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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마키「혼자만의 졸업식」

하얀 숨이 토해진다.

처음 만났던 봄이 지나가고,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여름이 지나고, 처음으로 서로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마주 볼 수 있었던 가을이 지나가고, 처음으로 입을 맞췄던 이 겨울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사랑스러웠지만 그렇기에 바라보기 괴로웠다.

자신은 대체 어떤 말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녀는 어떤 말을 할까.




「마키짱...」

「졸업 축하해, 니코. 니코도 얼마 뒤면 대학생이네」

「...응. 그렇게 되겠네」

「니코가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는데」

「너무하네, 정말」

「정말로...축하해. 진심이야」

「고마워...마키짱한테 축하 받을 수 있어서 기뻐」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말은 나누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고는 그녀가 돌아서서 손을 흔들고 나는 거기에 대응하듯 손을 흔들어줬다.

웃지 않은채로 웃으면서 그녀를 보내줬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를 바라보기가 괴로워진 것은.

매일 눈을 뜰 때마다, 숨을 쉴 때마다, 시간이 흐를 때마다 그녀가 좋아지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괴로웠다.

차라리 눈을 뜨고 싶지 않을 정도로, 숨을 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겨울을 맞아 앙상해진 나무 밑에 걸터앉아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아본다.

아무리 불러봐도 질리지 않을, 입에 답기만 해도 부숴질까봐 조심스러워지는 사랑스러운 이름을 조용하게 중얼거린다.

그리고 입술에 와 닿았었던 온기를 떠올려본다.

대체 그녀는 어째서 자신에게 입을 맞춰주었던 것일까.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이 더더욱 괴로워질거라는 것을 모를 그녀가 아니었을텐데.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알고 있을 그녀였을텐데.

그리고 그런 슬픈 미소를 지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텐데.

그런 슬픈 미소를 잊지 못할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텐데.




그녀의 기억 하나 하나가 조각이 되어 가슴에 틀어박힌다.

그녀의 말 하나 하나가 불꽃이 되어 자신의 몸을 태운다.

그녀의 미소 하나 하나가 물방울이 되어 자신을 가라앉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은 어떠한 짓을 해도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마키짱은 이젠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니깐 괜찮을거야'




그녀의 말대로 자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하나요나 린 같은 친구들이 있고 뮤즈의 모두가 있다.

더 이상은 혼자가 되고 싶어도 혼자가 될 수 없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제 혼자일텐데.

아무도 없는,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새로운 곳에 가야만 할 텐데.

혼자서는 괴롭고 아플텐데.

그런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텐데.

어째서 웃을 수 있던 걸까.




그녀는 졸업을 했지만, 자신은 그녀에게서 졸업하지 못했다.

언제 졸업할지도 알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마키 선생님, 전화왔어요」

「누군가요?」

「그...니코라고 하면 아실거라는데요?」

「당장 바꿔주세요!」




실로 오랫만에 그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마치 산타를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설레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될까.

어떤 식으로 인사를 해야 되지.

아니, 그것보다 왜 이렇게 오랫만에 전화했냐고 따져야 될까.




「여, 여보세요?」

「안녕, 마키짱! 오랫만이네!」

「어, 어. 으응...그, 그러네. 어, 어쩐일이야?」

「응...실은 말이지, 니코」

「으, 응. 뭔데?」

「결혼하게 됐거든. 그래서 일단 마키짱한테 먼저 말해주려고...마키짱? 마키짱?」




간신히 틀어막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의 둑이 다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조용한 카페에 앉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자신이 좋아했던 그녀의 붉은 눈을 바라본다.

그녀 스스로도 마음에 들어하던 칠흑의 머리를 바라본다.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많은 것이 바뀌었다.




「니코가 결혼하려는 사람은 말이지」

「특별히 잘생긴 것도 아니고, 특별히 가진 게 많지도 않지만 말야」

「그래도 같이 있으면 편안해지고 행복해지는 사람이야」

「그리고 니코를 누구보다도 사랑해줘」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진거야」




아니, 많은 것이 바뀐 건 그녀뿐이고 자신은 어느 것 하나 바뀌지 않았다.

아직도 그녀를 보면 이렇게나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렇지만 더 이상 그녀는 자신에게 가슴이 뛸 일은 없을 터이다.




「...니코는」

「응?」

「만약에 내가 남자였다면...나랑 결혼해줬을까?」

「그건...응, 그랬을거야. 나는 마키짱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으니깐」

「그랬다면...」




문득 튀어나오려던 질문을 삼킨다.

하지 말아야 될 질문이어서가 아니다.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답을 찾고 있었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는 없어졌다.




연습을 하면서, 데이트를 하면서, 집에 놀러오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언제나 그녀를 보면서 좋아하던 자신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자신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고는 했을까.




그녀는 계속 괴로웠던 것이다.

자신이 행복해하면 할 수록 그녀는 괴로워졌을 것이다.

같은 여자라는 것, 2년간의 차이, 진로의 차이.

모든 것을 체감한 그녀는 점점 한계를 향해 갔을 것이다.

그렇기에 떠났었던 것이다.




「있지...니코...지금 행복해...?」

「응, 행복해. 진심으로」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당신이 행복해져서 다행이야.

내가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당신이 행복해져서 너무나도 다행이야.

나는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었지만 당신이 행복해졌다면 그걸로도 만족할 수 있어.




「아, 그렇지. 나 슬슬 들어가봐야 되거든. 근무중에 잠깐 빠져나온 거라서」

「응, 그렇겠네. 그럼 들어가」

「...응. 결혼식 날에 또 보자, 니코」

「꼭 와줘야 돼, 마키짱」

「당연하지. 제일 먼저 가 줄게」




계산을 하고 카페를 빠져나오면서 간신히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들썩이는 어깨를 감싸며 달려나간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계속 미뤄두었던 졸업을 할 시간이 찾아 온 것이다.

당연한 것인데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한다.

그리고 떨쳐내야 한다.

최고의 미소로 그녀를 축복해주어야만 한다.




「안녕, 내 소중한 사람」



사랑했어.

그리고 행복했어.



















「라는 대본을 써봤구마, 어뗘?」

「의미를 모르겠거든!」

「그런가...좋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디...아무튼 이번 연극은 이걸로 하는걸로」

「안해! 할 거면 노조미나 에리하고 해!」

「아...」




쾅!




「정말이지 노조미는...」

「...있지, 마키짱」

「왜, 니코?」

「그...마키짱이라면 그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 거야?」

「하아? 당연하잖아」

「응?」

「처음부터 포기하지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