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실, 새 사람들, 새 학교.
나에겐 모두 의미없는 이야기였지만, 한가지만은 퍽 마음에 들었다.
여기 음악실에 피아노가 있었다는 것이다.
-3일전-
잊혀질만도 했지만 계속 이유없이 꿈에서 나오는 그날의 기억.
2등이라는 작은 균열감.
의사가 되고싶었고, 아버지와 같은 입장이 되고싶었다.
누가봐도 인정할만할 멋진 사람이 되고싶었다.
-마키가 벌써 말을 한다고? 대단하네.
-마키가 벌써 글자를 쓴다고? 정말?
-마키가 벌써...
-피아노를 시작했다고? 알아서 잘하겠지.
그리고 그날, 2등이라고 적혀있는 작은 트로피를 보신 순간 아버지의 얼굴에 작디작은 실망감이 지나갔었다.
퉁퉁부었던 눈을 작은 손으로 닦으며, 칭찬, 혹은 위로를 바랐던 작은 아이는 그 얼굴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니시키노 마키는 아버지가 내게 칭찬을 하기를 원한다.
그러니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한다.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해서.
그래서 다음 날, 피아노를 내 시야에서 없애버렸다.
내가 실패했던건 보고싶지 않았으니까.
피아노를 치는건 꽤 재밌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다른 멋진것을 찾을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
처음 고등학교를 온 오늘, 나는 음악실이라는 교실앞에 홀린듯이 멈춰섰고 지금 피아노를 바라보고있다.
-바보같이, 이제와서 무슨 피아노는...
시야를 가득 채우는 흰 건반, 검은 건반의 끝없는 행진.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가져가서 어루만져보았다.
관리가 잘안됐는지, 약간의 먼지가 붙어나왔다.
-...
먼지가 붙은 손가락에 눈길이 갔다,
처음 피아노를 쳤을때의 나와 다른 사람인것만 같은 괴리감이 들었다.
그 날에 연주했던 곡, reminiscence.
반주를 치는 왼쪽손에 힘이 과도하게 들어갔다,
마치 내손이 아닌것만 같은. 녹슨 기계장치같은 이질감만이 내 몸을 엄습했다.
오른손과 왼손과의 타이밍이 맞지않았다.
어설픈 반주위에는 바보같은 연주가 있었다.
-역시, 오랜만에 하려니 안되는걸까.
의미모를 행동이였지만, 이제는 피아노는 나와 연관이 없어진 물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이 나왔다.
-뭐해? 계속 연주안하고?
-...!
나가야지, 하고 일어선순간 나의 시야밑에 한명이 있었다.
흑색의 베일같은 머리카락에 숨겨진 보석.
그녀는 적안, 붉은색 잉크로 물들인듯한 보석안이였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풀어헤친교복, 속에 걸쳐입은 가디건.
아무리봐도 좋은 인상은 아니였지만-
초면에 이런 껄렁껄렁한 모습인 사람에게 드는 불쾌감보다는,ㅡ 관계되기 싫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저, 죄송하지만 나가보겠습-
-피아노 잘치던데? 언제부터 배웠어?
아무것도 모르는사람이.
잘한다는 말을ㅡ
-...!
아차, 한 순간에는 이미
-실례지만 누구신데 저한테 이러시는거죠?
-실례야, 묻지마.
빙긋 웃는 그녀에게, 결국 아무 대꾸도 할수없었다.
그대신, 입에선 다른얘기가 흘러나왔다.
-...전 피아노 싫어해요.
-왜? 잘하던데.
-내가 못하는걸 알면서도 이걸 계속할 자신이 없으니까.
-...흐-음. 무서운거야?
무서웠다.
-무서워요. 내가 노력해도, 이것만큼은 잘하지 못할것만 같아서.
-그래도 좋아해서,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러고 있는건 아니야?
-좋아하는것보단, 내 실패가 더 무서웠으니까.
그 말에 그녀는 잠깐, 생각에 잠긴듯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원래 짓고있던 미소띈 표정이 되었다.
-나는, 하고싶었던 일을 지금 세번째 실패했어.
-다음번에도 실패할까봐 무섭진 않아요?
거기서 그녀는, 씩 웃움을 지어보였다.
-실패같은거, 별거 없더라.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 만족감이야. 봐봐. 나 웃고있는거. 보이지?
-...그건 아닌거같은데.
-너도 언젠가는 알게되겠지. 앗, 떨어졌네.
놓여있던 악보를 집어든 순간, 그녀는 내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드디어 헛것이 보이는건가.
다시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하고싶은.
딱히,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아니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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