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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별빛의 꽃

새삼스러운 질문이지만, 누군가는 린에게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지.

'린은 하나요를 얼마나 좋아해?'라고.

그야 물론 정말정말저엉~말 좋아해! 헤헤. 카요찡은 린과 하나야. 떼어놓고 말할 수가 없다냐.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가끔 보여주시는 사진을 보면 말도 못하던 애기 때부터 카요찡과 둘이 같이 누워있곤 했어. 그렇게 생각하면 신기해. 기억에도 없던 시절부터 우리는 함께였으니까.

항상 카요찡은 상냥하고 착했어. 목소리는 조그맣고 나서길 좋아하지 않지만, 항상 묵묵히 도와주는 스타일이랄까. 모두에게 그래. 그리고 특히..린에게.
중학생 때는 가사실습을 한 적 있었는데 린은 워낙에 산만하니까, 칼에 손을 베였어. 너무 아파서 엉엉 울고 있었는데.
참 신기하지. 카요찡이 호호 불어주면서 반창고를 붙혀주니까 아픈게 씼은 듯이 사라져버렸어. 칼에 베였는데도 오히려 마음 속이 행복해지고 가득차는 느낌. 에헤헤. 너무 바보같은 소리려나. 그치만 린은 이렇게밖에 말을 못하겠는걸.

바보같은 린은 카요찡을 보면 좋아서 더 바보가 되버려.

뭐랄까, 린이 그렇게 마음 먹는게 아니라, 카요찡을 보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달까.

언제 한번, 스스로 그걸 깨닫기 시작한 일이 있었다냐.












그건 하나요가 초등학교 4학년때의 일이었어요.  우리 반은 와카야마현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많은 곳 중 왜 와카야마였냐고 묻는다면, 마침 그때 배우고 있던 사회시간의 진도가 와카야마의 특이성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에요.

뭐, 린쨩은 그런 건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소풍을 왔다는 사실에 마냥 좋아보였지만요. 헤헤.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린 곳은 정말 예쁜 곳이었어요. 논이 펼쳐져 있고 산맥이 집들을 둘러싸고 있는 정말 그림책같은 곳.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싱그럽게 코를 간질였어요. 물론 도쿄도 좋긴 하지만 이런 시골내음은 처음이었던지라 더할나위 없이 좋았죠.

"우오오오! 도착이다냐! 카요찡~! 왔어왔어!"
"그러게~"

자유시간이 되자마자 가방을 내팽개친 린쨩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어요. 빨리 오라고 손짓해대곤 했지만, 아시다시피 린쨩은 조금 빠른게 아니라서요. 히히. 하나요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어요.













점심은 시내쪽의 패밀리 레스토랑 죠나단에서 먹기로 하고 들어갔다냐. 죠나단이라는 이름을 보면 추억이 또 있어. 처음에 린이 몇번을 보고도 읽지 못했거든. 그야...'th'라니 너무 어렵잖아. 헤헤...결국은 카요찡이 가르쳐주고 나서야 발음을 알게 됐지.

주문하고 기다렸더니 얼마 되지 않아서 음식이 나왔다냐. 창가의 자리도 좋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소리쳤어.

"잘 먹겠습니다~"

하고 사이드 메뉴로 나온 튀김을 한 입 물었는데.

"우욹?!"
"린쨩? 왜 그러니!"

휴지에 싸서 뱉었다냐.

"그치만...이 튀김. 안에 생선이 들어가있는데?"
"아~ 린쨩은 생선을 싫어하지."
"후냥~ 왜 하필이면!"

얼굴에 싫은 기색을 한가득 띄우고 고민했다냐. 어쩌지...

"있잖아. 카요찡."
"응?"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카요찡이 먹어주면 안될까?"
"에?"
"아하하. 아니야. 미안하다냥."

카요찡도 조금 별로인듯 보여서 다시 망설였어. 하지만 린의 착각이었던 걸까. 카요찡의 대답은 그런게 아니었어.

"린쨩, 괜찮아? 그걸 하나요에게 줘버리면 양이 너무 적어지잖아."
"뭐?"

역시~! 카요찡은 천사다냐! 걱정해주고 있던 건 그쪽이구나! 당장에 포크로 찍어서 카요찡의 입으로 가져갔다냐.

"린은 문제없어! 고마워. 카요찡. 고마우니까 린이 먹어줄께~"
"에에.."

헤헤. 학교에서도 이러곤 했는데. 급식에 생선 반찬이 나오면 카요찡이 먹어주곤 했어. 항상 카요찡이 도와줘서 참 다행이다냐.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 아~"
"아, 아~"

귀엽게 입을 벌리는 카요찡의 입에 조각을 넣어줬어. 카요찡은 워낙에 잘 먹으니까. 싫어하는 음식도 없구. 입에 넣고 씹은 카요찡은 만족한 듯 웃었다냐.

"맛있네. 린쨩이 생선을 싫어해서 못 먹는게 아쉬운걸."
"으게엑. 괜찮아. 린은. 생선은 정말 싫다니까..."
"자, 린쨩."
"응? 뭐냥?"

카요찡이 태연하게 자기 스테이크 조각을 포크에 꽃아 내밀고 있었어. 무슨 뜻인지 몰랐다냐.

"이게 왜?"
"린쨩. 하나요한테 메뉴의 절반을 다 줘버리게 돼잖아. 그렇게 먹으면 배고플꺼야. 린쨩이 준만큼 하나요의 것도 나눠줄께."
"엥~ 아니야! 괜찮아. 카요찡꺼가 훨씬 더 맛있어 보이는데 미안하잖아."
"린쨩."

카요찡이 쿡쿡 웃어보였다냐.

"괜찮아. 사양말고."
"카요찡."

감동...역시 카요찡이야. 고기 조각 하나에 코끝이 찡해지는 린이 좀 바보같아서 부끄럽긴 하지만 카요찡의 마음이 느껴지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버리는걸. 옛날부터 카요찡은 항상 이랬어. 정말 상냥하고 남을 생각하는게 몸에 배어있다냐. 그 점을 생각하면 린은 조금 무신경해서 반성해야될지도. 기분 좋게 눈을 감고 입에 물었다냐.

"우웅~ 맛있다냐! 카요찡이 먹여주니까 더더더!"
"에헤헤."
"자! 다시 린의 차례야! 카요찡 아~"
"아~"

다시 카요찡이 우물거리다가 풉하고 웃었다냐. 입을 가리고 마저 씹은 카요찡이 다시 포크를 내밀었어.

"린쨩도 아~"
"아앙~"

몇번이나 그렇게 신나게 서로 먹여줬어. 에헤헤! 즐겁다냐!

"후후. 쟤네 좀 봐. 서로 먹여준다."
"귀엽네. 둘다."

문득 주위에서 그런 소리들이 들렸지만 오히려 기분 좋았다냐.












밥을 먹고나서는 기미이데라 사찰을 구경했어요. 오랜 세월 굳건히 서온 그곳은  주위의 벛꽃과 어우러져 신비로우면서도 아늑한 향취를 전해줬습니다. 항상 이렇게 오래 지켜져 내려오는 건축물을 볼때면 새삼 놀라곤 해요. 

그때는 몰랐지만, 린쨩과 하나요의 관계도 그런 사찰만큼이나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게 됐죠. 기뻐요.


"오! 나이스샷! 카요찡~"


린쨩은 집에서 카메라를 가져왔습니다. 린쨩의 아버지께서 쓰시는 비싼 물건이었어요. 아저씨께서 몇번이나 안된다고 하셨지만 결국은 떼를 써서 받아왔다고 해요. 덕분에 몇번이나 귀에 딱지가 앉도록 주의를 들었다고 하네요. 확실히 커다란 본체와 대포같이 긴 렌즈까지 꼭 전문가의 물건 같았어요.


사찰의 한켠에서 하나요가 V자를 하는 모습을 찍어준 린쨩은 뽈뽈뽈 다가와 하나요와 위치를 바꿨습니다. 이번엔 하나요가 이를 드러내고 웃는 린쨩의 모습을 찍어줬습니다. 

문득 이렇게 하다보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어요. 가만히 카메라를 내려다봤습니다. 린쨩이 다가와 물었어요.


"카요찡? 카메라가 안 눌려?"

"아니. 그런게 아니라..."


평화롭고 한적한 사찰의 이곳저곳을 가만히 둘러봤습니다. 가족들, 커플 언니 오빠들, 우르르 몰려온 친구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놀러와 있었어요. 그리고...하나요가 그 중 하나였다는게 다행스러웠습니다. 


'코이즈미는 말을 안해서 속마음을 잘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는 반 친구들도 있었거든요. 하나요의 움츠러드는 성격 탓에 가끔은 잘해주려던 아이들도 불편해하곤 했어요. 그런 하나요를 린쨩은 항상 이끌어주고 힘을 복돋아줬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상냥하게 같이 놀아줬고요.


"린쨩. 사진 찍는 거 정말 재밌다."

"헤헤헤! 그렇지?"

"린쨩이 하나요의 사진을 찍어줄 수 있어서 더더욱. 하나요 혼자였다면 하나요의 모습을 찍을 수 없잖아."

"뭐? 그거야 당연하지~"

"린쨩."

"응?"

"오늘 하나요랑 같이 다녀줘서 고마워."

"...."

"린쨩. 항상 옆에 있어 줄거지?"


그런 하나요의 말에 린쨩은 멀뚱히 눈을 꿈뻑꿈뻑하더니 웃어버렸습니다.


"무슨 소리야~ 자. 빨리 가자냐. 오! 저기 향이다, 향~ 저 향을 받으면 향을 받은 신체부위가 좋아진대! 린은 머리에 좀 묻혀야징~"


막무가내로 손목을 잡고 이끄는 린쨩. 누군가가 봤다면 아마 무신경했다고 오해하겠지만 하나요는 알 수 있었어요. 또다시 진지해지는 하나요가 스스로 불편해질까봐, 분위기가 다운될까봐 아무렇지도 않게 일부러 난리를 피우는 린쨩의 방식이란걸. 린쨩은 정말 상냥했어요. 그때부터 알 수 있었죠.

고마웠습니다.


















여기저기 다니고 구경을 하거나 도시락을 먹는 등, 다 즐거웠다냐. 하지만 뭣보다도 야외 소풍이라면 보물찾기지~!
우리 반은 한 커다란 산을 올랐고 정상에서 선생님이 숨겨놓은 쪽지들을 찾기 시작했다냐.

"카요찡~ 빨리빨리~ 이쪽!"
"린쨩...! 너무 빨라...!"

나뭇가지를 헤치고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냐. 승부다냥! 승부는 이겨야지. 린은 그 시절부터 그런 쪽으론 변함없어서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냐. 1등 상품은 커다란 곰인형이라던데. 린에게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만약 얻게 된다면 카요찡에게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마구 산을 헤집고 다녔어.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고 손에서 나무 껍질 냄새가 났다냐. 그야말로 모험을 했지. 


근데 거기까진 좋았는데. 

돌아갈 일은 조금도 생각치 않았던 거야. 너무 빠져 있었어.

"그런데, 린쨩..."
"응? 왜 그러냥?"
"여기 어디니?"
"...에."

린은 한참이나 두리번거렸지만, 곧 깨달았어. 사방이 나무에 다 똑같이 생긴 곳이란 걸. 깊숙한 산자락 어디로 들어와 있단걸.

자신도 어딨는지 모르겠다는걸.

"큰일났다냐아아아!"

뒤늦게 후회했지만, 뭐 어쩔 수 없었다냐...날이 이미 저물고 있었지만 늦게라도 찾아야지. 하는 수 없이 길을 헤매고 다니기 시작했다냐. 그렇지만...아무리 낙엽을 밟아 걷고 언덕을 올라도 주위에 낯익은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냐.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어. 우리 둘다 아직 핸드폰도 없었고. 그 시절 린은 지금보다도 어리고 생각이 짧곤 해서, 방법을 알 수 없었거든.

"어, 어떻게 하지. 카요찡! 어딘지 모르겠다냐..."
"히에에...!"

카요찡이 단번에 울상을 지었다냐. 아마 린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

우리는 몇시간이고 소리를 치며 다녔지만 돌아오는 대답도 없었고 메아리뿐이었다냐.  항상 듣기만 하던 조난을 린이 당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어. 점점 지치고 힘이 빠졌다냐. 우리는 결국 같이 한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쭈그려 앉았어.

엄청 미안했다냐. 카요찡까지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몇번이고 사과했지만 괜찮다고 린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카요찡이 대단할 뿐이었어. 더더욱 미안해졌다냐.















"흐윽..."
"울지 마. 카요찡. 괜찮을 거다냐."
"그치만...이미 어두워졌는걸...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고."

지금 생각해보면 미안해집니다. 린쨩도 무서운 건 마찬가지였을텐데. 혼자만 이기적으로 울어버렸어요.
하지만 린쨩은 항상 그랬듯이 씩씩하게 외쳤어요.

"괜찮아! 선생님들이 꼭 찾으러 올 거다냐. 울지말고 차분히 기다려보자. 알았지?"
"후윽...응.."

그렇게 말하는 린쨩의 얼굴은 듬직해서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습니다. 조금 창피했지만 눈을 벅벅 문질러 닦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어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잠시 말을 잃었던 우리였지만, 하늘을 올려다본 린쨩이 중얼댔습니다.


"이쁘다냐~ 카요찡. 별들 좀 봐."
"정말...잘 보이네. 집 주변과는 달라."
"응응!"

말그대로, 밤하늘의 별들이 예쁘게 잘 보였어요. 몇개나 될까. 갯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그러고보니까 린쨩은 이름처럼 참 별을 좋아하는구나."
"에헤헤. 그렇지, 뭐..."
"별빛이 가득한 하늘에...또...이름처럼 씩씩하고...린쨩?"
"으, 응!"
"왜 그렇게 떨어?"
"아, 아무것도 아니다냐!"
"..."

지극히 부자연스런 미소를 짓고 있던 린쨩은 입술이 일그러지더니 결국 눈물을 펑펑 쏟기 시작했어요.

"아아아아아앙~! 실은 린도 엄청 무서워~! 집에 두번 다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린쨩...울지 마."


시간이 지나자 칠흙같은 어둠이 덮치고 기온은 더욱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인기척이라고는 없고 뼛속에 스며드는 듯한 추위가 기어왔어요. 두꺼운 아웃도어 점퍼를 입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견디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린쨩..많이 춥니?"
"응...카요찡도?"
"그러네. 추워."

문득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한번 해보기로 마음 먹었죠.

"린쨩. 조금이라도 따뜻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해볼래?"
"오! 정말? 좋아좋아~"
"그래. 그러면 일단 점퍼를 벗어봐."

운이 좋았죠. 둘 다 지퍼가 달린 옷을 입었다는게. TV에서 본 방법대로 해봤어요.

린쨩의 점퍼 지퍼의 왼쪽을 하나요의 점퍼 오른쪽 지퍼와 연결해서 올렸어요. 이렇게 하면 두 옷이 연결되서 꼭 하나의 옷처럼 돼요. 그 커다란 한벌의 옷에 린쨩이 오른쪽팔을 끼워서 다시 입고 하나요가 왼쪽 팔을 집어넣어 입은 뒤 마지막으로 반대쪽 지퍼를 똑같이 잠그면 커다란 합체 점퍼 하나에 둘이 같이 들어가 있게 됩니다. 굉장히 따뜻해요. 서로의 체온을 나눠서 몸을 데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우오오! 따듯해!"
"헤헤. 그렇지?"
"카요찡! 똑똑하다냐. 이런 신기한 거 어디서 배웠냥?"
"그...그게."
"응?"


조그맣게 대답했습니다.

"...커플들이 옷을 합쳐 입는 방법이라구?"
"...응."

린쨩의 얼굴이 천천히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어두운 그곳에서도 잘 보였어요. 린쨩은 말을 잃고 슬금슬금 눈을 돌렸습니다. 하나요도 마찬가지였고요.
한동안 어색하게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한결 따뜻해진 우리는 곧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흙이 차가워져 엉덩이가 시려오고 여전히 사람이 오는 기척은 조금도 없었지만 그래도 아까보다 훨씬 따뜻해져서 편했어요.














한숨 돌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부터 카요찡의 목소리에 기운이 없이 들렸다냐. 처음엔 기분 탓이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그게 점점 더해졌고 나중엔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냐.

"카..카요찡..! 왜 그러냥?"
"하아..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얼굴이 이상한데!"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냐. 카요찡이 힘이 빠져가면서 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힘겹게 숨을 쉬었어. 점퍼 속에서 팔을 움직여 카요찡을 끌어안았지만 여전히 그랬다냐.

"카요찡! 카요찌이잉! 정신 차려!"

몇번이나 불렀지만 카요찡은 몸을 잘 가누지 못했다냐.
집안에서 공을 차다가 화분을 깨고 엄마에게 들켰을 때 보다도.
생선 반찬이 나왔다고 투정을 부렸다가 아빠에게 혼났을 때 보다도.
숙제를 안해와서 키다리 치바 선생님이 내려다보면서 야단을 쳤을 때 보다도.

그 어떤 때보다도 린의 심장이 아플듯이 뛰기 시작했다냐.

너무 무서웠어. 엉엉 울면서 카요찡을 불렀어. 그...뭐라고 하지. 아! 저체온증인가 하는 그런 증상이 아닌가 생각했다냐. 아마 지금도 카요찡이 갑자기 그렇게 늘어져버리면 놀랄텐데. 그때의 린은 오죽했을까.

그렇게 되니까.
오히려 천천히 눈물이 멎었다냐.
울고 있을때가 아니란 걸 떠올렸어.

린은 합친 점퍼를 벗었어. 그리고 린이 입고 있던 것까지 겹쳐서 카요찡에게 단단히 입혀줬어. 카요찡을 등에 업고 그대로 일어났어.


'항상 옆에 있어줄 거지?'


카요찡의 목소리가 떠올라서 이를 악물고 걷기 시작했다냐.
더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어. 어두운 앞도, 어디선가 우는 산짐승 소리도.
린이 제일 두려워하는 거라면 카요찡이 잘못 되버리는 거니까.
카요찡을 구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
항상 린을 도와주고 생각해준 카요찡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어.

"도와주세요오!!!!"

다시 목이 터져라 외쳤다냐. 멈추지 않고 걸었어.

"아무도 없어요?! 선생님! 얘들아!"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몇시간 뒤, 조명을 들고 있는 구조대 아저씨들과 마주쳤다냐.

선생님께는 괜찮냐는 물음과 함께 혼났어. 엄~청 혼났어. 그치만 뿌듯하기도 했어. 카요찡네 부모님께서 하나요를 보살펴줘서 고맙다고 몇번이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거든. 며칠뒤엔 린의 부모님과 카요찡의 부모님, 그리고 카요찡과 린까지 해서 다같이 고기집에 갔어. 어른들의 이야기라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감사하다며 카요찡네 아줌마가 한턱 내신 거였지.













만일을 위해 받은 병원검사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나왔습니다. 린쨩은 그와중에 또 신기하게 생긴 의료기기에 몸이 들어갔다 나왔다면서 신기해 했어요.

다시 돌아온 학교는 평화로웠습니다. 평범하진 않았지만요. 반 아이들이 전부 다 우리를 둘러싸고 굉장한 모험을 하고 돌아왔다면서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몰린 눈길에 하나요는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가리고 책상에 파묻었고 린쨩은 신나서 일일이 이야기를 다 들려줬어요.

그렇게 린쨩과 하나요는 다시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근데 말이다냐~ 카요찡."
"응?"


배구 시간에 체육관 한쪽에서 공을 주고받던 중, 린쨩이 물었어요.

"그날 있잖아. 왜 정신을 잃었던 거냥?"
"엑. 그...!"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말했어요.

"린쨩, 오늘 가면라이더 하는 날이었지?"
"...왜 말 돌리는 거냥?"
"아...아무것도 아니야. 린쨩. 그런 걸 왜 궁금해하니...하나요는 이제 괜찮아."
"그래. 다행히도 그런 것 같아. 그치만 궁금하다냐!"

어느새 하나요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댄 린쨩 덕분에 놀랐어요.

"카요찡. 왜 숨기는 거야? 혹시 어디 다친 것 아니지?"
"아, 아니야..."
"몸이 어디 안 좋은 건 아니지?"
"무, 물론 아니야..."
"그럼 왜 숨기는 거냥~ 괜찮으니까 말해줘. 걱정 되잖아. 응?"

걱정. 그 한마디에 몸이 떨렸어요. 그러고 보니까 하나요는 그날도, 그날부터 지금까지도 린쨩을 걱정시켰네요. 린쨩은 비록 그날 길을 잃은게 모두 자기 잘못이었다고 해버리고는 있지만, 실례를 끼치는 건 하나요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요를 걱정하고 등에 업고 다니기까지 했던 린쨩에게, 하나요도 솔직해야 맞는 도리겠죠.

"마, 말해도 웃지 않을꺼지...?"
"응응! 절대로! 뭔진 모르지만 카요찡의 말은 웃기지 않아."

그말을 듣자 용기가 생겨서 천천히 린쨩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린쨩은 잠시 자리에 굳어 있었지만 곧 천천히 뒷걸음질쳤어요.

하우! 저 표정~ 너무 부끄러워!

"......배가 고파서 기절했다구?"
"히이이이잉! 그치만....우리 그때 밥도 못 먹은지 꽤 된 시간이었구...미안해! 린쨩! 줄곧 말하려고 했는데 하나요가 너무 먹순이같아서 창피해서 그만..."

양 볼을 붙잡고 몸부림을 쳤어요. 린쨩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야 화낼만도 하겠죠. 충분히 그럴만한 상황입니다.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던 하나요를 누가 거세게 덮치는게 느껴졌어요. 어깨 너머로 사라진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린쨩입니다.

"린쨩?"
"...다행이다!"
"에?"

화를 내는게 아닌, 낄낄대고 웃는 것도 아닌, 린쨩은 저를 끌어안고 목이 메어 말하고 있었어요.

"카요찡...아픈게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에..."

아마 그 순간부터일지도 모르겠어요. 린쨩을 믿게 된 건. 언제까지나 제 편이고 저를 위해줄 거란 걸.
저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해놓고도 린쨩은 오히려 하나요를 걱정해주고 있었어요.
팔을 풀고 떨어진 린쨩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을 이었어요.

"걱정했잖아! 카요찡...진작 말해주지. 린, 걱정했잖아."
"미안해..."

덩달아 왈칵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참았어요. 지금은 소란스레 굴지 않고 그 마음에 감사하는게 옳다고 생각했기에. 린쨩은 천천히 미소지었어요.


"자, 패스 연습 계속 간다냥!"


그때부터 같아요. 이 세상이 어떻게 되버린다고 해도, 모두가 하나요를 미워하게 되거나 일이 잘못 되버려도. 어떤 무서운 일이 있더라도.

린쨩만큼은 하나요의 곁에 평생 있어줄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 건.














린은 항상 카요찡을 위해 힘낼 거다냐.







하나요는 항상 린을 믿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