가요?”

우미의 그 차분한 질문에 니코가 나타나 대답했다.

“그런데 사실 거기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니코의 얼굴로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니코는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그대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가 신곡을 미리 정해두고 안무까지 어느 정도 맞춰 놓았잖아?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그걸 완벽하게 맞추는 연습을 해야 하는 시기인데 갑자기 또 곡을 바꾸고 안무도 새로 만드는 건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니코 말을 듣고 가만히 있던 마키도 나섰다.

“나도 많이 생각했어. 그런데 정말 새로 만든 곡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 연습 쉬는 동안 내내 그것만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안 쓰는 건 상상을 안 해봤어.”

서로의 입장이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에리가 나섰다.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 다른 멤버들은 어떻게 생각해? 니코랑 마키는 멤버들 의견대로 할 거야?”

마키는 다시 대답하지 않았고 니코는 고민을 조금 하다가 수락했다.

“멤버들 의견대로 해야지. 어쨌든 내 의견만 고집할 수 없으니.”

니코의 말에 멤버들은 하나같이 당황스러워했다. 잘못하면 니코나 마키가 속상해할 일이 될지도 몰랐다. 그래서 대답하는 멤버는 없었다. 에리의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말이 무색할 정도가 되었다. 그 말이 허공에 흩뿌려진 것처럼 되자 에리는 먼저 입을 열었다. 가만히 있으면 더 상황이 나빠질 것 같았다.

“사실 내가 할 말이 있는데, 니코에 대한 말이야.”

니코는 순간 에리를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에리는 순간 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들이 눈을 마주치고 에리 입에선 정적이 흐르니 다른 멤버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둘만 아는 비밀이 있는 것인지 상상하는 멤버나 갈피를 못 잡고 어리둥절한 멤버도 있었다. 다시 이상한 분위기가 되자 결국 나선 건 노조미였다.

“니코가 부끄러워 하는구마. 걱정 말레이. 말해주지 않으면 멤버들이 니코를 이해 못 할 것이레이.”

여전히 다른 멤버들은 어리둥절할 때 노조미는 그냥 니코에 대해 말 해버렸다.

“니코가 사실 우리가 다 쉴 때 그 안무로 연습 엄청나게 했구마. 스쿨 아이돌이라는 게 니코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제? 그렇게 좋아해서 몰래 연습도 많이 했는데 갑자기 쉽게 바꾸고 그러는 게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데이. 활동을 결정할 때 쉽게 수정하는 것보다 책임감을 느끼고 하자는 이야기 아닐까, 생각하는기다.”

노조미가 그 말을 하고도 그들 사이에 침묵이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 약간은 들뜬 것 같지만 마냥 활기차지 않은 공기 사이에서 먼저 말을 꺼낸 건 역시 호노카였다. 그 높으면서 절대 가라앉지 않는 말투가 새어 나오자 그래도 뮤즈는 안심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니코는 우리가 가볍게 생각하는 걸 싫어하는 거야. 맞지? 그런데 마키가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신곡을 가져온 것도 아니야. 분명히 생각이 있고 오래도록 준비를 해서 가져온 신곡이니까. 그러면 이렇게 생각을 해 봐. 어차피 신곡은 언젠가 쓸 거잖아? 그러면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안무는 이 곡이 아니면 쓸 수 없으니까, 버려지게 되니까, 니코가 연습한 게 의미 없어지지 않도록 쓰자!”

호노카는 자기가 말하고도 내심 놀랐다. 생각에 꽤 좋은 해결책 같았다. 그래서 뿌듯해 하는 동안 우미가 옆에서 칭찬 비슷한 것을 해주었다.

“호노카. 아무 생각 없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럴 때 호노카가 필요하네요.”

“우미, 그거 칭찬이라고 하기엔 조금 그렇지 않을까?”

코토리가 조심스럽게 묻자 호노카가 이어받아 반박했다.

“맞아! 나도 생각 많이 하고 있다고. 매일 놀기만 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집에서도 뮤즈 생각만 하는데!”

그리고 어느 정도 말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자 에리가 그 낮고 강한 목소리로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자자, 그러니까 곡은 그대로 쓰기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마키 생각은 어때?”

사실 마키는 노조미가 아까 말을 할 때부터 표정이 상당히 풀려있었고 지금은 살짝 웃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온 말은 역시, 호노카와 같은 생각이었다.

“신곡은 언제든지 쓸 수 있으니까. 안무 그대로 가자.”

에리는 그제야 사건이 잠잠해진 것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입 밖으로 내쉬었다. 적잖이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고 하나요가 위로해주었다.

“에리 진짜 긴장 많이 했나 봐. 우리가 싸우면 안 되지.”

에리는 순간 자기가 그들의 결성 자체를 막을 뻔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때 뮤즈는 속으로 이것보다 더하게 싸웠을까, 혹시 자기가 과거의 뮤즈를 정말 힘들게 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갑자기 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에리에게 노조미가 다가오더니 에리를 살짝 토닥여주었다.

“무슨 생각 하나? 연습해야지 않겠나.”

그날 그 연습은 약간의 다툼 뒤에 있어서였는지 다들 평소보다 열성적이었다. 아무래도 지난 약간의 시간 동안 잠깐 쉬면서 가다듬었던 것이 하고 싶은 마음을 더 키웠다. 멤버들은 누구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다른 생각이나 딴청 피우는 것도 없이 연습에 임했다.

노조미의 한 마디에 에리는 연습 내내 집중할 수 있었다. 자기가 어떻게 과거 뮤즈를 망치다시피 했는지도 다 알고 있었다. 이런 순간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상상은 정말 아찔했다. 그러나 자기가 없었다면 뮤즈가 어떻게 안무를 만들고 연습을 체계화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연습을 앞두고 과거를 생각하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어쩌면 그 이후에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후가 다 지나고 서서히 해 질 녘이 다가올 때쯤 뮤즈는 내일을 위해 작별인사를 했다. 각 학년은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 작은 소그룹으로 모여 집으로 향했다. 열심히 연습하느라 힘들었던 나머지 다들 축 처져 있었다. 그렇게 활기찬 호노카도 그랬다. 그저 간신히 가방을 들고 무거운 몸과 함께 옥상 아래 계단으로 내려갔다.

“호노카?”

살짝 그녀가 휘청이자 우미가 다가와서 잡아주었다. 놀란 우미는 몸 상태를 물었다.

“괜찮은 건가요?”

“응. 그냥 오랜만에 합동 연습이라 무리를 좀 했나 봐. 미안. 괜찮아. 안 잡아줘도 돼. 지난번에 크게 덴 뒤로 이제 몸 상태 봐가면서 하니까. 그렇게 무리한 건 아니야.”

우미는 안심이 되었다. 호노카의 말이 진중하게 느껴졌다. ‘뮤즈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걱정할 필요 없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입에서도 미소가 조금 지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내일 아침 연습은 조금 늦게 나와도 돼?”

우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갑작스레 은근히 화가 났다.

“진지해진 줄 알았는데 또 그러기에요?”

“미안 미안. 그냥 조금 힘들어서 장난스레 한 건데 왜 그래.”

코토리가 호노카를 거들어주었다.

“힘들어서 장난 좀 친 거일 거야.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호노카 요즘 연습에 늦은 거 본 적이 없어. 혼자서 다이어트 걱정까지 하는걸.”

우미도 생각해보니 그랬다. 호노카는 확실히 전보다 진지해졌다. 우미는 이제 호노카에 대해 안심을 해 볼까, 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학교 정문을 빠져나갔다. 어느새 학교 밖 하늘에는 주황빛 해가 긴 여운을 남기면서 사라지고 있었다.

오히려 그날 집에 가는 길은 다들 말이 없었다. 몸이 힘들어서일지도 몰랐다. 코토리나 우미나 호노카도 별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분위기가 내려간 것은 아니었다. 모두 쏟아내고 난 뒤의 후련한 기분 같은 것이어서 모두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각자의 집으로 향해 갈라지는 그제야 인사 몇 마디 나누고는 피곤한 몸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몇 시간 뒷면 아침에 또 만나게 될 테니까.

“언니 왔어?”

유키호가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호노카에게 인사를 건넸다. 척 보기에도 많이 힘들어 보여서 인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가방까지 들어주고 호노카의 방에 가져다줄 정도였다. 올라가는 계단도 버거워 보였다.

“오늘 연습 시작한 날이구나?”

호노카는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누워 쓰러져버렸다. 조금도 몸을 움직이기 싫은 모양인지 정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유키호는 말없이 방문을 닫고 나와 거실로 내려갔다. 귀찮게 하기는 싫었다.

아래로 내려오자 유키호의 엄마는 거실에 앉아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녀도 자세히 다가가 같이 보니 그것은 뮤즈에 관한 사진이나 스쿨 아이돌 샵에 있는 관련 상품들이었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언제 엄마가 그것을 샀는지 몰랐다.

“그거 뮤즈 아니야?”

유키호의 말에 그녀의 엄마는 잠깐 놀랐지만, 곧 그렇다고 대답해주었다. 다가오는 딸을 마다치 않고 책상 위의 물품들을 보여주면서 어떤 것인지 설명해주었다.

“오늘 밖에 걷고 있는데 스쿨 아이돌 샵이 있더라고. 들어가서 보니까 호노카 것도 있길래 사 왔어. 예쁘지?”

유키호가 자세히 보니 호노카도 분명히 보였다. 그녀는 뮤즈가 인기를 서서히 얻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되었다.

“나 하나 가져가도 돼?”

유키호의 물음에 그녀의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하지. 다 너 가져. 나는 그냥 지나가다가 이런 게 있길래 놀라서 사온 거야.”

유키호는 몇 가지를 가지고 자기의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호노카가 나와서 씻은 뒤 저녁을 먹을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호노카는 사라진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어리둥절했다.

“엄마! 유키호 어디 갔어?”

그녀의 엄마는 방을 가리켰고 호노카는 그 앞으로 가서 문을 몇 번 두들겼다.

“유키호. 밥 먹자. 저녁 다 됐어.”

몇 번의 발걸음이 들리고 문이 열렸다. 안에서 나온 그녀는 손에 든 몇 가지 물건들을 호노카 앞에 보여주었다. 물건들에는 호노카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웃고 있는 눈동자가 호노카를 마주했다.

“이런 거 본 적 있어? 스쿨 아이돌 샵에 언니 관련 상품도 나왔대.”

“응? 알고 있었는데. 너 몰랐어?”

오히려 유키호가 놀란 표정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언제부터 있었어?”

“전부터 있었는데. 이번 러브라이브 참가하기 전부터.”

“그렇게 인기가 많았어?”

호노카는 조금 섭섭했다. 유키호가 당연히 아는 줄 알았다. 그래서 대답하는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뮤즈 괜히 하는 게 아니야. 벌써 팬도 많이 생겼고 순위도 높아졌어.”

그날 저녁을 먹는 내내 호노카는 뮤즈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사실 활동을 시작한 이후 뮤즈 생각을 안 한 적이 없지만 그 날 저녁은 한순간도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요즘 그녀에게 뮤즈가 없으면 아무런 생활도 없는 느낌이었다. 삶 일부도 아니고 그냥 삶이 된 느낌까지 들었다. 유키호의 말에 지금까지 뮤즈가 해왔던 것들을 생각하게 되자 먹는 내내 약간의 울컥함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생각하고 싶었다. 먹는 둥 마는 둥 재빨리 저녁 식사를 보내고 방으로 올라갔다. 원래 느리게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날은 더 빨랐다.

“벌써 올라가?”

엄마의 물음에 호노카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응. 저녁 맛있었어!”

올라간 그녀는 방문을 닫고 불을 껐다. 연습을 다시 시작한 날이어서인지 유키호의 말 덕분에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어서인지는 몰랐다. 어쩌면 둘 다가 겹쳤을 수도 있었다. 올라오는 감정은 순식간에 호노카를 덮어갔다.

그녀는 책상으로 향해 닫힌 노트북을 폈다. 그리고 인터넷에 접속해 뮤즈의 첫 라이브 영상을 보았다. 그곳에는 아직 세 명뿐인 그들이 있었다. 뮤즈라고 쓰여 있기는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2학년 만의 모습. 무대 위 세 명은 은근히 낯설었다. 늘 아홉 명이었는데.

그래도 배경의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는 다른 여섯의 멤버가 숨어있을 것이었다. 첫 라이브 때부터 뮤즈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였다. 셋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호노카는 여섯 명이 모이게 된 라이브 영상도 찾아내었다. 그곳에는 1학년 멤버가 더해져 있었다.

“주머니에 지도도 없어. 즐거움은 아직아직 아직아직 이제부터!”

노트북에서 재생되는 노래가 새삼 호노카에게 와 닿았다. 우미가 만든 가사는 언젠가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때 떠올랐다. 호노카 자신이 처음 에리 앞에서 말했던 그 말이. ‘언젠가 이 강당을 가득 채워 보일 거에요!’라는 말이. 스스로 말해놓고도 잊고 있었다.

“정말 이루어졌네.”

혼잣말이었다. 그런데 호노카는 전혀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꽉 찬 느낌이었다.

“우미 그러고 보니 가사 잘 쓰네.”

호노카는 말해놓고도 어이가 없었달까 약간 웃음이 지어졌다. 이렇게 좋은 가사들 평소에 칭찬도 잘 해주지 못했다. 다들 에리의 춤이나 몸짓, 마키의 노래는 많이 신경 쓰고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왜 우미에게는?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우미 생각을 한번 시작하니 끊임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지난 오랜 시간 그녀가 지칠 때마다 잡아주고 나태해질 때마다 일깨워 준 것이 우미였다. 호노카는 우미가 그럴 때마다 잔소리한다고 하기만 했던 것이 떠올랐다. 얼마나 많이 뮤즈를 생각하고 우미가 그런 말을 했을까, 호노카는 반성까지 했다.

무언가 생각이 나면 바로 하는 게 호노카였다. 바로 휴대전화를 켜고 우미의 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눌러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게 갔다. 안 받는가 싶던 때에 소리가 끊기고 우미의 말이 들렸다.

“여보세요?”

“우미?”

우미는 갑자기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걱정부터 들었다.

“무슨 일 있는 건가요? 호노카?”

호노카는 별일 아니라며 안심시켜주었다.

“아니야. 별일 아니야. 그냥 갑자기 우미 생각나서 전화했어. 이상해?”

“이상하지는 않습니다만, 한밤중이라.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어요.”

“우미는 내 걱정밖에 안 해?”

우미는 살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호노카가 무슨 감성적인 영화라도 한 편 보았나 싶었다. 그래서 그에 맞춰 대답해주었다.

“호노카 뭐 하고 있어요? 밤이라 그런 건가요? 목소리도 그렇고 슬픈 영화 같은 거 본 거에요?”

“아니. 나 뮤즈 예전 영상들 봤어. 처음에 세 명이 시작할 때랑 여섯 명일 때 모습도. 그런데 우미, 가사 진짜 잘 썼더라. 그렇게 잘 썼는지 생각 못 했어.”

“이제 알아주는 거에요? 솔직히 가사 쓰느라 힘들다구요.”

우미의 목소리는 무언가 굉장히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호노카는 그냥 그 말을 하고 싶었다.

“가사 잘 써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

그리고 호노카는 우미와 이야기를 몇십 분 더 했다.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나서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다행히 우미도 싫어하지 않고 동감해주었다. 처음 호노카가 어라이즈를 보고 하자고 했던 때부터 니코를 설득하던 때, 모두 추억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지난 뒤 호노카는 인사를 보내고 전화를 끊었다. 우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자기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우미와의 대화에서도 다 풀리지 않았는지 호노카는 아홉 명이 처음 모인 영상까지 마저 재생시켰다. 그리고 여러 번 반복했다. 자기 전까지 쭉.

호노카가 잠이 든 때는 새벽이 다 지나서였다.

한편 우미는 다음 날 아침을 맞아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이제 연습이 시작되었으니 다시 몸 상태를 가다듬을 필요를 느꼈기에 늦을 수가 없었다. 서둘러 씻은 뒤 교복으로 갈아입은 우미는 집을 나서서 코토리와 만나는 장소에 가서 기다렸다. 코토리는 17분 정도 지난 뒤 우미에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코토리 왔어요?”

“응!”

코토리의 대답이 밝아서 우미는 기분이 좋았다. 어제 많이 무리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다른 멤버들도 준비를 착실히 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문득 우미는 어제 호노카와 했던 전화가 떠올랐다.

“맞다. 코토리, 어제 호노카랑 밤에 전화통화 했어요.”

“응. 그런데?”

우미는 코토리에게도 말을 듣고 묻고 싶었다.

“호노카가 예전 뮤즈 영상들 보고 감명받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 하더라고요. 나도 처음부터 생각해보고 그러니까 진짜 많은 일이 있었다고 생각이 들던데, 어때요?”

“음? 나도 좋아. 사실 나도 그때 생각 많이 해.”

“처음 우리 세 명 시작하던 때요?”

코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절은 다른 멤버들은 모르는 2학년 만의 이야기. 그들만의 추억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었는데 많은 것이 결정된 시기였는지 코토리도 그때가 유독 길게 느껴졌다.

“난 처음에 호노카가 스쿨 아이돌 하겠다고 했을 때 사실 속으로도 좋아했어.”

코토리의 말을 우미는 어느 정도 예상하였다. 우미가 반대할 때도 코토리는 준비하고 있던 것처럼 쉽게 승낙했었으니까.

“사실 말이야, 나도 그런 거 해보고 싶었거든. 텔레비전에서 볼 때마다 의상들 보면 ‘나도 저런 거 만들고 싶다.’하고 집에서 생각해 본 적도 있었어. 말 안 해서 몰랐지?”

“네. 전혀 몰랐어요.”

코토리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호노카가 하겠다고 해서 기분 좋았어. 어렴풋이 매일 학교 왔다 갔다 하면서 했던 생각이었는데, 막연한 꿈이라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호노카가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어. 그래서 바로 하겠다고 한 거야.”

우미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집을 읽고 시를 쓰거나 하는 것은 분명 혼자만의 취미였는데 이제는 인정받을 정도로 뮤즈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호노카랑 어렸을 때 우리 만난 거. 어쩌면 우리에게 최고의 행운이었는지도.”

“거기까지 가는 건가요?”

코토리는 타이르듯이 다시 말했다.

“친구로서 이렇게 오랫동안 지내는 건 쉬운 게 아니잖아? 가끔 나는 호노카랑 우미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둘은 그렇게 이야기하다 어느덧 오토노키자카에 도착했다. 정문 앞에서 에리와 노조미를 발견한 둘은 빨리 다가가 인사했다.

“노조미, 에리!”

우미의 말에 둘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같이 아침 인사를 보냈다. 특히 에리는 목소리에 힘이 가득해서 순간 움찔할 정도였다. 그러나 싫어서가 아니라, 몸을 타고 힘이 들어오는 느낌 때문이었다.

“코토리랑 우미 왔구나. 오늘 날씨가 많이 화창하네.”

“확실히 그런 것 같네요. 아침 햇살이 맑아요.”

에리와 노조미는 조금 뒤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3학년 교실로 향했다. 코토리와 우미도 그들의 교실로 들어갔다.

들어간 교실에 호노카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역시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호노카가 최근에 늦은 경우도 없었기에 그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호노카가 일찍 일어난다면 같이 올 수 있을 텐데.”

우미는 아쉬워하는 말투로 혼잣말을 내었다. 코토리도 그 점은 아쉬웠다. 대신 화제를 전환하며 뮤즈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우미, 가사는 평소에 준비하고 있다가 그렇게 쓰는 거야 아니면 곡이 나오고 그때부터 열심히 준비하는 거야?”

우미는 뜬금없는 물음에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음, 글쎄요. 곡이 만들어지고 나면 본격적으로 작업하는 건 맞지만.”

그리고 조금이 시간이 지난 뒤 덧붙였다.

“가사는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코토리는 다 듣지 않았지만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이어서 하는 말을 잠자코 들었다.

“평소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요.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언젠가 가사에 쓰면 좋겠다, 이러면서요. 그러다 음악이 주어지면 생각해웠던 것을 옮긴다고 해야 할까. 그런 거에요. 코토리는 디자인 어떻게 해요?”

“나도 비슷해. 갑자기 떠오를 때도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니야.”

“역시 그렇군요. 나는 코토리의 그런 미적 감각이 자주 부러워요.”

둘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때에 교실 문을 열고 호노카가 나타났다. 전혀 아프지 않은 쾌활한 모습이었다.

“호노카 오늘도 안 늦었네. 그럴 줄 알았어.”

코토리는 오자마자 호노카에게 그런 말을 했다. 이럴 때 보면 코토리는 호노카를 평소에 정말 많이 신경 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어디를 가거나 무엇을 해도 호노카 이야기는 끊긴 적이 없었다.

“오늘 진짜 일찍 일어났는데 배가 아파서 늦었어. 정말이야!”

호노카는 억울하다며 그렇게 말했다.

“뭐라고 한 적 없어. 우미도 호노카 지각 안 한다고 이야기하던 중이었어.”

코토리의 상냥한 말에 호노카도 좋은 표정이었다.

“참, 오늘도 수업 하나도 안 들을 건가요?”

“어제 새벽 다 돼서 자서 못 들을 것 같은데?”

우미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수업을 듣기 싫다고 안 듣는 사고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한다고 해서 호노카가 수업을 듣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더 말하지는 않았다. 대신 호노카가 좋아할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코토리도 그때 호노카에게 고마워하고 있어요.”

호노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자 우미가 더 설명해주었다.

“어제 전화했던 이야기 말이에요.”

호노카는 ‘아!’하고 같이 이야기했다.

“코토리도 처음에 반대하지 않았어?”

“음? 나는 사실 몰래 스쿨 아이돌 하고 싶어 했어. 그래서 호노카가 그런 말 하니까 고마워서 바로 하겠다고 했지.”

“그랬나?”

호노카는 내심 고마웠다. 하길 잘했다는 생각에 괜히 자기가 뿌듯하기도 했다. 리더의 자격에 종종 의문을 가지는 스스로였지만 시작의 생각만 하면 왜 멤버들이 자기를 리더로 뽑는지도 알 것 같았다. 여전히 많이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아침은 그렇게 지나가고 또다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호노카는 잤고 우미는 열심히 듣고 코토리는 열심히 썼다. 아무렴 큰 상관 없었다. 편안한 일상, 익숙한 모습, 그게 2학년 이었다.

한편 1학년 교실은 단 한 반으로 이루어져 마키와 하나요와 린도 같은 공간에서 모든 수업을 마쳤다. 마키는 반 안에서도 하나요와 린과 가끔 이야기하는 것을 빼고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도 그랬다.

1학년 모두 오토노키자카의 옥상으로 올라가던 때에 린이 장난스레 슬며시 그것에 관해 말을 해보았다. 마키의 성격이 어떻든지 그저 궁금했다.

“마키는 반에서 이야기를 잘 안 하는 것 같다냐.”

“딱히 별 상관없잖아? 갑자기 그건 왜?”

린은 마키의 기분을 이해하고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마키 자신은 그런 질문은 전부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학생도 있고 저런 학생도 있다면 그녀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그런 질문 비슷한 것을 받을 때마다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전혀 안 오겠지?”

마키의 말에 린은 서둘러 먼저 뛰어 올라가 문밖으로 옥상을 쳐다보았다. 비는 전혀 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하늘은 화창했다. 그래서 아래쪽 계단을 보고 마키에게 대답해주었다.

“응! 전혀 안 올 것 같아. 아침부터 맑았잖아.”

“일기예보에서도 안 온다고 하더라고.”

하나요가 뒤이어 말했다. 마키는 안심되었다. 요즘 부쩍 신곡에 관해 생각해보고 있어서 뮤즈 활동에 더 적극적인 면이 있게 되었다. 마치 호노카처럼. 일기예보를 보고 왔는데도 안심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나요의 말을 듣고서야 일기예보를 믿게 된 마키는 린 옆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화창한 옥상의 햇빛은 들어오는 1학년 모두를 맞아주었다. 사실 오토노키자카의 옥상은 여느 학교의 옥상치고도 꽤 전망이 좋은 편이었다.

“어? 니코 와 있었네?”

니코를 발견한 린이 니코에게 말을 걸었다. 니코는 옥상 한 편에 홀로 서 있어서 문밖에서 보이지 않았다. 니코는 1학년 세 명을 발견하고 자신도 다가갔다.

“왔어? 오늘도 일찍 왔네?”

“그런데 에리랑 노조미는 언제나 가장 일찍 왔는데 조금 늦나 봐.”

하나요는 에리와 노조미가 늦게 온 상황이 낯설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 문을 열면 그들이 맞아주면서 ‘안녕.’하고 손 흔들어주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다 올 때까지 조금 기다리자.”

하나요는 니코가 일찍 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니코, 혼자 와서 뭐 하고 있었어?”

“별것 안 했어. 그냥 온 거야.”

그러나 하나요는 이미 약간 더럽혀진 니코의 신발을 보았다. 분명 먼저 와서 연습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그에 대해 더 말을 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맑은 하늘과 옥상 아래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동안 린과 마키는 안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니코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나갔다.

“모두 왔네?”

그리고 문이 한 번 또 열렸다. 들리는 목소리는 에리였다.

“방금 니코 나갔었는데. 못 봤어?”

“응. 안 그래도 화장실 간다고 하더라. 2학년은 아직 아무도 안 온 거야?”

그때 에리 뒤편에서 2학년 세 명이 나타났다. 밝은 표정이었다.

“좋은 아침! 아니, 오후인가?”

호노카는 펄쩍 뛰더니 옥상으로 뛰어들어왔다. 뒤이어 에리와 노조미, 우미와 코토리가 천천히 걸어들어왔고 모든 멤버들은 니코를 잠깐 기다리면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러고 보니 니코가 오늘 가장 일찍 왔어.”

마키의 말에 다들 니코 관련 이야기를 한마디씩 꺼냈다. 물론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래? 요즘 니코가 열심히 한다니까.”

에리는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조금 쉬어야지, 적당히 하자,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에리가 들어오게 된 것도 멤버들이 부탁해서였는데 자신이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연습량을 줄이려다가도 옥상에 올라오기만 하면 언제나 더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꽤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뮤즈는 시작부터 그런 그룹이었다.

다들 몸을 다 풀었을 때쯤 니코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갑자기 다들 온 모습을 보니 조금 놀란 표정을 지은 니코는 이내 빨리 합류해서 몸을 적극적으로 스트레칭 해주었다.

“니코, 오늘은 ‘니코니코니!’ 안 해?”

호노카의 말에 니코는 한마디 했다.

“호노카가 빵 가져와서 먹으면 나도 할게.”

“엥? 그게 뭐야. 요즘 잘 안 하는 것 같아서.”

이야기를 듣던 우미도 옆에서 이어 말했다.

“니코니코니가 이제 싫어진 건가요?”

그러자 니코는 적극적으로 부정하며 조금 과장된 몸짓으로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 그리고 다들 그 말을 들으니 무언가 완성된 느낌이었다. 제대로 연습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니코니코니!”

자기도 재밌는지 하고서 웃었다. 싫어하는 멤버는 없었다. 마키조차도 미소 지을 정도였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오토노키자카 학원 옥상에서 뮤즈의 아홉멤버는 웃으며 고된 연습을 그렇게 해나갔다.

분명히 재밌는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