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럽갤문학/단편

사랑이 녹아 눈이 내리면 -下-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下-





“원장님…? 야자와상은 집에 잘 돌아갔나요?”


“뭔데. 무슨 일 있었어, 후미코? ”


“아니, 그냥요. 어제 새벽에 미오루랑, 같이 걸어 다니는걸 봐가지고요. 하하.”


“잘 들어왔어. 아침밥도 같이 먹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서 하던 일이나 해.”




사랑하는 나의 니코쨩. 오늘도 반 장난으로 쓴 내 부탁을 아무 거리낌 없이 들어주었다.

나도 요리만 잘 할 줄 알았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알몸으로 요리해주었을텐데. 아쉽다.


앞으로 같이 지내면서 니코쨩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요리라든지, 바느질이라던 지.

내가 너무 무능력한 여자라서 능력 있는 니코쨩에게 나라는 존재가 옆을 채우기는 너무 아깝지 않을까?


서로를 믿고 살아가며, 또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여자라는 벽 때문에 이렇게 같은 병원의 간호사들이 나를 혐오하며, 또 기피한다.


나 역시 나 자신을 혐오하고 기피한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과하고, 평소처럼 대해주는 니코쨩에게 정말 감사를 표하고 싶다.

혹시 전부 잊은 건 아닐까 싶었지만, 내 머리위의 붉은빛 요정을 보고 당황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다행히 기억까지 잃어버린 건 아니라고 혼자 안심해버렸다.






계약은 11시 59분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24시간도 남지 않았다. 더 이상 니코쨩과 마주할 시간이 하루도 남지 않았다. 알고 있음에도 불과하고 이렇게 편안하게 일이나 하고 있다니.







어젯밤, 잠이 들었음에도 불과하고 작은 소리로 잠꼬대를 하며 우는 니코쨩을 보았다.

나를 양팔로 껴안은 채로, 어쩐지 내 목이 축축해져서 알아챘으며 마치 그녀가 처음 깨어났을 때의 나처럼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어찌나 슬펐을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일상이, 오늘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져버린다는 진실을 품고서

상대에게 알려줄 수 없는 애달픈 진실을 마음속에 가둬두는 가혹한 행위.





아직도 자라지 않은 미성숙한 어린 사랑이, 죽음으로 하여금 녹아내린다.

녹아내린 사랑이 언젠가 증발하여 하늘로 올라갔을 때, 구름이 되고 그것이 또 눈이 되겠지.



하지만 눈이 내린다고 그것이 쌓여서 사랑이 될 수 있을까?

이미 형태를 잃어버린 사랑은, 그저 H2O라는 제목을 붙인 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밟히고 밟혀 다시 녹아내린다.



지금 창 밖에 내리는 눈에 비유해보았다.

이젠 이것만이 반복될 뿐이며, 앞으로의 시간을 말로써 표현하는 가장 알맞은 스토리가 아닐까. 



그녀는 그저 마지막을 어떻게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겠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또다시 홀로 두려움에 칼을 찌르겠지.

이 시대에 어떤 평범한 현대인이 자신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살아남아야 하니까, 애써 숨기며 살아가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붉은빛의 요정은 대가를 받고 소원을 들어준다.


소원은 한 사람당 하나, 니코쨩이 빌었던 소원은 자신을 살려달라는 작은 꿈.






『 거기 빨간애, 살려줄까? 어서 살려달라고 내게 빌어.』






내가 빌었던 소원은, 니코쨩이 살려달라는 소원밖에 빌 수 없게 제한해달라는 소원.


요정은 사람의 마음을 읽어서 소원을 들어주기 때문에, 죽어가는 나에게 굳이 말을 시킨 것이다.

말을 하면, 분명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 하. 어째서 두 명 다 자신의 목숨을 쉽게 포기해 버리는 걸까. 』





그날 사고에 대한 기억을 없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함께 있었다는 기억을 없애고 자신 혼자 사고를 당하고 요정을 만나 하루살이가 된다는 조금 슬픈 기억을 심어두었다.


물론 내가 원했던 건 아니다. 요정이 멋대로 그렇게 만들어버렸으니까.

그저 기억을 없애서 자신 혼자 살려달라고 빌게해달라는 생각이었지만, 이상한 기억을 심은 건 개연성을 위해서겠지.


소원도 세상의 이치에 맞게 들어줘야한다고 들었다. 즉 사는 사람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죽는 사람도 있다.

생명을 멋대로 바꾼 대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둘 중 한명은 죽어야 한다.



여기서 사는 사람은 야자와 니코.

 




























죽는 사람은……



















“원장님! 응급환자가 왔는데요, 저희 병원 옥상에서 떨어졌답니다!”


“하, 투신자살인가. 나 말고 다른 애들 많으니까 걔네한테 가라고 해.”


“네!”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한 순간에 쓰레기처럼 내던져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앞으로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지만, 조금이나마 더 살기위해 발악을 하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자살 같은걸 하는 걸까?

만약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죽지 않는다면 1초 뒤에 자신의 상황이 뒤바뀔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붉은빛 요정이 어디선가 나타나 내게 시간을 보라고 재촉한다.

내 영혼이 그렇게도 탐나는 것일까?


니코쨩과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이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내가 죽을 공원은, 미리 사람을 시켜서 크리스마스 풍으로 멋들어지게 꾸며 놨다.









대 은하 우주 No.1 아이돌 이었던 야자와 니코 생애 가장 최고의 크리스마스가 될 수 있게.


























______________









지이잉-

진동으로 부서질 듯 한 내 스마트폰의 울음소리.



「 사장님! 오프라인 매장 앨범이 바닥날 것 같아요! 장사 완전 잘돼요! 」



“내말 맞지? 그쪽으로 엄청 몰릴 거라니까.”



「 그런데, 진짜 고기 쏘는 거죠! 그죠! 」



“그래.”



「 사랑해요 사장님! 」







밝은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룹 ‘스니쟈-’의 멤버들.

오프라인 샵의 매출이 오를수록,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테니까.





[ 12월 25일 /  9 : 49 PM ] 







그런데, 어차피 나는 조금 있으면 죽어버릴테니까 고기를 쏜다는 약속은 지켜주지 못할 것 같다.

나에게는 더 중요한 약속이 있으니까.


나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른다. 이상하게도 지하 25층에서 올라오지 않는 엘리베이터.

우리 사무소에 지하라고는 주차장과 창고로 2층이 전부일 텐데.


하긴, 사무소가 세워지고 나서 단 한 번도 엘리베이터 점검을 해본 적이 없구나.

만약 내가 내일 살아있다면, 정기점검센터라도 불러볼까.


결국 평범하게 계단으로 향한다. 이상하게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내려갈 때마다 눈물이 나오는 버튼을 누르는 것 마냥 짠맛 나는 액체가 나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신다.


조금 우울해진 탓에 펑펑 울어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곧 만나게 될 그녀를 생각해서라도 입을 앙 다물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렇게 1층에 도착하고 사무소 입구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네모난 차 한 대가 서있었다.

정체는 마키쨩이 어렸을 때부터 줄곧 사고 싶었다는 롤스…뭐 시기.








아직도 밖에 눈이 오고 있구나.








출근할 때 가끔 본 것 빼고는 가까이서 본 적은 별로 없었는데, 확실히 내가 타고 다니는 것 보다는 엄청 크고 비싸 보인다.

마키쨩은 나를 보자 양 팔을 크게 흔들며 방방 뛴다. 저 나이 먹고서 뭐하는 짓인지.



하지만 나 역시 그 기대에 부응하듯 바람을 가르며 힘껏 뛰어가서 마키쨩에게 안겼다.

그녀의 몸에서는 나와 비슷하지만, 갖가지 의약품 냄새가 섞인 좋은 향기가 난다.



나는 개인적으로 병원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3년 동안 자면서 진저리나게 맡아 와서 그런가? 하하.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앞으로 3시간.



아, 이제 3이라는 숫자도 싫어질 것 같아.



마키쨩은 차 문을 열고 나를 태운다. 곧이어 자신도 옆 자리에 탄 뒤 바로 레스토랑으로 출발해버린다.

아무것도 모른 채 태평하게 운전하는 마키쨩. 천진난만하게 행복한 웃음을 보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



나는 평소에 궁금해 하던 것을 마키쨩에게 질문해보았다. 예를 들어 겨울에는 왜 시동을 키고 몇 분 기다려야 하냐고 물어보았는데,




“겨울에는 윤활유의 온도가 낮아서 윤활유가 제 역할을 발휘하기가 어려워.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 온도를 높이고 미리 예열해두는거지.


뭐 엔진이 얼어서 그렇기도 하고,

니코쨩은 디젤이니까. 원래 디젤이란 게 좀 예열이 필요해.” 




정말 유익한 대답을 받은 것 같았다. 다음에는 휘발유로 사야하나 싶네.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가 뮤즈 시절때 불렀던 にこぷり♥女子道를 큰 소리로 틀었다.

아직도 이 곡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게 놀랍다. 3년 동안 이런 식으로 나의 빈자리를 채웠겠지.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종업원이 VIP 커플 석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전면 유리로 되어 창밖이 훤히 보이는, 아름다운 밤 하늘의 야경을 구경하게 만들어진 둘만의 공간.


마키쨩은 뭔가 엄청나게 비싼 토마토 파스타와 영어로 된 알 수 없는 요리들, 그리고 비싸 보이는 와인. 나 역시 이상하게 비싼 해물 파스타를 주문하였다. 


종업원은 우리를 약간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뭐 여자끼리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주문을 확인 한 후 종업원이 문을 닫고 나가자, 마키쨩은 내 얼굴을 잡고 입을 맞췄다.






“마, 마키쨩. 이런 곳에서 뭐하는 거야?”


“그냥. 크리스마스인데 이런 것도 안 돼?”


“……괜찮아.”


“고마워. 그럼 니코쨩이 한 번 더 해줘.”

























아…….




나를 이렇게 좋아해주는데,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는데. 


앞으로 몇 시간이 지나면 그녀는 세상에 홀로 남게 된다.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나를 몇 년 동안이나 혼자서 지켜준 그녀인데, 아직 그만큼의 보답조차 해주지 못하고서 떠나보낸다.

 

나는 슬며시 눈을 감은 마키쨩의 입술에 축축한 근육 다발을 밀어 넣었다. 그녀 역시 내 사랑에 동조하듯  

자신의 것으로 내 입속을 헤집어놓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숨소리는 가빠지고, 그것을 즐기며 더욱 서로를 탐닉한다.


기적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것 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기적을 바라고, 신에게 기회를 달라 소원을 빌어본다.


저 밤하늘에 외로이 떠 있는 달도 멀리 떠있는 별과 함께 지고는 아침을 맞이하는데, 바로 앞의 사랑하는 사람과 그 아침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어찌나 안타까울까.


신은 나에게 붉은빛 기회를 선사해주셨다. 소원의 대가는 그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다.

어떤 행복이 있던, 무슨 추억이 생기던 한 순간에 부서져버리겠지.



때마침 종업원이 문을 열고 테이블에 파스타를 가지런히 놓으며 우리를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한번 쳐다보니,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입을 닦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이제 마키쨩이 이런 눈빛을 받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가빠진 숨이 정리되고, 파스타를 포크에 돌돌 말아 한 입 넣어본다.




“니코쨩이 만들어주는게 훨씬 맛있어.”




거짓말이다. 이 파스타는 내가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으며 면도 탱글탱글하게 잘 익어서 넘어가는 느낌이 좋다.

내 것과 비교를 해보자면, 사랑이 녹아들지 않았다는 점인가.





“내일 아침에 토마토파스타 만들어줬으면 좋겠어.”


“아침으로 파스타라니, 조금 무리겠는걸.”




붉은 빛의 요정은 우리 둘 사이를 맴돌며 어서 계약의 시간이 끝나길 간절히 바라는 것 같았다.

어느 때는 두 개로 갈라져 마치 사람의 눈동자처럼 나를 지켜보기도 했다.


식사는 생각보다 일찍 끝나게 되었다.

주문했던 와인 역시 내일 저녁은 뭐로 할까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한 잔씩 마셨더니 어느 순간 바닥이 나있었다.


마키쨩은 들릴 곳이 있다며 또 한 번 나를 차에 태웠다.





“기대하라구? 후훗.”


 


그녀가 나와 마지막으로 들릴 장소.



“이제 정말 끝이네. 인간 여자의 영혼은 무슨 맛일까.”































마지막으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장소.


한순간에 빼앗겨버릴, 행복을 키워낼 장소로…….









____________








































차에서 내렸더니, 눈앞에 펼쳐진 것은 밝은 불빛으로 가득하게 꾸며진 어느 공원이었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붉은 금빛의 전구들. 그런 빛들을 부서질 듯 칭칭 휘어 감고 쭉 뻗어있는 나뭇가지와

깔끔하게 정돈되어 부드럽고 아름다워보이기까지 하는,

사람 한명 돌아다니지 않는 새벽의 도로처럼 잔잔하고 고요한 크리스마스풍의 공원.








바로 옆의 어둠이 깔린 도로와는 대조적으로, 마치 그녀와 함께 했던 그날의 라이브 공연이 이 공원에 다시 생생하게 구현되어진 듯했다.







텅 빈 공원이 그녀의 거대한 자본으로 인해 멋들어지게 꾸며졌다는 것을 육감으로 알아차렸다.


그런데, 나는 이 장소를 알고 있다.

어쩐지 익숙한 감마저 존재하였지만, 그렇기에 바로 깨닫지 못했었다.












이곳은 어제 내가 죽었어야했던, 바로 그 장소.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는 내 앞에,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고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설마, 안 돼, 하지 마.




















“ 니코쨩, 조금 부끄럽겠지만 말이야.”





























내 인생의 마지막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다고. 










































“ 우리 고백한 뒤로 같이 살기만 했지, 별 다른 일은 안하고 살아왔잖아?”



 
































행복하게 끝낼 수 있었는데, 어째서 마지막까지 나를 괴롭게 만드는 거야?

나를 좋아한다면, 마지막도 사랑스럽게 끝내달란말이야.



































“당신을 사랑합니다. 야자와 니코.”































그녀는, 자그마한 상자를 열어 위로 치켜들었다.


상자 속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금속 링 끝부분에 무색투명하게 빛나는 보석이 박혀있는 조그마한 반지가 들어있었다.


























“부디, 저와 결혼해주세요.”












































그녀의 눈은, 그 어떤 때보다 빛나보였다. 그것에 보답하듯 나는 손을 뻗어 상자 쪽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하지만 내 손은 끝내 반지에 닿지 못했다.


아쉽게도 붉은빛의 요정이 내 손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다됐네. 아쉽다. 프러포즈까지 받았는데.”







요정에게 닿은 손가락 끝의 피부가 벗겨지며, 뜨거운 피가 흐른다. 작은 고통임에도 불과하고, 이상하리만치 커다란 눈물방울이 새어나온다.


이어서, 두 개로 갈라지며 내 왼쪽 팔에 살포시 앉는다. 붉은 빛은 두꺼운 코트를 뚫고 그 온도를 전한다. 연약한 내 살이 용암에 닿은 듯 문드러지며 녹아내린다.





“아아아, 아파, 아파!”





마키쨩은 이 놀라운 광경에 넋을 놓은 듯 요정을 두 손에 쥐었다. 그녀의 손에서 붉은 빛이 새어나가며 어느새 틈새로 전부 빠져나와서는 뜨거운 열기가 내 몸을 휘감는다.


“어째서야, 내가 죽는 대신 니코쨩이 사는 것이 내 소원이었잖아!”






그제야 멍청한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붉은 빛의 요정에게 소원을 빌기 전, 마키쨩은 나를 살려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 하지만 후미코! 이 사람들…… 』





애초에 사고를 당한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 니, 코쨩이…자기를 살려달라는 소원을 빌도록…….』







정확히는 ‘야자와 니코가 살려달라는 소원만 빌 수 있게’ 라는 소원을 빌었다.


그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내 발언은 ‘살려줘’로 한정된다는 소리가 되는데, 

만약 그때 내가 마키쨩과 함께라는것을 알아차렸었다면 분명 그녀를 살려달라는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똑똑한 내 애인은, 자신의 죽음으로써 날 살리려고 했겠지.




“에에- 너 바보 아니야? 언제까지 이런 꿈만 꾸고있을거야?”















하지만, 나도 이제 모든 걸 알게 되었다.




















마키쨩은 이런 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야.






나는 녹아버려 형체를 알 수 없는 뭉툭한 손바닥으로 내 눈물을 닦아냈다.

이어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하는 애인의 눈물도 닦아주었다.


하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그녀의 얼굴은 피가 흐르는 내 손바닥에 비벼져 붉은 색으로 얼룩져버렸다.





“마키쨩, 어째서 내가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말도 안 돼, 니코쨩, 사라지면 안 돼, 싫어!”





“진정해. 그건 말이야.


 마키쨩이 이런 곳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지.”





















『 여기, 사람이 떨어졌어요! 사람이 떨어졌다고요! 』






『 잠깐, 이거 원장이랑 야자와상 이잖아! 』





『 어어, 야자와상이 눈을 떴어! 』 






『 그보다 이거 엄청 심각하잖아! 팔이랑 다리가 꺾였다고! 』






『 빨리 아무나 불러와! 바보들이야? 구경만 하다가는 정말로 죽는다고! 』









“그때, 마키쨩은 나를 감싸고 옥상에서 떨어졌어.


나는 기적적으로 깨어났고, 대신 마키쨩이 엄청나게 다쳐버렸지.


그 뒤로 간호사들한테 듣게 된 거야. 3년 동안 얼마나 네가 나를 아끼고 보살펴주었는지를.”







니코쨩의 얼굴이 녹아내린다. 루비같이 반짝이며 빛나던 눈동자는 툭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다.

생기를 잃은 눈알이 흙으로 얼룩져 그것마저도 녹아 사라진다.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나와 키스하던 입술이 부풀어 오르며 터졌다.

촉촉하게 젖어있는 혓바닥이 삐쩍 마른 뒤 갈라지고 이내 차가운 피가 흐르며 입 밖으로 쏟아져 내려온다.







다소 혐오스러운 장면이 내 눈동자를 통해 뇌리에 비수를 꽂듯 하나하나 박힌다. 내 위장은 참지 못하고 음식물을 모두 토해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방금 먹은 파스타를 구역질하며 토해냈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가는데, 나는 토하는 행동 따위를 하고 있다. 


니코쨩이 모두 녹아내려 더 이상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는 징그러운 살덩어리만 남았을 때, 두 개로 갈라진 붉은빛의 요정이 내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들었어? 나는 아직 너에게 아무것도 보답해주지 못했다고.”  





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붉은 빛의 요정을 바라보았다. 마치 사람의 눈동자처럼 갈라진 요정은,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이번 겨울에 내렸던 눈이 녹으면, 아무리 밟혀 더러워지고 형태를 잃어버린다고 해도

다음 겨울에는 또 지난번에 내렸던 눈이 내리게 되어있어.


똑같아.


사랑이 녹아 눈이 내리면 그 눈송이에는 누군가의 사랑이 끝까지 담긴 채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어깨에 닿겠지.


평범한 사람들은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채 손으로 털어내겠지.


그렇게 수 만 번 하늘에서 내려왔을 때,


어쩌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에 닿아 그대로 녹게 되지 않을까 싶어.” 












눈이 내리는 어두운 밤하늘에 조그마한 금이 생긴다. 점점 틈이 벌어지더니 하늘의 조각이 부서져 눈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붉게 빛나는 두 개의 눈동자와 나란히 서있는다.

내가 서있는 이 바닥 역시 금이 가며 끝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져나간다.











“이 꿈속에서 깨어나서 진짜 나에게 말해줘.”













한 없이 떨어지는 나를, 루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가 지켜보고 있었다.












“메리크리스마스- 라고.”













































________











































여기저기서 통곡소리가 들리는 새하얀 병실.

그곳에 알맞은 새하얀 조명이 내 눈을 따갑게 찔러왔다.










“...부, 부원장 어디 있어! 부원장! 너네 원장님 일어났어! 아직 안 죽었다고!”































“마키쨩 내말 들려? 나 깨어났어. 이제 내 보답을 받아줘야하지 않겠냐구!”


나를 지켜보던 붉은빛의 눈동자는, 꿈속에서와 같이 여전히 나만을 바라봐주고있었다.













[ 12월 25일 /  11 : 59 PM ] 





















나는 또 한 번, 눈시울이 불에 덴 듯 뜨거워진다. 눈에서 눈물이 끝없이 맺히고선 베게로 떨어진다.  


목소리가 막혀 나오지를 않는다. 꼭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말을 할 수 없다.


이래서는 좋은 아침이라고 말했었던 그 날 같잖아. 



점점 눈물은 흐르는 속도가 빨라지고, 

그럴수록 더욱 목은 막혀 쉰 소리만 나온다.


아아,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아. 네가 일어나면 꼭 해주고 싶었던 말 중 하나가 있었단 말이야.

한 마디면 충분해. 그 후로는 실컷 울어 줄테니까.












저번에는 네가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으니, 이번에는 내 차례야.

























내 한마디로, 조금이나마 당신이 웃을 수 있기를.























몇 년이라는 시간 끝에 처음으로 그녀에게 내가 가져다준 선물의 말소리는,




































“메리, 크리스마스…….”
























이 행복은, 누군가 우리를 갈라놓지 않는 이상 영원하겠지. 만약 때가 온다면 그 누군가조차 행복으로 만들어 줄테니까.











메리 크리스마스, 니코쨩.














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