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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니시키노 마키, 피아노(Piano)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인데."

하교 하는 길에 뭐가 그리 궁금한지 니시키노 마키에게 어느날 이런 질문이 들어왔다.

"넌 왜 뮤즈에 들어간 거야?"

"질문의 의미를 잘 이해 못하겠는데."

"말 그대로잖아."

트윈테일의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살짝 뾰로퉁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니코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호노카나 코토리, 우미는 애초에 3명이서 뮤즈 원년멤버였으니까 그렇다고 치자. 노조미 녀석은 처음부터 들어갈 생각이 잔뜩 있었으니까 이해가 되고, 하나요나 린, 그리고 에리도 각자 어찌저찌해서 들어갔잖아."

"뭐..."

"너도 그냥 호노카의 막무가내 밀어붙이기 식으로 뮤즈에 들어가게 된 거야?"

"...글쎄."

곱슬머리를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마키.
하굣길을 수놓는 붉은 노을의 빛이 니코와 마키를 비추기 시작한다.
마키가 처음 뮤즈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역시 호노카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최초로 보자면,
음악이라는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좀 더 깊이 들어가볼 필요가 있다.





마키가 처음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그녀의 집안은 의사 가문이고, 음악과는 그다지 접점이 없는 쪽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마키에게도 엄연히 음악을 소중히 하게 된 접점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아직 마키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할아버지이~!"

어렸을 적의 마키는 할아버지가 원장으로 있는 병원에 자주 왔다갔다하곤 했다.
기운차게 뛰어다니는 작은 소녀의 모습은 환자들에게도 병적인 아픔을 잠시 잊게 할 정도로 순수하고 밝은 기운을 내뿜었다.
마키의 방문은 병원측으로서도 대환영. 게다가 마키 본인도 병원에 주로 오고 가는 것을 좋아했다.
큰 병원에는 마키가 좋아하는 피아노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막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마키는 취미로 피아노 건반을 만지는 게 습관이 되었다.
집에서는 아직까지 피아노가 없기에 이렇게 병원에서 자주 연주를 하곤 했다.
아니, 연주라기 보다는 그저 초등학교 여학생이 재미삼아 건반을 두드리는 수준이라고 할까.
그날도 마찬가지.

"흐흠~"

변함없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마키가 순간적으로 인기척을 느낀다.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
어린 아이의 촉감은 매우 좋은 편이다. 
커다란 눈망울이 인기척의 원인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자 막 병실 문이 열리면서 등장한 새하얀 환자복을 입은 20대 초반의 여성.

-짝짝짝.

가녀린 손으로 박수를 쳐준다.
한쪽으로 땋은 머리카락이 청순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마키에게 있어서는 뭐랄까. 유치원 때 보았던 선생님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낯선 인물이라는 사실임에는 변함이 없다.
놀란 마키의 두 눈동자에 살짝 눈물이 가득 차려고 하자, 당황한 여성이 뭔가를 다급하게 찾는다.
작은 스케치북에 끄적끄적 쓰더니 마키에게 보여준다.

-울지 마. 네 연주를 듣고 왔을 뿐이니까.

"...연주?"

마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묻는다.
그러자 여성이 빙그레 웃어주며 마키의 곁으로 다가간다.
살짝 움칫하는 마키였지만, 여성의 부드러운 손이 피아노 건반에 닿자 그 두려움은 눈이 녹듯 사라진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선율.
희고 고운 손가락이 마키의 청각을 빼앗는다.
피아노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날 수 있구나.

"굉장해!"

마키의 눈망울이 여성을 비추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마키는 이 일을 계기로 음악이라는 것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의 이름은 카제츠바키 에리카.
한때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지만, 지금은 병약한 체질 덕분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비운의 여성이다.
그치만 그녀는 늘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마키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더더욱.

-잘했어, 마키.

부드러운 미소가 언제나 마키의 연주를 칭찬해준다.
따스한 손짓이 언제나 마키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하지만 그 상냥함은 오래 가질 못했다.




"어째서..."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마키의 눈 앞에는 평소와 다른 에리카가 누워 있었다.
흰색의 천을 얼굴에 덮고 있는 모습으로.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에리카의 손을 잡는 마키.
하지만...
너무나도 차갑다.
이미 그녀의 손에서는 더 이상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에리카 씨는 그래도 너를 위해 지금까지 힘을 낸 거야."

간호사 언니의 말에 마키는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
병원에서는 허다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죽음은 남아있는 자들의 슬픔이 되어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연주... 더 들려줬어야 했는데..."

마키의 혼잣말을 들은 간호사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한다.

"연주를 들려주다니?"

"에리카 언니가 제 연주를 들어줬기 때문에... 힘낼 수 있었던 거예요..."

"마키... 혹시 몰랐던 거니?"

"네...?"

"에리카 씨는 이미-"





"이상이야."

도중에 말을 끊은 니코가 당황한 표정으로 마키의 팔에 매달린다.

"자, 잠깐만! 정작 중요한 대목을 말해주지 않았잖아?! 에리카 씨가 뭐가 어떻게 되었던 건데!"

"그건 나와 에리카 언니 둘 만의 비밀."

"치사해~!!"

아무리 니코가 애원하고 사정을 해보지만, 마키는 그저 쓴웃음을 지은 채 말해주지 않는다.





에리카는 병원에 입원한 이후부터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마키의 순수한 미소에, 사랑스러운 몸짓에 반응한 것이다.
들리지 않지만, 분명 에리카의 마음에는 닿았을지도 모른다.
마키의 연주가.
그래서 마키는 결심했다.
단순한 청각적인 음악이 아닌, 언젠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울려 퍼질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