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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아야세 에리, 러브레터

스쿨 아이돌이라 해도 이들 역시 여고생이다.
사랑에 대한 동경을 할 나이,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사춘기 공주님의 역할은 소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난데없이 그런 사랑 이야기를 맞이하게 된 아야세 에리는 솔직히 말해서 당황스러울 뿐이다.

"어째서 이런 게..."

금발의 시원스런 스타일을 지니고 있는 여고생, 에리는 아이돌 연구부 부실 안에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손에 든 물건을 바라본다.
저번처럼 난데없이 성인 잡지를 들고 온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어떤 의미로 성인 잡지보다 더 파워풀한 물건이 등장한 것이다.
소위 말하는 러브레터.

"나, 남자한테 고백?!"

뮤즈 멤버들의 눈동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세상에. 말로만 듣던 고백을 받은 여고생이 존재할 줄이야.

"그게 말이지..."

에리가 오늘 아침에 벌어졌던 일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사건은 바로 등교시간 도중.
학교 입구에 들어서려던 에리에게 뜬금없이 남고생 한 명이 다가와 자신의 마음을 받아달라며 편지를 건네고선 사라졌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대단하네, 역시 에리!"

호노카는 에리의 매력을 인정하듯 연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호노카도 러브레터 받고 싶은기가?"

노조미의 물음에 호노카는 잠시 고민을 해본다.
그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하는 말.

"난 연애 같은 거 잘 모르니까... 잘 모르겠는데."

"그래요! 호노카는 아직 연애하기는 이르다구요!"

갑작스레 등장한 자칭 호노카의 대변인, 우미가 양팔을 바둥바둥거리며 외친다.

"호노카는 절대로 안 되요! 절-대로! 남자라는 늑대한테 넘어가면 안 된다구요! 제가 보호해 줄테니까 저만 믿으세요, 호노카!"

"누가 더 늑대인지 모르겠데이."

노조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역시 호노카의 매력에 푹 빠진 소녀 1人.

"맞아, 호노카는 아직 일러."

그리고 호노카의 매력에 푹 빠진 소녀 2人째가 초점 없는 눈동자를 드러내며 말한다.

"호노카에게 관심 가지는 남자들은 이 코토리가 전부 다- 창자를 꺼내서 따스한 햇빛 아래에 말려버릴 테니까 호노카는 안심해♡"

"......"

절대로 안심할 수 없는 대사를 잘도 말한다.
잠시 헛기침으로 모두의 시선을 모은 마키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에리의 러브레터를 가리키며 말한다.

"근데 그거, 뜯어보긴 한 거야?"

"아직 안 뜯어봤는데."

"내용은 뭔지도 몰라?"

"응."

"그럼 일단 읽어보는 게 좋지 않아?"

"아, 그렇겠네."

아무리 에리가 러브레터의 상대방에게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일단 내용은 확인해보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 아니겠는가.
그래도 정성을 담아 썼을 내용인데. 그 기분을 무시하는 건 에리의 성격상 맡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부끄러운 마음을 담아 이 편지를 보냅니다."

"...난데없이 읽는 거야?!"

러브레터의 내용을 읽으라고까지 지시하지 않은 마키가 살짝 놀란 목소리를 내지른다.
하지만 에리는 마키의 반응에 큰 신경을 기울이지 않고 계속해서 편지를 읽어 내려간다.

"자신이 없어서 이런 식으로나마 편지를 보냅니다. 예전부터 쭈욱 동경했고... 좋아했습니다."

"어머?!"

"꺄-악! 청춘이야, 청춘!"

각자 여고생다운 반응을 보이며 에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에리는 무신경하게 러브레터를 읽어가는데...

"...그럼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아, 참고로..."

꿀꺽.
모두의 시선이 에리의 부드러운 입술로 향하게 되는데!

"이 편지를 부디 2학년 '카제츠바키 유리에'한테 대신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라는데."

"뭐야, 그게!!"

결국 에리한테 온 러브레터가 아니라, 대신 좀 전해달라는 편지였던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심장이 약한 남고생이길래 이런 수단을 선택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다행이야."

당사자인 에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노조미가 그녀의 반응에 의아함을 가진다.

"왜 그런기가?"

"사실 나도 호노카처럼 아직은 연애니 뭐니 그런 걸 모르니까... 그래서 거절할 생각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누군가가 상처를 입을 게 분명하잖아. 그래서 다행이라고 한 거야."

"흐음..."

노조미의 눈동자가 에리를 비추기 시작한다.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은 예전부터 변하지 않았다.
물론 그 표현이 서투르긴 하지만 말이다.

"난 그런 에리치가 좋데이."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노조미..."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당황해하는 에리의 모습을 본 노조미가 빙긋 미소를 짓는다.
에리에게 온 러브레터가 아니라 정말 다행이다.
왜냐하면 이런 귀여운 에리는 가급적이면 오랫동안 혼자서 독점하고 싶으니까.
노조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