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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코우사카 호노카, 하늘이 선물한 하얀꽃의 이름

스쿨 아이돌이라 해도 언제나 밝은 표정만 지을 수는 없다.


차가운 겨울이 공기를 가르며 또각또각 걸어가는 우미가 익숙한 간호사 언니에게 고개숙여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어머... 또 왔구나."


"그야..."




씁슬하게 웃어 보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우미가 황급히 자리를 뜬다.


또각또각.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버튼을 누른다.


5층.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애매한 층수에서 내린 우미가 다시금 발걸음을 옮긴다.


또각또각.


503호 병실 앞에 선 우미가 가볍게 노크를 해본다.




"들어가도 되나요?"


"......"




우미도 알고 있다.


들릴 리가 없으리라고.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선 뒤, 꽃병에 꽂혀 있는 낡은 꽃을 새걸로 갈아준다.




"저 왔어요..."




그리고 아주 조용히...


호흡기를 단 채 누워있는 아리따운 오랜지색 소녀에게 인사한다.




"호노카..."














일주일 전.


그날은 분명 평소와 똑같이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하굣길이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졸음운전으로 인해 도보로 차가 뛰어들어왔다는 점.


그리고 차에 치일 뻔한 우미를 호노카가 구해줬다는 점.


하지만 그건 동시에...


우미에게 아주 커다란 상처가 되었다는 점.




"호노카. 오늘은 있잖아요."




흐트러진 오랜지색 머리카락을 정성스래 쓸어내려준다.




"니코의 춤실력이 너무 엉망이라서 마키가 화를 냈어요. 그 뒤로 매번 보던 사소한 말다툼이 이어졌어요.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노조미가 부추겼고, 결국 에리가 중재를 하고 나섰죠."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호노카에게 남김없이 들려준다.


일주일 동안 호노카는 그저 눈을 감은 채 잠에 빠진 공주님.


잠꾸러기 공주님에게 우미는 스스로 왕자를 자처하며 그녀에게 일상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아니.


왕자가 아니라 그저 단순한 이야기꾼일지도 모른다.




"이야기꾼이라도 좋아요... 왕자가 아니더라도 좋아요... 그러니까 제발..."




우미의 손길이 애타게 호노카를 어루만지기 시작한다.




"다시... 저에게 미소를 보여주세요, 호노카."




왜 자신을 위해서 희생한 것일까?


친구라서?


아무리 친구라 해도 스스로 목숨을 거는 건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쉽지 않다.


하지만 호노카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우미 대신에 자신이 사고를 당했다.


분명 다친 쪽은 호노카일 터인데...


우미의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똑똑.




낯선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등장한 인물은 다름이 아닌 코토리였다.




"우미. 여기서 뭐하는 거야."


"...병문안이에요."


"어제 하교하고 집에도 안 들어갔다며. 계속 병원에서 자는 건 좀..."


"...무슨 상관이에요."




우미의 눈빛이 살갑게 변하기 시작한다.




"호노카를 이렇게 만든 건 저니까요. 그러니까 하다못해... 속죄하게 해주세요."


"우미...!"




성큼성큼 걸어온 코토리가 결국 참지 못하고 우미를 향해서 오른손을 추켜올린다.


그 뒤.




-짜악!




얼굴 한쪽에서 진하게 느껴지는 통증이 우미를 일깨운다.




"이제 그만해!! 그런다고 호노카가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


"그럼 이대로 호노카를 포기하라는 건가요? 코토리가 할 말이 아니잖아요! 그러고도 호노카를 볼 낯이 있나요?"


"하지만 이건..."




코토리가 힘없이 주저앉는다.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우미의 소매를 잡고 늘어진 코토리가 고개를 떨군다.




"...호노카가 원하는 건... 이런 네 모습이 아니라고... 우미...!"


"학교도 제대로 나가고 있어요. 스쿨 아이돌 생활도 제대로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더이상 저에게 상관하지 마세요."


"......"


"전 호노카가 깨어날 때까지 곁에 있을 거예요. 설령 코토리라 하더라도 방해한다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우미..."




코토리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한 방울.


이런 식으로 우미는 코토리에게, 그리고 다른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둘씩 상처를 입히게 만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상처입는 사람은 아마도...


우미 자신일 터.












"...미안해요, 코토리."




호노카가 누워있는 병실 내에 나란히 앉은 우미와 코토리.


따스한 커피 한 캔을 건내며 사과하는 우미에게 코토리가 힘없이 웃으며 말한다.




"아니야. 오히려 때려서 미안해."


"...부모님한테 면목이 없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학교 측에도 집에 안 들어가고 여기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여러 소리를 들으니까요. 하지만..."




우미가 코토리의 손을 잡는다.




"코토리라면 제 마음, 알아줄거라 생각해요."


"응. 알고 있어."




코토리 역시 우미와 같이 호노카의 곁을 지키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친구니까.


둘도 없는 친구.


그 친구가 처음으로 세상에 다시 눈을 떴을 때, 곁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은 우미도, 코토리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둘이 아닌 셋이기에 지금까지 함께 해올 수 있으니까.


그리고 언제까지고...




"함께할 거예요, 분명."


"...응."




우미와 코토리의 손이 제각각 호노카의 손을 마주잡는다.


그와 동시에 차창 밖으로 내리는 차가운 눈.




"...저 눈을, 호노카와 같이 봤으면 좋을 텐데요."


"호노카라면 분명 막 기뻐하면서 뛰어다녔을 거야."


"맞아요. 작은 강아지처럼."


"그리고 뛰다가 넘어지겠지?"


"그럴 때면 코토리만 믿고 있을게요."


"맡겨줘. 보건위원이니까."


"저는 호노카가 다음부터 그렇게 않도록 잔소르 해줄 거예요."


"으... 호노카가 불상해지려고 해."


"정말, 코토리는 너무 호노카 편만 들어준다니까요."




창문 바깥에 내리는 눈은 흰색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순수한 투명함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 눈을 호노카와 함께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Snow Halation




빛을 머금은 하얀 꽃들의 모습에 우미와 코토리는 서서히 졸음에 취해간다.


그리고 점점 깊어지는 밤의 공기에 반응하듯.




"......"




마주잡은 '그녀'의 손가락이 희미하게 미동친다.


그것은 아마도.


하얀 꽃이 만들어낸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