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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마음으로 무지개를 만든다면 -下-




당신의 주변에는, 잠자기 전까지 생각날만한 소중한 사람들이 존재하나요?

혹시 지금은 아니더라도, 과거에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만큼 존재했었나요?


1월 16일. 이제 몇 달 후에 대학생이 되어버리는 고등학교 3학년인 제 주변에는, 소중한 사람이 잔뜩 있어요.


 가족은 물론, 같은 부에서 스쿨 아이돌 활동을 했던 μ's의 선배들 이라든지.

졸업 전까지 보지 못할 것 같았던 귀여운 후배들까지.


으음…이렇게 말만 해서는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 모르겠네요…….


 저는 단 한사람을 잊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더 소중하게 대하고 있어요.

그 사람은 저를 ‘좋아’한다며 여러 행복을 가져다 줬습니다.


 그 사람. 린쨩은 제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머릿속에서 가장 잊고 싶은 사람이기도 해요.

린쨩을 잊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선생님들께 ‘하나요는 정말로 착하구나. 같은 소리를 더 많이 듣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어요. 어째서일까요?

 

 앗, 이거 이야기가 너무 슬퍼지네요.

으음…….저는 지금 방과 후 음악실에서 마키쨩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키쨩은 항상 학교가 끝나면 음악실에 들려 혼자서 피아노를 치거나, 아니면 덤으로 노래를 부르며 굉장히 즐거워보이는 듯 한 표정을 짓습니다.


 언제는 셋이서 함께 하교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오늘은 둘이서 가’ 라든지 ‘끝나고 피아노좀 칠건데.’라고 말해요.

가끔은 같이 음악실에서 노래를 부르며 놀기도 하지만요.


그리고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날이에요. 저는 우산을 집에 두고 왔고요.


그래서 수업시간에 도시락을 먹다 여태까지 복도에서 벌을 서고 있는 린쨩 대신, 먼저 음악실로 가 마키쨩을 기다려봅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기다렸다는 듯이 마키쨩은 문을 천천히 열고 들어왔어요.


 마키쨩은 역시 정말 예뻐요.

자수정 같은 눈동자에, 머리카락은 부드러워서 계속 만지고 싶고, 저와 다르게 허리도 굉장히 얇아서

엄청 부럽다니까요!


 린쨩이 첫눈에 반할만 해요.

별 볼일 없는 소꿉친구인 저보다, 훨씬 예쁘고 목소리도 아름다운 마키쨩 쪽이 더 마음에 들겠죠?



“하나요. 내일 생일이지? 피아노 듣고싶은거면 오늘은-”


“그치만 마키쨩 손 푼다면서 엄청난 곡을 악보도 안보고 연주하잖아. 대단해!”


“그, 그건 오래 쳐서 외워버린거야. 하나요도 연습하면 이 정도는-”


“그나저나, 린쨩이 만들어준 목도리 안쓰고 다니는 거야?”
















마키쨩은 그날 이후로 린쨩이 만들어준 목도리를 한번도 쓰고다닌적이 없었어요.


 어쩌면 제가 보지 못한걸 수도 있겠지만, 그 아이가 열심히 밤새워가며 만든 소중한 목도리인데. 항상 두르고 다니지는 못할지언정 아무생각 없이 집에 나두고 살다니!


정말 마키쨩은 여자의 마음을 모른다니까요. 그래서 니코쨩이랑도 만날 싸우는 거라고요. 


만약 제가 목도리를 받았다면 린쨩이 삐지지 않도록 겨울에는 필수로 착용하고 다닐 텐데 말이에요.




마키쨩은, 이런 부분에서도 서툰 걸까요.




…….




어째서?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노력조차 하지 않은 거야?


 그렇게나 그 아이에게 사랑받는 마키쨩인데, 어째서 그 사랑에 보답해주지 않는 거야?

자신이 린쨩이라는 아이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을, 전혀 기쁘게 생각하지 않는 거야?


그 아이가 기분 나빠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마키쨩만 없었다면, 린쨩은 나와 함께해주었을거야.



지금의 린쨩은 과연 행복할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 아이와 같이 있었으니까, 훨씬 잘 이해해주고, 훨씬 행복하게만들어줄수 있어.


작은 행동하나하나에 두근거릴 것이고, 나를 사랑해주는 만큼 그 아이에게 보답해줄거야. 


응. 그 다음에는,

기분 나빠지는 일 불행해지는 일 없이. 서로 손을 마주잡고 나란히 걸으며-














앗…….














또, 괜한 상상을 해버렸네요.


안타까운 ‘짝’사랑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출처를 알 수없는 원망심으로 가득찬 자그마한 공간이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그 작디작은 방에 빼곡히 자리 잡고 있는 원망은, 어찌나 어두운지 눈앞에 뭐가 있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문턱에 가만히 서서 그 방을 바라보기만 했는데, 조금 두렵기도 하고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마음속의 저는 어느 샌가 어둠이 깔린 방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마키쨩은 저에게 있어서 정말로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더 더욱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을 제게서 뺏어가기 전 까지는 말이에요.



『 잘 어울린다 마키쨩! 사랑해! 』



입에서 멋대로 튀어나오는 ‘뺏어갔다’는 이기적인 표현. 린쨩은 저 대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선택한 것 뿐일 텐데…….


솔직히, 린쨩은 제가 없어도 충분히 행복할거에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마음껏 표출해낼수 있으니까요.



린쨩을 불행하게 만들기 싫었다?

그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는 핑계일 뿐이에요.


이젠 싫어요. 그 ‘특별한 마음’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원망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자꾸만 마음이 원망하라고 시켜요. 그 사람을 저주하라고 명령해요.


저는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어요. 원하지 않는데 복종할 수밖에 없어요.

제 마음이, 시키는걸요.





“혹시, 린이 만들었다는 목도리 말하는 거야?”




마키쨩은 피아노 의자를 끌어내면서 의아한 목소리로 질문을 되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에 제대로 대답해줄 수 있는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 아이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아니, 저는 그저 자괴감에 빠지기 싫었던 것이었을 수도 있겠죠.




“있잖아 마키쨩. 나 린쨩을 엄청 좋아해.


린쨩도 항상 나에게 좋아한다고, 귀엽다고 말해줘.


그런데, 린쨩이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저를 좋아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어째서 저 같은걸 좋아해 주는 걸까요? 


축하한다며 웃는 얼굴로 지켜봐주지는 못할망정 친구를 원망하고, ‘소중한 사람’ 이라는 단어를 마음대로 만들어 붙였다가 뗐다가. 자기 멋대로 사람을 평가했어요.





“린쨩이,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린쨩이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그 옆자리는 내 것이길 원했어.


마키쨩에게 장난칠 때마다, 나에게도 짖굳은 장난을 쳐주길 원했어.


그래서인지 자꾸만 마키쨩을 원망하게 되어버려.


마키쨩이 있어서 내가 불행한 것이라고 느껴버려.


마키쨩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너 말이야. 린을 정말로 ‘사랑’하는구나.”



“아니야, 나는 린쨩을 사랑하지 않아?

 그저 ‘좋아’하는 것뿐이야.”




그런데도 저를 사랑해주길 원해요. 린쨩에게 사랑받고 싶어요. 오로지 저 만이 린쨩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조금 이기적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특별한 사람’이니까요.


독차지하고 싶었어요.

마키쨩과 함께한 3년 동안, 혹시 그 아이를 뺏기면 어쩔까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어요.


뺏기기 전에, 분명히 제 마음을 결정할 것이라고도 다짐해봤어요.


아직 이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는데, 아직 ‘그것’임을 인정하지 못했는데…….




“바보야.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는 거야.”




저는 마키쨩의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째서 눈물이 나오는 걸까요?


분명, 슬프지 않을 텐데.




“만약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면, 나는 어째서 행복하지 않은 거야?

 사랑은 행복한 것이잖아? 행복하지 않으니까 사랑이 아닌 거야…….” 



마키쨩은 제가 우는데도 불과하고 아무런 내색 없이 핸드폰 화면만을 들여다보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만 가자. 린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선 핸드폰을 주머니에 우겨넣고, 저를 보며 꺼냈던 의자를 다시 밀어 넣었습니다. 곧바로 당황한 표정으로 걸어오더니 제 뺨에 흐르는 눈물을 자신의 손등으로 닦아주었어요. 


열심히 울고 있는 저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그저 계속 엉엉 울면서 따라갈 수밖에 없었어요. 눈물이 자꾸만 나와서 온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거든요. 



“…미안. 방금꺼 린이 들었어. 그건 원망해도 괜찮아.”




방금 것을 린이 들었다니요.


아, 핸드폰으로 통화라도 하고있었나보네요. 제가 한 말을 그대로 린쨩이 들어버린거에요.


조금 부끄럽네요. 린쨩이 좋아하는 사람을 원망한다는 제 목소리를 그대로 그 아이가 들어버렸으니까요. 


저는 린쨩이 행복하다면 괜찮았어요. 마키쨩이 고백을 들어줬다는 것은 그 아이가 최고로 행복할 수 있는 선물을

가져다 줬다는 것.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귄다는 것은, 인생 최고의 행복.


행복을 가져다 준 사람을 원망하면 안되는데 말이에요.


왜냐하면,




그걸로 린쨩이 행복하다면,



저는 불행해도…….





불행해도…….














































괜찮지, 않아요…….





























그 아이의 웃는 모습을 사랑해요.


그 아이가 저를 안아줄 때면 심장이 두근거려서 미칠 것 같아요.


그 아이를 저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어떤 존재를 눈물이 나올 정도로 몹시 아끼고, 가슴이 아플 정도로 귀중히 여기며 특별히 대하는 그런 마음.



그것은, 사랑이었어요.



이제야 제 마음을 인정할 수 있어요. 저는 린쨩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늦어버린 감정의 작은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짝사랑에 불과했어요.








그렇게, 제 마음엔 비대신 눈물이 내립니다. 








쏴아아-






선명히 들리는 현실의 빗소리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습니다.

어느새 저는 계단을 내려와 운동장이 바로 보이는 유리문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바깥쪽에는 잔뜩 긴장한 듯한 모습의 린쨩이 우비 하나만 걸친 채 비를 맞고 서있었습니다.



“여섯 번째니까, 괜찮겠지.”


“여, 섯번째?”


“문 열 테니까 각오하고 들어.”



마키쨩은 양팔로 유리문을 강하게 밀어 깨끗하게 양쪽을 열어젖혔습니다. 그러자 바깥의 린쨩은 품안에서 확성기를 꺼내들었습니다.



「 카요찡! 나 내일 감기 걸려서 못 나올 테니까! 이거 꼭 전해주고 싶었어! 」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요.

우비를 쓰고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비를 잔뜩 맞아가며 서있으면, 감기에 걸리는 게 당연할 텐데.


차갑디 차가운 비를 맞으면서까지 해야 하는 말이라면




설마요.






「 그건…….




 가까이 와주면 알려줄게! 빨리! 」







가까이 오라니, 이렇게 비가 잔뜩 오고 우산도 없는데 저기까지 뛰어가라는 걸까요?




“에, 에?”


“하나요. 빨리 나가!”



마키쨩은 거세게 비가 내리는 운동장으로 저를 힘껏 밀쳤습니다.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면 머리 쪽으로 넘어질 듯 한 마키쨩의 힘에 저는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바깥쪽으로 튕겨져 나오듯 몸이 기울었습니다.




제 모습을 본 린쨩은 운동장 반대편으로 휙 던져버렸습니다. 이젠 필요 없다는 듯이 말이에요.




그렇게 한 발자국을 내딛었더니,

















































“나도, 카요찡을 오래 전부터 사랑하고 있었어!”  






































나도, 오래전부터 사랑하고 있었어.





그리고 지금도 널 사랑해.




























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쳐버렸습니다



저는 그대로 뛰어가서 젖을 대로 젖어버린 린쨩을 양팔로 끌어안았습니다.


린쨩의 몸에 닿자마자 안쪽에서 느껴지는 푹신한 감촉.



이렇게나 젖어서 차가울 텐데도, 태양 같은 온기가 저를 감쌌습니다.








“나, 나말이야. 린쨩을 사랑했어. 그치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그저 조금 특별한 마음일 뿐이라고 내 자신을 회피했어.




사실은 린쨩이 날 사랑하지 않을까봐, 두려운 거였는데.”








세상의 시선이 무섭다느니,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느니 전부 거짓말.


사실 그런 것 따위는 하나도 신경쓴 적 없었어요.



만약 린쨩이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면 어쩌지, 정말로 마키쨩을 사랑한다면 어쩌지?


언젠가 몰려올 진실의 공포가 마냥 두렵기만 해서, 되도 않는 핑곗거리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진실이 이렇게 따뜻한 것이라 알았었다면, 조금 더 빨리 이 감정을 내팽겨칠수 있었을 텐데.








“카요찡이랑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었는데,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














노을 진 방과 후의 운동장. 지쳐버린 태양이 저물기 전, 마지막으로 이곳을 비추었습니다. 


그러자 구름 한 점 없는 붉은 하늘에, 오색의 무지개가 떠올랐습니다.



무지개는 얇고 희미해서 눈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여태껏 보아왔던 어느 무지개보다 따스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크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며칠 전  제 마음 속에 떠올랐던 무지개와 너무나도 똑 닮아 있었거든요.



억지로 눈물을 멈추며 만들었던 무지개. 지금까지도 절대 잊지 못하는 그 슬픔의 무지개.



그런데, 그 슬픔의 무지개가 아름다운 무지개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람의 눈물로 만든 무지개인데도, 그렇게나 아름다웠습니다.












눈물로 만든 무지개도 아름다운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마음속에서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이 기쁨의 눈물이라도 슬픔의 눈물이라도, 혹은 하품할 때 나온 눈물이라도.


신은 그저 눈물을 흘린 자에게 따뜻한 태양을 비춰줄 뿐이에요.










이것은 기쁜 사람이든 슬픈 사람이든, 이렇게나 따스한 태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엉망진창으로 부서져버린 감정이 마음속에는 여전히 ‘사랑’이라는 형태로 남아있기에


언젠가 눈물이 멈출 때라면


자신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한번 쯤 믿어보라고 말이에요.


그 마음 속 무지개를 인간은 ‘희망’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으로 무지개를 만들 수 없는 이유는, 어떤 사람이든지간에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미 가지고 있는데 또 만들어질 리가 없잖아요.



저 역시,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거에요. 인정하지 않았더라도 마음 한쪽 구석을 꽉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린쨩은 품속에서 노랗고 푹신한 털실 덩어리를 제 목에 걸어주며 말하였습니다.





“자, 잘 어울린다 카요찡! 사랑해!”








마음으로 무지개를 만든다면, 그것이 한없이 아름다운 이유.


그럼에도 불과하고 직접 무지개를 만들 수 없는 이유. 


신은 어느 순간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무지개가 곁에 있으니 절대 포기하지 말기를 바라기 때문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