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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야자와 니코, 한 번의 실패 -2(完)-

결전의 날이라 쓰고 추첨의 날이라 읽는다.
오토노키자카 학원 전통 관습이라 불리는 '강당 사용 추첨권'의 날을 맞이한 니코는 대뜸 옆에서 감시 겸 인원 통제를 하고 있는 에리에게 소리친다.

"왜 강당 사용권을 추첨으로 정한 거야?!"

"나도 몰라. 예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하더라."

"이건 전통이 아니라 폐지되어야 할 악습이라고!"

세상에 어느 학교가 강당 사용을 추첨으로 결정한단 말인가. 물론 신청 동아리 숫자가 많아지만 추첨을 통해서 할 수도 있겠지만, 가뜩이나 학생수도 적은 오토노키자카 학원에서 추첨이라는 방식으로 결정해버리니 할 말이 없게 된다.

"그래도 덕분에 학생회로서의 일은 별로 없다 아이가. 편하데이."

노조미의 속 편한 말에 니코의 속은 오히려 뒤집어질 뻔했다.
실질적으로 추첨을 해야 하는 동아리 부장들은 애가 타고 스트레스 질환을 앓을 정도니까 말이다.
응원차로 같이 온 시라카와 미나미가 니코의 손을 잡아주며 말한다.

"괜찮아, 니코라면 할 수 있어."

"괜히 더 긴장되는데..."

그래도 미나미는 이제 남은 아이돌 연구부 부원 중 한 명. 부장인 자신이 힘내지 않으면 아이돌 연구부로서 강당에 올라 자신들이 연습해온 무대조차 보여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이돌 연구부는 그대로 폐지다.
그나마 미나미가 남아줘서 고맙긴 하지만, 적어도 니코가 3학년으로 진학하기 전에 학생 수가 많아져서 좀 더 아이돌 연구부 부원들을 모집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에리에게 아이돌 그룹은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털어놓긴 했지만, 그래도 단 둘이서 연습하면 외로우니까 말이다.

"다음, 아이돌 연구부."

"그, 그럼 간다!"

"힘내, 니코!"

미나미의 응원을 받으며 드디어 돌아가는 추첨 기계 손잡이에 손을 올린다.
천천히.
천천히-
노란 구슬을 뽑으면 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노란 구슬만!
흰 구슬은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으로 손잡이를 돌리는 니코의 눈 앞에...

"아이돌 연구부, 강당 사용 허가권에 당첨됐습니다!"

"해냈다고! 니코가 해냈어!"

미나미와 얼싸안고 진심으로 기뻐하는 니코의 모습에 에리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쉰다.
이제 빼도박도 못하게 아이돌 연구부는 강당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보여줄 무대가 얼마만큼 대단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수지만, 에리나 노조미는 적어도 학교의 존속을 위해 노력하는 니코의 마음을 부정할 생각까진 없었다.
이렇게 해서 단 두 명밖에 남지 않은 아이돌 연구부는 연습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단 둘 뿐이지만, 목표가 생긴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고단한 연습도 행복한 시간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오픈 캠퍼스 당일이 다가오게 된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아이돌 연구부 소속 야자와 니코!"

"시라카와 미나미입니다!"

둘의 소개에 다수의 박수 소리가 이들을 맞이한다.
오픈 캠퍼스 때 강당 사용권을 얻은 아이돌 연구부로서는 단 둘이라는 수적 열세를 운 하나로 극복한 듯한 그런 기분을 만끽할 수밖에 없었다.
강당 말고 다른 곳에 공연을 했다면, 필히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
운이라도 좋다.
그녀들이 노력해온 결과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리고 니코는 생각했다.
본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오토노키자카 학원 아이돌 연구부는 러브라이브에 진출할 수 있다.
목표가 높을지 모르지만, 니코는 미나미와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아이돌로서의 능력치가 우수한 미나미와 함께라면.
스쿨 아이돌 페스티벌따위도 두렵지 않다.

"들어주세요, 'I, My, Me'~!"

반주와 함께 시작된 무대.
단 둘 뿐이지만, 그 어떠한 동아리의 무대보다도 더 활기차고 기운 넘치는 공연이 시작된다.
야자와 니코의 활발함과 귀여움이,
그리고 시라카와 미나미의 능숙한 노래와 춤실력이.
무대 위에서 빛을 보게 된다.
그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공연.
그녀들이 흘린 땀방울은 노력의 산물이 되어 관객들이 함성을 이끌어낸다.
밝게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는 그녀들의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듯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대를 끝낸 니코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관객들의 함성.
이것이 바로 니코가 원했던 무대다.
힘껏 노력하고, 힘껏 노래부르고, 힘껏 춤추고.
그리고 관객들로부터 보상을 받는다.

"니코..."

"미나미...!"

손을 마주잡은 둘은 허리를 숙여 진심으로 관객들에게 인사한다.
부족하지만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오픈 캠퍼스가 끝난 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동아리 부장들을 불러모은 아야세 에리는 이들 앞에 오픈 캠퍼스의 성적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우선..."

그런데 에리의 표정이 좋지 않다.
성공리에 마쳤을 오픈 캠퍼스임에도 불구하고 에리의 입에서는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은 원인을 제공한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 저번에 비해 입학 희망자 숫자가 줄었습니다."

"어째서!"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쪽은 니코였다.
분명 아이돌 연구부가 선보였던 무대는 그 어떤 무대보다도 완벽했다.
호응 역시도 좋은 편에 속했다.
그런데 어째서?

"학생회에서 잘못 조사한 거 아니야?!"

"진정하그레이, 니코치."

"다시 한 번 제대로 조사해봐! 분명 이번 오픈 캠퍼스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고! 그런데 왜 그런 결과가..."

"니코."

에리의 말투가 딱딱해진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게 현실이야."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니코 앞으로 걸어간 에리가 직접 설문 조사를 한 표를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니코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아이돌 연구부의 공연은 오픈 캠퍼스를 통틀어서 하위권에 머물고 있어."

"...말도 안 돼..."

"그게 현실이야, 니코. 네가 미나미와 아무리 힘을 내면서 공연을 했다 해도,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야. 너희들만 만족한 무대였다면, 너희들만이 인정할 수 있는 무대였다면 그건 대실패에 불과하니까."

"시끄러워!!"

니코의 손이 거칠게 에리의 교복 상의를 움켜잡는다.

"니가 아이돌에 대해서 뭘 알아! 나와 미나미에 대해서 뭘 아냐고!"

"적어도 너희들이 열심히 노력해왔다는 사실은 알아. 하지만 그건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했을 뿐이지."

"에리!!"

"현실을 직시해, 니코. 너희들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수준까지 도달했어. 이건 단순히 아이돌 연구부만의 문제가 아니야. 학교 전체의 문제지."

"......"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아이돌은 흔하지 않아."

니코의 손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두 눈가에는 어느새 커다란 눈물방울이 맺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미나미와 열심히 노력해온 니코였지만...
그녀들의 노력은 관객들의 마음에 도달하지 못했다.




결과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특히나 아이돌을 꿈꾸고 있던 시라카와 미나미에게는 더더욱.
그래서 그녀는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전학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이게 뭐야."

아이돌 연구부에 홀로 남아있던 니코에게 미나미는 한 장의 편지봉투를 건낸다.
봉투에 쓰여진 단어는 '퇴부서'.

"여기까지야, 니코."

"......"

"우리들은 도달할 수 없었어. 오토노키자카 학원 아이돌 연구부는... 결국 이 정도까지였던 거야."

"너마저도 우리의 노력을 배신할 생각이야?"

"배신이 아니야, 니코."

미나미 역시도 니코와 같이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둘의 한계를 맛본 자의 절망감.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갈거니까."

그리고 유일한 부원이었던 시라카와 미나미는 그 날을 기점으로 퇴부와 동시에 전학을 가게 되었다.




"후..."

이른 새벽.
오랜만에 좋지 않은 꿈자리를 가지게 된 니코는 작은 한숨을 토해내며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1년 전의 기억.
현 스쿨 아이돌 랭킹 상위권에 위치한 팀 베리언트의 리더, 시라카와 미나미와의 추억.
그리고 과거 아이돌 연구부와의 좋지 않은 기억.

"......"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마키를 바라본다.
지금은 호노카를 필두로 새로 만들어진 '뮤즈'라는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뮤즈로 합류하게 된 니코였지만.
이곳이 과연 니코에게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 장소일까.

"아이돌 연구부처럼 되지 않게 노력하는 수밖에 없겠지."

스스로 또 다시 다짐을 한다.
한 번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