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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뮤즈, 꽃의 노래

뮤즈, 꽃의 노래




난 언제나 들러리였다.
누군가의 성공 인생의 지나가는 엑스트라였으며, 수많은 일반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건 현재진행형.
이런 나에게 사소한 시련이 하나 다가오게 되었다.

-자신의 좌우명을 쓰시오.

흰 바탕에 검은색의 글씨가 내 시야에 들어온다.
뒤이어 선생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멤돌기 시작한다.

"너희도 이제 고등학생을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갈 나이니까 하나씩 적어서 내일까지 제출해라. 숙제다."

누군가에게 억지로 좌우명을 만들 것을 강요하는 게 숙제라는 거구나.
사실 딱히 나에게 좌우명따윈 없다. 그저 남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는 것뿐?
그렇다고 내가 전교 1등도 아니고, 체육계에서 우수한 성적을 뽐내는 인물도 아니다.
과연 나에게 좌우명이라는 게 있을까?
인생에 있어서 방향감을 지탱해주는 안내판이 존재할까?
그런 건 없다.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나는 그저 친구들한테 기분 나쁜 오타쿠 소리를 들으면서 얌전히 묻혀 지내게 될 인생이다.

-누군가의 성공 인생에 밑바탕이 될 뿐인 거름인생.

그게 바로 내 삶이다.





친구도 별로 없는 난 소극적인 성격을 지닌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취미생활은 애니메이션 보기.
매 분기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그저 동료를 모아 하나의 목표를 이루자는 뻔하디 뻔한 스토리다.
그중에 '러브라이브'는 나에게 있어서 단순히 여자애들이 하하호호 나와서 떠들뿐인 일상 내용의 한 애니메이션에 불과했다.
그 애니메이션의 성우들이 나와서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에 전국의 오타쿠들이 예매 전쟁을 벌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참가했었다.
그저 우연히... 아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예매에 성공했다는 우월감을 뽐내기 위해 예매했을 뿐이다.
작품성도 없고, 여자애들만 나오는 애니메이션이 뭐가 좋다고 그리 난리인지 모르겠다.

"...너희들도 똑같아."

누군가의 성공 인생의 밑바탕이 되는 거름인생들.
애니메이션 하나에 울고 웃는 그런 녀석들이 모이는 것일 뿐이다.

"표나 되팔아야지."

실컷 자랑질이나 했으니 이제 팔면 된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표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팔리지 않았다.
오히려 암표상이라고 하며 이상한 오해를 받고 말았다.

"그냥 얌전히 1.5배에 팔 것이지."

결국 마지막 전날까지 표를 팔지 못했다.
그저 취소버튼만 누르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 녀석들은 이렇게 러브라이브라는 작품에 열광하는 것일까?
무엇이 거름인생들에게 이렇게 의욕을 불어넣었을까?

"...보러 갈까."

어차피 난 거름인생에 불과하다.
시간 낭비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니까.





영화관 상영을 앞두고, 기분 나쁜 오타쿠들이 포스터와 팜플렛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몰래 사진을 찍고 또 다시 커뮤니티 사이트에 어그로질.
하지만 기분은 통쾌하지 않다.
표를 되팔지 못한 기분일까.
솔직히 용돈 벌이 정도는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젠장."

기분나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상영관에 들어선다.
그러자 형광봉을 들고 있는 녀석들이 벌써부터 두근거리는지 연신 소리치기 시작한다.
야, 야.
고작 사운드 체크를 위해서 트는 노래일 뿐이라고.
그게 뭐라고 벌써부터 미친 짓이야.
하지만 대놓고 이런 소리는 못한다.
거름인생일 뿐인 내가 남들 앞에 당당히 나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거름은 그저 거름일 뿐.
꽃이 피기 위해 양분을 빨리기만 하면 된다.
사람들은 그저 꽃만을 바라보니까.
거름은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인생이다.
거름인생.





이윽고 라이브 화면이 시작됐다.
캐릭터가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연신 미친듯이 환호를 내지르기 시작한다.
형형색색의 형광봉이 어둡던 상영관 안을 수놓는다.
뭐가 이들을 이리도 미치게 만드는 것일까.
그래봤자 너희들도...
...거름인생일 뿐이잖아.
화면 안에서 나오지 않는 2D 여캐나 빨며... 고작 목소리를 담당하는 성우 콘서트나 보는 게 뭐가 그리 즐겁다고.
하지만 녀석들은 열심히 외친다.
들리지 않는 것을 뻔히 알지만 외친다.
들리지 않아.
들리지 않는다고.
거름인생은 성공인생에게 절대로 영향을 미칠 수 없어.
그게 바로 우리들의 신세일 게 뻔하-

"여러분의 목소리, 잘 들려요."

화면 안에 비춰지는 한 성우가 그렇게 말했다.
제대로 우리들을 바라보듯이.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외칠 뿐인 바보들에게,
거름인생들에게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물론, 우리들의 목소리도 잘 들리고 있죠?"

......
... 들리지 않을 리가 없지.
그거야 당연하잖아.
이건 콘서트니까.
그저 콘서트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들릴 리가 없는 거름인생들의 외침소리를, 함성소리를, 성우들은 아주 잘 들린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대답해준다.
큰 목소리로.
러브라이브 라이브 뷰잉이라는,
일본도 아니고 한국이라는 타국에서 펼쳐지는 극장 상영관 안까지 그녀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도달했다.
알 수 없는 일본어 노랫소리였지만, 극장 안 관객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무엇이 이들을 열광적으로 만든 것일까?
왜?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나 또한 열광적으로 소리지를 수 없다.
...그래도.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라이브에 와주신, 그리고 봐주시는 여러분! 러브라이브가 처음 시작할 때, 제가 담당한 호노카가 했던 대사, 기억하시나요?"

이름도 모르는 여자 성우의 말에 모두가 소리친다.
알고 있다고.
제대로 기억한다고.
그리고 여자 성우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외쳤다.

"다 같이 외쳐볼까요? 하나, 둘-"

그리고 이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들은 절대로 거름인생이 아니라는 듯이.

호노카의 성우라 말한 그녀가 의도했던 바로 그 한마디.

그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잠시 침묵을 지킨다.

콘서트 화면 안에서밖에 보지 못한 여성들은 마치 우리들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응원할게요.

내가 무슨 가치가 있다고?
고작해야 거름인생일 뿐인데...
응원할 가치가 있는 인생이 아니라고.
그런데 왜 그녀들은 나를... 아니, 우리를 이토록 응원해주는 것일까.
그 한 마디가 무엇이길래 도대체-

"...씨발, 나도 거름인생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누군가는 노랫소리를 따라했고,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성우를 연신 연호했다.
하지만 난 이렇게 외쳤다.

"나도, 나도 성공인생이 될 수 있다고!!"

거름인생따위는 아무렴 어떠랴.
누군지도 모를 여자들이지만, 그녀들 역시도 누군지도 모를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
고작 거름에 불과한 존재를 화사한 9송이의 꽃들이 응원해주고 있다.
노래해주고 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응원을 받으면...
...보답하고 싶어지잖아...





라이브 뷰잉이 끝난 이후.

"숙제 다들 잘 해왔겠지? 뒤에서 걷어와."

천천히 걷어가는 숙제 종이.
고작해야 좌우명 하나 적는 일이었지만, 다른 녀석들은 그저 명언 책이라든지 인터넷에서 그럴싸 해보이는 문구를 복사해 붙여넣기를 해왔다.
뭐...
나도 다를 바 없나.
누군가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일 뿐이니까.













- 이루어져라, 우리들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