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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차가웠던 여름날의, 따뜻했던 겨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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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내일 오전에 있을 미모코 환자 수술 준비는 하셨나요?

또 야자와씨 때문에, ”


“간단한 수술이니까 준비는 조금 있다 할게.

야자와는 신경 쓰지 말고 밀린 업무나 처리해주면 고맙겠어.”


마키는 귀찮다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묵묵히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눌렀다.

간호사는 작은 목소리로 재수 없다며 중얼거린다.

7층에서 같이 탄 간호사는 5층을, 마키는 특실 205호로 가야하기 때문에 2층을 눌렀다.



“여기서 5층까지면 걸어가는 것이 훨씬 빠를 텐데. 왜 굳이 타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아.”


“아 맞다, 원장님! 요새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 야자와 씨랑 사귀었다는 소문!”


“사실이야. 그러니까 신경쓰지말아줬으면 좋겠어.”


「띵동- 5층입니다.」


“뭐해? 문 닫힌다.”


간호사는 당황한 기색과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까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마키를 이리저리 훑어보며 지나갔다. 

문이 완전히 닫히고, 5층으로 향한다.



「띵동- 2층입니다.」



마키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오른쪽으로 돌아서 곧장 특실로 향한다.

니시키노 종합병원의 특실은 시설이 좋은 탓인지 값이 비싸다. 

하지만 시설이 좋기로 유명한 탓에 부자들이 이용하고 싶다 요청해도, 

항상 꽉 차있는 특실은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그중 2층의 205호는 항상 자리가 나지 않기로 유명하다.

외부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그 값비싼 병실을 몇 년째 쓰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 하지만,

이 곳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원장의 205호 환자 타령에 지쳐 쓰러질 지경이다.



“후미코, 내일 출근하자마자 야자와의 반응검사를 부탁해. 끝내면 뇌파도 한번 봐보고, 

항상 하던 대로 신체검사.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점심 먹을 시간이니까 이제 그만 동료들이랑 식사하러 가. 배고프잖아?”



마키는 상냥하게 웃으며 후미코를 보내고 야자와가 있는 205호로 향했다.

철컥, 문을 열고 들어서는 마키.

복도의 신발장에는 니코와 마키가 커플로 맞춘

핑크레드 컬러의 운동화가 두 쌍 놓여 있고, 그 위에는 니코와 마키가 고등학교 시절

함께 찍었던 사진이 액자에 걸려 장식되어있다. 

엄청난 무더위에 에어컨을 틀어놓은지라 조금 써늘하다.


마키는 그대로 쭉 걸어 창가쪽 침대에 누워있는 니코에게 다가간다.



“니코쨩. 오늘 하나마루 스토어에서 소고기를 25% 세일했었어.

문득 니코쨩 생각이 나서 사왔는데, 엄청 맛있겠지?”


니코는, 아무 말도 없다.


“나 혼자 먹기엔 조금 많은 양이야. 어라, 니코쨩은 영양제를 먹어서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 할 수 없네. 다른 애들 나눠주고 나 혼자 먹어야겠어.”


니코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다.


당연한 결과다.

니코는 지금 마키의 말을 들을 수 없고,

마키의 모습을 볼 수도 없으며,

마키의 말에 대답해 줄 수도 없다.


제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다 해도, 어찌 이것을 모를까.

니코가 깨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제일 잘 아는 것은 마키일 텐데,

슬픈 마음을 애써 잊으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니코에게 말을 걸며 자신을 위로한다.


마키는 사온 소고기를 냉장고에 넣어놓고 다시 돌아가 아직 온기가 느껴지는 니코의 손을 잡아본다.

오랜만에 잡아보는 그녀의 손. 어딘가 차갑고 두려워서 꾹 참고 있던 눈물이 흘러나온다.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은 니코의 차가운 손등에 하나 둘 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슬픔을 이기지 못해 간헐적으로 새어나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 어째서야?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날 버리려 하는 거야.

읏, 집에 돌아오면 항상 된장국 끓여주겠다며. 힘들 때엔 미소의 마법으로

늘 지친 기운을 북돋아 주겠다며. 


약속을 지키지 못한지가 3년이야.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기적을 원망하지 않아. 그래서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것 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가끔씩은 니코쨩이 너무나도 그리워.


당장 일어나서 힘들었냐며 나를 위로해줬으면 좋겠어,

그동안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 사과 해줬으면 좋겠어.

 

부탁이야. 제발 더 이상 나를 슬프게 만들지 말아줘...”

 


마키는 침대로 들어와 니코의 옆에 누웠다.

후에 힘을 빼고 살짝 안아보고 미동조차 하지 않는 니코에 절망한다. 



“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눈물과 함께 잠을 청한다. 니코와 정면으로 있지만 함께 잠들 수 없다.

밤하늘에 외로이 떠있는 달도 멀리 떠있는 별과 함께 지고는 아침을 맞이하는데,

바로 옆에 안겨있는 니코와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어찌나 안타까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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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노! 니코쨩 카와이! 후와 후와 후와 후와! ”


마키는 마지막까지 능숙하게 라이브의 콜을 해내고,

곡이 완전히 끝나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았다. 

니코 역시 잠시 숨을 내쉰 뒤 항상 하던 그 인사말로 본격적인 무대를 시작한다.


「 다 함께~ 니코니코니-☆ 모두들 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코♡

오늘은 인사 전에 분위기 높이려고 곡부터 시작했는데, 어때니코? 」


“ 응! 니코쨩 엄청 카와이이이! ”


마키는 목이 나갈듯이 큰 소리로 있는 힘껏 대답한다. 

두 번째 곡의 게스트이기에 맨 앞자리에 앉아서

저렇게나 귀여운 니코와 정면으로 마주볼 수 있는 자리를 얻은지라,

당연히 마키의 목소리는 니코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우와아~ 모두들 니코를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기뻐니코♡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과거로 돌아가볼까해!


혹시 니코가 스쿨아이돌 시절 때의 μ‘s 는 기억하고 있겠지?

그래! 이번 곡은 그때 작곡을 담당했던 귀여운 아이와 니코니-가 

함께 불렀던 듀엣이야! 


자, 마키쨩! 나와라 니콧☆」


니코의 가벼운 손동작에 무대의 조명장치중 하나가 관중석의 마키를 비춘다.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니코의 팬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감탄사를 여기저기로 분출했다.


아무래도 단독 라이브에 게스트가 나온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거늘

그 게스트가 니코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μ‘s의 멤버이며

그것이 마키라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마키는 의자를 밟고 니코의 손을 지지대 삼아 이끌려 무대 위로 올라갔다.

무대 밖의 분홍빛 찬란한 불빛들은 마키가 올라가자마자

강렬한 붉은빛이 더해지며 금방이라도 하나가 되어 무대 위를 침범할 것 같은 기세로 바뀌어갔다.

분홍빛으로 빛나는 붉은 빛의 파도는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한참 동안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본 마키는 그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그렇다면, 들어주세요!


니시키노 마키, 야자와 니코의 단 하나뿐인 듀엣곡,

‘치사해 마그네틱 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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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아침 햇살에 마키는 눈을 떴다.

곧이어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 니코에게 말을 건다.


“ 오래도 잔다, 니코쨩은. ”





똑똑똑- 문 밖에서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후미코가 벌써 출근해서 니코의 검사를 준비했다고, 들어간다고 말을 꺼낸다.

문을 열고 들어와 이어서 들어온 간호사 한명이 니코를 이동시킬 침대 하나를 끌고 온다.

마키는 곧장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간다.

후미코와 간호사는 눈치를 보며 니코 앞으로 다가선다.


“원장님은 어째서 식물인간을 돈까지 직접 내면서 3년째 보살피고 계신데?”


“후미코, 어제 물어봤는데 사귀는 사이가 맞데! 자기 입으로 직접 말했어.”


“세상에... 원장님이랑 야자와가 동성애자라고? 끔찍해라...”


“야야, 너무 그러지마? 나는 꽤 어울린다고 생각해. 식물인간이랑 멍청한 의사.”


“하하하! 후미코가 더 심하다!”


“왜! 맞잖아! 깔깔깔!”




“ 글쎄. 나는 딱히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어디선가, 가깝게 들려오는 마키의 목소리를 듣자 후미코와 간호사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뒤를 돌아보니 문 앞에서 니코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듯 했다.


“빠,빨리 하자. 후미코.”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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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키는 오후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다시 특실 205호로 향했다.

철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니코는 언제나와 같이 깨어나지 않을 잠만 자고 있다.


방이 조금 추운 것 같아 히터를 튼다. 어느새 가을이 와서는 창가를 보니

병원 주위의 나뭇잎이 전부 붉게 물들어 마치 아름다웠던 ‘그 때’의 빛의 파도가 떠올랐다. 


창문 아래쪽엔, 언제나처럼 니코가 자고 있다.

마키는 그 옆에 누워 니코를 조금 강하게 안는다. 

니코의 생명이 살아있다는 증거로, 그녀의 심장 소리가 마키의 가슴에 울려 퍼진다.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도, 그저 바라만보고 사랑을 담은 애정표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정말로 안타깝고 절망스러울 뿐이다.

울려 퍼지는 생명의 소리에 기적을 잠시나마 바랬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조그마한 소망은 산산이 조각나 부셔지고 만다. 

마키는 생명의 소리를 더 들으려 힘을 풀고 눈을 감았다.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는 작은 생명의 소리.

그때, 니코의 팔이 스르륵 마키에게 감긴다.



“...니코쨩?”


마키는 설마하고 니코를 계속 불러보았지만, 니코는 계속 눈을 감고 있다.

혹시 들리지 않는 것 일까 하고 더 크게 불러본다.


당연하게도 니코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저 마키가 니코를 끌어안아 올려졌던 팔이 조금 힘을 빼자 내려온 것일까.



이렇게 또 잠시 동안 자라났던 소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키는, 통곡하며 소리를 지른다.





“ 이제 의미를 모르겠어! 더 이상은 내가 힘들어서 참을 수가 없다고!”



마키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 니코를 두 손으로 들어 등에 업었다. 

신발을 신고,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간다.



“어라, 원장님 안색이 조금 안 좋아 보이세요. 그리고...야자와씨?”


“기분탓이야. 가끔씩은 바람을 쐬는 것도 좋은 것 같아서.”


“아, 그러세요.”



각자 인사를 하고 갈 길을 간다. 

마키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올라오기를 기다린다. 이상하게도 지하 25층에서 올라오지 않는 엘리베이터.

원래대로라면, 지하가 3층 까지 밖에 없을텐데, 고장일까. 

결국 비상구의 계단으로 향한다. 니코를 업은 채로 계단을 올라가기란 조금 어렵지만,

굳은 결심은 변하지 않는다.


가끔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했지만, 그때마다 니코가 업혀있음을 깨닫고 절대 넘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 층 한 층 올라가 옥상에 도착하였다.


답답한 병원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가을의 하늘은 탁 트여 시원했고, 바람은 생생하게 불어와 푸르디푸르렀다.

마키는 니코를 업은 채로 옥상의 끄트머리에 올라선다.




“여기서 같이 죽는 거야, 니코쨩.

우리 둘이 함께 죽는다면 분명 천국에서 만날 수 있겠지?





그곳이 지옥이라도 괜찮아.

니코쨩이 있다면 설령 지옥이라도 내겐 천국과도 같을 테니까.





거기서 언제나처럼 내게 미소의 마법으로 웃음 짓게 해줘,

언제나처럼 내게 사랑한다 말해줘.





나는 죽을 때 까지 니코쨩과 함께야. ”





마키는 눈을 감는다. 조금 무서워 손과 발이 떨린다.

죽기 직전의 기분은 두렵고 그저 무서울 뿐, 떨어질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야 한다. 

더 이상은 니코도 마키도 무리였기에, 시간이 아까웠다.



“마키쨩, 나 조금 무서워. 온 몸이 떨려. 진정이 되지를 않아...”





업혀있는 니코가 마키를 안으며 말하였다.

마키는 니코를 안심시키려 살짝 입을 맞췄다.





“우리, 이제 만날 수 있는 거야.


그토록 원했던 일이야.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과, 최고로 행복해 질 수 있어.


무서워하지 마, 니코쨩.”

 




“무서워하는 것은, 마키쨩이잖아?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야? 왜 그렇게 급한 거야?


죽어서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나는 이곳에 존재조차 하지 않는걸?


나는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거야. 마키쨩이 죽는다 해도, 혹은 이미 죽었더라도.”



“아니야, 니코쨩은 여기 있어. 나와 함께 죽는 거야.

니코쨩과 함께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전혀 두렵지 않아.”



“거짓말 치지 마, 마키쨩. 자신을 부정하지 마.


나는 죽지 않아. 왜냐하면 이곳에 없는걸. 


나도 슬픔을 느낄 줄 알고, 마키쨩이 우는 것을 보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지금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거야?

내가 깨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그것을 인정할 수 없어서?


한심해. 마키쨩은 정말로 한심하구나. 


둘이서 지내왔던 추억이라면, 둘이서 기억해야 완전해지는 거야.

한명이 죽어버리면 ‘추억’은 그저 ‘되돌아갈 수 없는 나날’로 변할 뿐이야.


정신 차려, 마키쨩.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받아들이고 눈을 떠.


그리고 더 이상은 힘들어 하지 마.


나는 항상, 마키쨩의 곁에 있을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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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타인의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피부를 파고들어서 심장으로 전해졌다.



곧 눈시울이 불에 덴 듯 뜨거워진다. 눈에서 눈물이 끝없이 맺히고선 베게로 떨어진다.  


목소리가 막혀 나오지를 않는다. 꼭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말을 할 수 없다.


점점 눈물은 흐르는 속도가 빨라지고, 

그럴수록 더욱 목은 막혀 쉰 소리만 나온다.


아아,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아.

3년 전부터 말하고 싶었던 한 마디가 있어.

한 마디면 충분해. 그 후로는 실컷 울을테니까.




마키는 드디어 그토록 내뱉고 싶었던 한 마디를 꺼내본다.
















“ 좋은 아침, 니코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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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사랑이 녹아 눈이 내리면] 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