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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사용 설명서

사용 설명서






우미(45)「... 그 다음에 말로 완료, 라고 말하면 적용됩니다. 제대로 듣고 있나요, 에리?」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 홀로그램 녹음기에 대고 말하는 저를 보면, 무서워 할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얼핏 보면 딱히 아무래도 상관없는, 새로 나오는 신형 기계들의 사용 설명서를 단지 읽을 뿐인 무의미한 행동, 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벌써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한 지 15년이 지났습니다. 기술에 발전에 따라, 새로운 기술들과 그  


새로운 기술들을 탑재한 여러가지 유익한 도구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실로 15년전이라면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의 기술들이 나오고, 만약 15년 전의 사람이 시간여행을 해서 지금 깨어난다면, 사용법을 몰라 쩔쩔 맬 정도의 도구들입니다. 자동차들은 사람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지금처럼 말을 하면 글로 바꾸어 저장해주는 녹음기도 생겼습니다. 




그 말 대로, 과거에서 온 사람이 제대로 적응할 수 있게, 과거의 기술력에 맞춘 설명을 곁들여 도구들의 사용법을 녹음하고, 글로 바꾸어 적어두는 것이 저, 아야세 우미 -원래는 소노다 우미였던 사람- 의 의무입니다.




과거에서 미래로 넘어오는 타임머신이 개발되었냐고 하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딱히 돈을 받고서 하는 일도 아닙니다. 단지,




단지, 과거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사람을 위해




혼자만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




우미「녹음 종료.」




녹음 종료, 라고 말하자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홀로그램이 종료 시퀀스를 실행합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세대의 시계- 중학생일때부터 사용하던 벽걸이형 시계- 는 벌써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집에서 나와, 집앞에 주차되있던 차량에 탑승합니다.




원래 운전면허가 없습니다만, 기술의 발전으로 운전 면허 자체가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누구라도 차를 살 돈만 있다면 원하는 곳으로 갈수있는 시대가 온 겁니다.




이제는 운전석이라는 것이 없는 둥글둥글한 차량에 탑승해, 항상 가기 때문에 행선지 리스트의 최상위에 나타나는 목적지를 선택합니다.




「도쿄대학의료기술연구소」


 


잠시 차량에서 안내를 시작한다는 멘트가 나오더니, 곧이어 자동으로 주행을 시작합니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30분은 걸리겠죠. 도장과 관련된 일 때문에 상당히 피곤했기 때문에, 잠시 수면을 취하도록 합시다.




차량의 안내음에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연구소의 주차장에 주차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차에서 내려, 연구소의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 귀엽게 생긴 젊은 안내원씨가 인사를 건냅니다.




안내원「어서 오세요, 오늘도 오셨네요, 아야세씨.」




우미「안녕하세요. 언제나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안내원「아니요. 여기,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내원씨에게 다가가자, 안내원씨는 익숙한 동작으로 홀로그램을 뒤적이더니,




안내원「다 됐습니다, 아야세씨. 」




라고 하며 생체인증을 패스시켜줍니다.




항상 걸어가던 통로를 따라 들어가자,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곧이어 푸슉하는 소리와 함께 소독작업이 시작됩니다.




언제나 하는 작업이지만, 이런 기계음에 익숙해지지 않는 건 왜일까요.




소독 작업이 끝나자, 앞에서 문이 열리고 저는 계속해서 이어진 통로를 따라 걸어나갑니다.




양 옆으로 마치 환자실 같은 방문들이 주르륵 늘어져 있고, 문에는 각각 이름이 써져 있습니다.




어느 정도 왔을 때쯤, 저는 발걸음을 멈추고 왼쪽을 보았습니다. 제 눈 앞에 있는 문에는 이름이 써져 있습니다.




「아야세 에리」




문 옆에 있는 생체인증기에 손목을 가져다 댑니다. 차가운 듯한 감촉이 팔목에 느껴지고, 띠릭 하는 전자음과 함께 문의 락이 열립니다.




어두컴컴한 방 안으로 들어가자, 뒤에서 문이 자동으로 닫혀 방안은 칠흑과도 같습니다.




잠시 후, 조명이 켜 지더니,




거기에는, 투명한 유리관이.




그리고, 그 유리관 안에는, 저의 애인인 아야세 에리가 젊었을 적 모습 그대로 눈을 감고 있습니다.




우미「다녀왔습니다, 에리.」




가슴아픈 일이지만, 누가 봐도 에리의 모습은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의 에리를 보는 것도 꽤 되어서일까요, 이미 적응이 되어서 별다른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유리관 안을 보면, 은은한 조명에 비춰지는 에리의 창백한 얼굴.




눈을 감고 가만히 떠있는 에리는 –본인에게 직접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언젠가의 공상과학 영화에서 보던 인공캡슐에 들어있던 실험체 같습니다.




차이점이라면, 그때의 그 영화에서는 관 안에 투명한 물같은 것이 가득 차있었고, 세로로 세워져 있던데 반해, 에리가 들어있는 유리관은 눕혀져 있으면서 안에는 에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아, 그리고 유리관이 굉장히 차가운 것도 다르다고 할까요.




이렇게 에리를 보면서, 생각에 빠집니다.










뮤즈가 있었기에 모두를 만난 것은 저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크나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무엇보다 제게 제일 과분했던 행운은 바로 에리였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차가운 인상을 받았지만, 에리를 점점 알게되고 문득 돌아보니 에리만을 바라보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잘 모르던, 생각조차 안하던 감정입니다만.




오토노키자카에서 뮤즈의 3학년들이 졸업한 뒤, 저희 2학년생들도 다음 해, 따라 졸업했습니다.




코토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뮤즈의 실적을 인정받아, 외국에서 러브콜을 받아 뮤즈로 인해 할수 없었던 외국 유학을 이루어냈습니다.




호노카는, 특유의 못 말리는 에너지로 세계를 여행해보고 싶다며 다시 뉴욕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때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만, 이제 어떻게든 잘 지내는 호노카를 보면 뿌듯하기도 합니다.




저만이, 혼자 일본 안에 남았습니다. 아무래도 외국은 저와 맞지 않는 것 같기에.




저는, 에리와 같은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학비가 싼 편은 아니었습니다만, 어머니가 찬성하시고,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아서 학비의 일부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어찌저찌 다닐 수 있었습니다.




에리는, 특유의 총명함으로 전액장학금을 받아서 편하게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에리의 하숙집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에 기숙사를 따로 빌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저와 에리가 같은 대학에 갈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일까요. 기숙사 문제가 없었으면 에리는 더욱 더 멀리 갔겠죠.




대학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대학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인 에리와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었습니다. 이 무렵 즈음에 에리를 향한 마음이 점점 커져갔던 것이겠죠. 점점 의식하게 되어서 이상한 행동을 많이 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놀랍게도, 시간이 지나 대학 2학년이 되던 저에게 에리가 고백을 했습니다.




그 날, 처음으로 기쁨의 눈물이라는 것을 흘려보았습니다.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기에 에리가 많이 당황했지만, 저는 에리를 끌어안고 캠퍼스 한가운데서 대성통곡하는거는 안중에도 없이 당장 앞에 있는 에리를 감싸안고싶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거기다, 한동안 캠퍼스 안에서 저와 에리에 관한 소문이 돌았던거 같기도 합니다만. 아무래도 20년은 더 된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 후 몇 달 뒤, 에리가 그녀의 하숙집에서 동거를 제안해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대학의 학업은 눈 코 뜰 새도 없이 바빴지만, 에리와 저는 서로를 의지하며 어떻게든 졸업했습니다. 에리는 저보다 연상이었으므로, 1년 먼저 졸업해 먼저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학 마지막 해에는 주중 2일은 공강이었기에, 에리를 챙겨주는 마치 주부와도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아아, 대학 생활 중 저정도로 보람찬 일은 없었을 겁니다. 에리의 정장 차림이 너무 아름다워서 아침마다 멍하니 에리를 보는것도 일과중에 하나였을 정도로, 에리는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던 날, 저는 에리에게 청혼받았습니다. 대학에 와서 울었던 두번 모두 에리로 시작해서 에리로 끝나는, 어떻게 보면 환상적인 대학생활을 하게 해준 신님께 감사해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때 당시 일본에서는 동성결혼이 합법이 아니었으므로, 하는 수 없이 저희는 미국으로 가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부모님들은 오시지 않았지만(이 일 덕분에 어머님과 다툼이 있었습니다만, 에리가 상대여서 그런지 얼마 후에 화해했습니다), 옛 뮤즈가 전부 와서 축하해주는, 더할나위없이 행복한 결혼식이었습니다. 결혼식에서의 키스는, 생에 가장 행복한 키스였으리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 결혼식은 마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평생 갈 빛을 지고 말았습니다만, 뮤즈에 마키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고등학생때나 사회인이 되었을 때나 변하지 않습니다. 




이후로도 여러가지… 아무튼 도움을 많이 받게 되기 때문에 이제 저는 마키가 죽으라면 죽어야 할 처지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지만 정말 마키에게는 어떻게 더 감사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많은 걸 베풀어 준 마키에게 감사합니다.




결혼하고 난 뒤에는, 에리와 함께 러시아에 계신 에리의 할머님을 뵈러 갔습니다.




가장 크게 느낀 점 두가지는, 에리-치카는 진짜로 에리의 할머님이 에리를 부르시는 호칭이라는점과, 에리가 러시아말을 잘 못한다는 것이 사실 컨셉었다는겁니다.




제가 놀라면서 에리에게 어째서 뮤즈 활동중에는 러시아어를 안 내세웠냐고 물어보니, 에리는 싱긋 웃으며,




에리「어차피 내가 뮤즈에서 러시아어를 썼어도 아무도 못 알아듣잖아? 잘 알고있는 언어라도 반응이 없으면 쓰기 뭐하단 말이야.」




라면서 러시아어를 모르는 것이 미안해지는 발언을 했습니다. 아아, 얼마나 러시아 어를 쓰고 싶었을까요. 외국어를 모르고, 타지에서 생활해본 적이 없는 저로써는 얼마나 갑갑했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에리의 부모님도 뵈었는데, 놀라운 점은 에리의 부모님은 금발이 아니었습니다. 에리의 어머님이 은은한 갈색이 도는 머리색을 가지고 계셨고, 에리의 아버님은 아예 흑발이셨습니다.




우미(24) 「에리, 당신의 머리색은 어떻게 나온 걸까요? 제가 생물을 잘 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분명 금발은 열성인자라고 배웠습니다만」




에리(25) 「글쎄, 엄청난 우연 아닐까나? 나도 잘 모르겠는걸.」




우미(24) 「에리뿐만이 아니라 아리사도 그런 걸 보면 분명 복권을 세 번 연속으로 당첨될 확률일겁니다」




에리(25) 「에에? 그렇게 신기해? 그렇다는건 나는 앞으로도 복권에 당첨 안 된다는 소리일까나」




우미(24) 「네, 하지만 제가 당첨되버렸네요. 에리라는 복권에 말이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만, 신혼인 당시로써는 어떤 말을 해도 부끄럽지 않던 철면피가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 돌아오고 난 뒤, 저는 어머니가 하시던 도장을 물려받고, 에리는 사무원으로 도쿄의 기업에 취직해 회사 내에서 「금발벽안의 초미녀 철벽마무리」라고 불렸습니다




철벽마무리…라는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나중에 찾아보니 야구 용어였습니다), 애인이 회사에서 초미녀라고 불린다는건 기쁜 일입니다. 에리에 걸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행복하면서도, 서로에게 충실한(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시간을 보냈습니다. 2년동안의 시간은 눈깜짝할 새 지나가, 에리와 제가 교제를 시작한지 5년이나 지났을 무렵입니다.




5년째를 기준으로, 에리의 몸에 변화가 조금씩 찾아왔습니다. 에리의 체력이 눈에 띄게 저하된 겁니다.




처음에는 그… 밤일…이 너무 격해서, 라고 생각해 일주일간 서로 밤일을 참아보기도 했습니다만 나아진 없는 상태.




결국 몇 주 뒤, 서로 시간을 내서 같이 마키가 일하게 된 병원으로 찾아가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본 마키가 반갑기도 했지만 에리의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었으므로 에리의 진료를 부탁했습니다.




마키가 직접 진료해 본 결과, 일반적인 진료로는 딱히 문제점을 찾을 수 없었던 관계로, 에리에게 CT스캔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CT스캔을 한 며칠 뒤, 마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로 말하기 힘든 긴급사안이니 에리와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와 달라는 말과 함께.




불안감을 가슴에 안고, 에리가 일하는 회사로 달려가 에리를 데리고 니시키노 병원으로 갔습니다.




니시키노 병원에서 맞아준 건 눈이 충혈되어 부어있는 마키였습니다. 불안감이 확신이 되는 순간, 이럴 때만 감이 좋은 저를 원망하고 또 원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키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저희 둘을 데리고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마키는 진정이 되지 않았던지,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양 손에 얼굴을 묻은 채로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상당히 심각한 것이라는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저도, 그리고 에리도 느낄수 있었기에 저희는 손을 단단히 마주잡고 마키가 진정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십여분쯤 후, 마키는 심호흡을 크게 두어번 하고서는,




마키「미안해.  예상했겠지만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결코 좋은 이야기는 아니야. 지금 듣고 싶지 않다면…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할게.」




예상 외로 마키가 약하게 나오는 것에 저와 에리, 둘 다 놀랐습니다. 그 뒤 저와 에리는 서로 시선을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키는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더니, 곧이어 에리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마키의 말에 의하면, 에리는IPF라는 질병을 앓고 있다고 했습니다. 곧이어, IPF가 뭔지 모르는 저희들을 위해 마키가 설명을 계속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IPF는 특발성 폐섬유증, 즉 부드러워야 할 폐의 조직들이 점점 딱딱해지며, 숨을 쉬는 기능이 폐가 딱딱해지면서 사실상 소멸되는 질환이라고 했습니다.




숨이 가빠졌던 이유는, 폐의 악성 염증에 의한 섬유화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 이라고 마키는 계속해서 설명했습니다. 에리의 얼굴은 의외로 담담히, 마키가 말하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에리「그럼, 치료는 가능한거야?」




마키는 에리의 질문을 듣자, 표정이 급격하게 안좋아졌습니다.




표정으로 미루어보아, 대답은「아니」라고 알았습니다.




마키「현재의 의학기술로써는, 없어. 우리들 의사가 해줄 수 있는건, 남은 시간동안 에리가 최대한 덜 아프게 해주는 것 뿐…」




저 말을 마치고, 마키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옆을 돌아 에리를 보니, 에리의 얼굴에서는 한줄기 눈물이 흘러, 목을 타고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그 얼굴은, 기억 속에 너무나도 선명히 남아 평생을 아름다운 악몽이 되어 저를 뒤쫒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답기에, 너무나도 연약했던.




결국 사망선고일이나 마찬가지였던 그 날, 저, 마키, 그리고 에리는 배경색만큼이나 어두운 소식을 가져온 CT스캔을 제외하면, 흰색천지인 그 진료실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 뒤로는, 에리도 저도 직장을 그만두고(도장은 어머니께 다시 부탁드리고) 폐섬유증을 치료해보기 위해 발악하는 하루하루였습니다.




신약을 테스트해보고, 임상실험에 지원하고, 온갖 약이란 약은 받아서 먹는 하루하루가 지날동안, 에리의 폐는 점점 섬유화되어갔습니다. 윤기있던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해지고, 한때 제 온몸을 유린했던 아름다운 손가락의 끝은 뭉툭하게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폐 이식을 상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에리는 아직 젊으니까, 가능성이 있다는 의료진의 말은 저와 에리에게 희망을 갖게 해주기 충분했습니다. 폐는 이식율이 낮은 장기중 하나입니다. 거부반응을 일으키는경우도 많거니와 애초에 기부자가 별로 없습니다.




한동안은 기부자를 찾는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만, 결국 기부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저도 지원했었습니다만, 최근 활성화된 DNA속의 크레아틴을 사용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지 시험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어 테스트해보았습니다만, 멋지게 빗나가버렸습니다. 




에리에게도, 저에게도 독이 되는 시술이 될 것이기 때문에 제 폐를 기증한다는건 백해무익한 일, 이라고 마키가 설명해 주었습니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에리였습니다만, 시간과 섬유종은 그녀를 가차없이 깎아내려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녀의 폐와 마음은 산산조각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에리가 IPF진단을 받은 지 7개월이 약간 안 되던 때, 에리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습니다.  휠체어에 의존해, 강제적으로 산소를 불어넣어주는 산소 호흡기가 필수가 되었습니다.




진단 후 꼬박 1년이 지났을 때, 에리는 뮤즈 전원과 다시 보고 싶다, 라고 했습니다.




뮤즈 모두에게 연락을 취해, 어떻게든 전원 모일 수 있었습니다.




외국에 나가있던 호노카나, 코토리, 노조미(자유로운 영혼이라면서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까지 전부 귀국해 줄 정도로, 뮤즈가 서로 한사람한사람 소중하게 여긴다는 증거였겠지요.




모두 모였을 때, 에리를 제외하면, 전부 울었습니다. 모두가 울 때, 에리만은 웃으며,




에리「오랜만에 이렇게 다 모였는데 만나자마자 울기야?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좀 더 웃으면서 가자고!」




애써 밝게 웃으며 말하지만, 에리의 얼굴에서 저는 슬픔을 보았습니다. 저 말 한마디조차 하기 힘들어진 에리에게는, 저게 최선이었겠지요.




그 후, 여러군데를 다녀보았습니다.




오토노키자카에 가 보거나,




에리가 좋아했던 파르페 가게(지금은 닫았습니다만),




그리고 도쿄돔까지.




에리가 건강했었더라면, 마치 전부 고등학교때로 돌아간 느낌이었겠지요.




너무나, 바뀌어버렸습니다.




린은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일본 대표 미녀 육상선수가 되었고, 코토리는 유학을 마치고 이탈리아에서 프로 의류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하나요는 일류 아이돌 매니지먼트 팀의 팀장이 되었고, 니코는 하나요와 같이 일하는 솔로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호노카는 뉴욕에서 혼자 공연을 하고, 노조미는 전세계 곳곳을 떠도는 여행자가 되었습니다.




마키는 니시키노 종합병원의 최고를 달리는 외과의가 되었고, 저는 어머니의 도장을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에리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요. 이유를 모르는 이 불치병은, 어째서 제가 아닌 에리를 선택했던 것일까요.




휠체어에 앉아 조용히 도쿄돔을 보던 에리는, 문득 저를 돌아보고서는




에리「기회가 되면, 다음에 모두 다 같이 뉴욕에 한번 더 가고 싶네. 」




라고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우미「예. 반드시, 에리가 완쾌되고 나면, 모두 함께 보러 가죠.」




너무나도 무책임한 대답. 지금 상태가 계속된다면 절대로 이루어질 일 없는, 작지만 너무나도 과분했던 소원. 하지만 에리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대답은 없이, 작은 미소만 입가에 띄우고 있었습니다.




모두와 만난 다음 일주일 간, 에리의 상태는 급격하게 나빠졌었습니다.




더 이상 휠체어에 의존할 수도 없이, 병실의 한 구석에 누워 창가를 바라보는 것이 에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에리는,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린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로써는, 나아질 거라고, 희망을 가져보자고 말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며칠 뒤의 밤, 에리는 저 모르게 냉동수면업체를 고용했다는 걸 알렸습니다.




에리「우미.」




우미「네, 에리. 무리하지 마시고 짧게 말씀해주세요.」




에리「우미가 바쁜동안, 외국의 냉동수면업체를 고용했어. 비용은, 치료비로 빼놨던 돈에서 지불했고…」




우미「에리! 어째서… 어째서 그런 일을… 그런 거, 그런 거 고용해 버리면, 마치…」




우미「마치 에리가 더 이상 살기를 포기한 것 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에리…」




에리가 차분한 목소리로 진실을 고백하자, 더 이상 차분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굵은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눈가를 타고, 볼을 타고, 턱까지 내려가, 손등과 무릎에 떨어졌습니다.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고통스러운건 이해하지만, 살아나고자 하는 의지가 꺾인 에리, 그리고 애인이 그렇게까지 떨어져가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제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습니다.




며칠동안 에리를 계속해서 설득해보려고 했으나, 에리는 완고했습니다.




결국, 에리의 완강한 고집에 못 이겨, 우선은 에리에게 알겠다고 말했습니다. 잘못된 판단이라는 걸 알면서도,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수긍하는 듯 한 말을 하자, 에리는 그 달 중에 본 것중 가장 환하게 웃으며, 「고마워」 라는 한 마디를 할 뿐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정기 CT촬영 전, 에리는 저를 부르고는,




에리「냉동수면에서 깨어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IPF가 별거 아닌 정도로 되는 그런 때가 온다면, 나는 완전히 과거에서 날아온 사람이 되어있겠지,」




말하는 것이 힘든지, 에리는 저 말을 마치고는 숨을 몇번 거칠게 고르더니,




에리「그러니까, 나랑 약속 해 줘,」




에리「내가 깨어났을 때, 새로운 기술에 뒤쳐지지 않도록,」




에리「새로운 기술들의, 사용 설명서를.」




에리「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된, 사용 설명서를」




에리「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저 말을 하기 위해 온 몸의 에너지를 쥐어짜낸 듯한 에리는 한동안 거칠게 숨을 쉬면서, 제 대답을 기대하듯이 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우미「…네, 알겠습니다, 에리.」




대답을 하는 제 목소리는, 변조된 목소리마냥 떨리고, 이 때의 며칠 전부터 정상적 기능을 상실한 눈물샘은 망가지기 직전 라스트 스퍼트를 하듯이 엄청난 양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저때의 대답은, 사랑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주박이 되고, 저주가 되어 평생 저를 쫓아다니겠지요.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확실해진 이별의 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기약없는 재회의 약속을 받아내던 에리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그날 촬영한 CT에서의 폐섬유화 진행율은, 85%를 넘어버렸습니다.




언제던지, 에리의 폐가 제 기능을 상실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 날, 에리와 계약한 냉동수면업체, Cryolix라는 회사에서 전문의가 파견되어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한시를 약간 넘긴 시간, 마키와 정기검진을 받던 중 에리가 말했습니다.




에리「마키」




마키「응」




에리「고마워.」




갑작스럽게 감사함을 표하는 에리에 당황한건지, 아니면 의사로써의 직감이 있었던 걸까요.




마키는 잠시 굳은 표정을 하더니, 이내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마키「…응. 에리야말로, 에리로 있어줘서, 고마워.」




작고 수줍은, 하지만 확실한 목소리로, 마키는 대답해주었습니다.




에리「우미」




우미「네, 에리」




에리「사랑해.」




우미「네, 저도 에리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꽉 잡은 에리의 손을 양손으로 감싸고, 이마를 가져다 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저 자그마한 대화가 오고 간 뒤 3분도 지나지 않아, 에리는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에리를 지탱해오던, 이미 한계를 넘어버린 폐의 기능이 정지해, 숨을 쉬지 못하는 에리의 손을 꽉 잡았습니다.




발작을 일으키던 와중에도, 에리는 저를 보면서 말을 전하려 했습니다.




이미 폐 안에 남아있는 공기는 없어, 소리가 되지 못 했던 한 마디.




「잘 자」




라는 입모양을 만들고는, 에리는 곧 발작을 멈추었습니다.




에리를 끌어안고 흐느끼는 저와, 옆에서 조용히 울고있는 마키.




그리고 에리의 발치에는, 냉동수면을 준비하는 전문의가 있었습니다.




전문의「니시키노 의사, 당신이 부르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전문의의 말에, 마키는 눈가를 소매로 대충 닦고 시계를 보더니,




마키「사망 시각, 13시..42분..」




마지막까지 친구로써,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의사로써,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을 에리와 저, 둘 다에게 해주었습니다.




에리의 장례식은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뮤즈의 모두가 반대하는 듯한 기색이었습니다만, 노조미가 저와 에리의 뜻을 이해해 주자 모두들 힘들지만 수긍해주었습니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모두에게,




괜찮다고 대답했습니다.




슬프지만, 그렇게 대답해야 했습니다.




모두들 괜찮지 않다고, 눈치 챘지만, 애써 강한 척을 했습니다.




에리의 몸은, 냉동수면인 상태로 보관되어, 신설되었던 도쿄대학 의료연구소의 별관 -지금의 냉동수면실-에 안치되었습니다.




에리가 언제 깨어날 지 모르는 잠에 든 이후, 저는 폐인처럼 변했었습니다.




2년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모두와 멀어져, 연락도 하지 않고, 다만 살아있기 위해서 최소한의 것들만 하면서.




어느 날, 바쁜 와중에도 마키가 집까지 찾아와서, 말없이 집안에 제 뺨을 세게 쳤습니다.




마키「우미…! 에리랑, 약속했잖아?! 벌써 잊어버린 거야? 에리는, 네가 이렇게 될 걸 내가 진단해준때부터 걱정했을거라고!」




비틀거리며 마루에서 일어나, 공허한 눈으로 마키를 바라보았습니다.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엄청나게 화나 있을 줄 알았습니다만, 마키는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울고 있었습니다. 뛰쳐나간 마키를 잡지 못했지만, 덕분에 제 정신을 차렸습니다.




마키가 아니었으면 저는 어떻게 되어있었을까요. 분명 탈진해서 죽었거나, 아직도 폐인처럼 겨우 살고 있었겠죠. 역시 마키에게는 너무나도 많이 빛을 졌습니다.




그때부터, 도장을 운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시 몸을 단련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신기술들이 적용되는걸 찾아보고, 평소에 잘 다루지 못했던 테크놀로지들도 잘 다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했던 건, 냉동수면에 관련된 내용들. 연구에 발전이 있거나, 성과를 발표하면 반드시 찾아보는 내용들. 이제는 거의 준 전문가가 다 되었습니다.




에리가 잠에 든 지 2년이 조금 지났을 때부터, 「에리가 있었다면 썼을만한 물건들」을 사기 시작해, 글로 사용 설명서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글로 시작되어, 음성을 글로 바꿔 적어주는 도구도 나와 형태는 가지각색이 되었습니다만.




에리가, 깨어나게 되면 언제든지 새로 나온 물건들을 쓸 수 있도록.










사용 설명서를 적는 건, 15년 후인 지금까지도 계속 되어, 지금 이렇게 에리를 만나러 올 때도, 에리를 위한 사용 설명서를 만듭니다.




에리가 있는 유리관 옆에 앉아 과거 생각을 하는 것도, 제 일과 중 하나입니다.




8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저와 에리가 나누었던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들.




너무나도 짧았기에 너무나도 눈부신 시간들.




잊지 않기 위해서, 고통스러워도 매일 곱씹으며 되뇌입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에.




아마도, 에리가 깨어나는 그 날 까지도 저는 사용 설명서를 만들고 있겠죠. 한때는 저주..라고도 생각했습니다만, 이제는 저와 에리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차디찬 유리관에 손을 얹으면, 좀 더 에리와 가까워지는 느낌입니다.




우미(45)「에리, 당신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미「당신은 이렇게나 아름다운 그대로인데, 저는 점점 나이가 들어 갑니다.」




우미「에리는 춘정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나이대 그대로입니다만」




우미「이제는 점점 어머니와 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혼자 말해도 되돌아오는 대답은 없이, 항상 하지만, 항상 괴로운 반복작업.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요, 하지만 그 사람들 중에는 적응을 못 하는 개체들도 있나 봅니다.




우미「그러고 보니, 에리가 깨어나면, 에리는 에리인 그대로일까요,」




우미「테세우스의 배, 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미「시간이 지나면서 배의 부품을 조금씩,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서 모든 부품을 바꾸면 새로운 부품이 들어간 배는 원래와는 다른가, 라는 패러독스입니다만.」




우미「에리는 깨어나도 전부가 바뀌는건 아니겠지만」




우미「과연 에리가 깨어났을 때 제가 아는 그 에리가 맞을까요?」




아직까지도 사람의 기억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지만, 실적은 없는 모양입니다.




우미「벌써 시간이 다 됐네요. 방이 춥기 때문에, 건강상의 이유로 한 시간 밖에 못 있는 게 씁쓸합니다만.」




의자에서 일어나, 유리관 너머로 보이는 에리의 입술에 키스를 합니다.




되돌아오는건 차가운 유리의 감촉.




우미「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우미「내일 뵙겠습니다, 에리. 안녕히 주무세요.」




유리관이 있는 밀실의 문으로 가자, 자동문은 예리한 기계음을 내며 열립니다.




방에서 나와, 뒤돌아 보면 벌써 방 안의 조명은 꺼져 칠흑과도 같이 됩니다.




그리고, 김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자동문은 굳게 닫혀버립니다.




내일 다시, 오도록 하죠.




---




에리가 잠에 든지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고,




60년이 지나도,




결국 냉동수면에 들어간 사람을 깨우는 방법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IPF에 대한 치료법이 나왔지만, 냉동수면에 들어간 사람을 깨울 수가 없습니다.




최근, 꿈의 문을 보는 꿈을 자주 꾸게 됩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고 굳건히 닫힌 채.




본능적으로 문을 열 방법을 알고 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잠시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이기적인 열망 하나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길을 걸어갑니다.




천장에 보이는 불빛들은 점점 뿌옇게 변해가고, 이윽고 온몸에 감각이 사라집니다.




꿈의 계속을 보게 됩니다.




아담하면서, 아름다웠던 꿈의 문이 열려,




그 건너편에는.




분명 평생 바라마지않던, 꿈의 연장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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