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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달려가는 그 손을 붙잡아






“뭐, 무슨 소리야.”


“에. 있는 그대로 말한건데, 혹시 못 알아들은건가? 헤어지자는 말이었는데-”


내 앞의 자그마한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갸우뚱거렸다.

마키쨩은 똑똑한데 이런건 의외로 바로 못알아듣네, 라면서.

나 역시 그녀가 어째서 이런 말을 꺼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야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 특집의 생방송 오디션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그녀가

오랜만에 만나자며 겨울방학의 공부로 바쁜 일요일의 나를 불러내서는,

자주 다니던 카페의 지정석과 다름없는 창가 쪽 구석진 자리에 마주보고 앉아,

꽤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어갈 쯤에,


갑자기 저런 괴상한 문장을 내뱉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늘 그랬듯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오디션 준비로 바쁘고, 너 역시 의대입시준비로 바쁘고.

나는 겨우 ‘좋아한다’ 라는 어린애 같은 핑계로 시간 내서 만날 처지도 아니니

서로 바쁜 와중에 만나는 것도 귀찮은데, 이번을 마지막으로 만나지 않는 게 어떠냐.


그저, 우리들이 3년간 해왔던 것은

어릴적 사랑에 대한 동경을 따라 저질러버리고만 애인놀이가 아니였냐.



“꽤……태연하네.”


“그래? 애초에 여고 특유의 분위기다 보니까, 나 자신도 모르게 여자를 좋아한다 착각한거고.

마키쨩 ‘도’ 그러지 않아? 먼저 고백한 것도 그냥 노조미 말 듣고 홧김에 한거였지?

아- 혹시 이게 사랑인걸까, 하고 말이야. 사실 사랑이 아니라 그냥 친구로써의 우정이었을 뿐인데.”


“그렇지 않아. 난-”


“아냐! 한번 마키쨩이 대학 가봐. 잘생기고 쭉쭉 뻗은 남자들 만나고 하면 다 달라진다니까~”

  


당연히 이번 오디션에는 분명, 절대로 합격할 그녀를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는 평범한 나를 상상했었다.


‘이번에는 당연히 합격할 거니까 미리 축하해줄게-’ 같은 속 편한 말을 하면서

휘핑크림이 듬뿍 들어간 바닐라 라떼를 쭉 빨아먹는 모습.


그에 맞춰서 그녀가 대답할 가능성이 있는 25가지 대사도 예상해 놓고, 받아칠 준비도 해놨는데,

어째서 그런 말을 꺼낼 수 있는 기미조차 만들어주지 않는 것인지.




물론, 지금 그녀와 함께 바닐라 라떼를 빨아먹고 있긴 하다.

내 상상과는 다르게 속 편한 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우연히 만나게 된 텐션높은 선배에 의해서

스쿨 아이돌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이상한 부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거기서 이상한 3학년 선배를 만났을 뿐이다.


그 이상한 3학년 선배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항상 이상한 트윈테일을 하고 있으며,

귀엽게 생긴 외모로 니코니코니- 라는 이상한 컨셉을 주장하고,

다른 선배들과는 다르게 쬐끄만 신장으로 내 관심을 이끌어냈다.


자신이 귀엽다고 생각하는 포즈를 이리저리 취하고, 거울을 보며 내게 또 한번 물어보고,

내 반응이 달갑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나 역시 그 선배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자주 다투고. 그 과정에서 어째서인지 그녀에게 알 수 없는 동질감과 함께,

무언가의 따뜻한 감정을 느꼈다.



“마키쨩, 듣고 있어?”



내 이름을 부르는 평범한 목소리조차도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슈퍼 아이돌 이라는 말도 안되는 꿈을 꾸는 듯 했지만,

그만큼 그녀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에 노력하는 모습에는 전혀 부족한 점이 없었다.


그것은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약간의 동경심은 전혀 다른 감정이 되어 내 마음속을 간지럽혔고, 그것이 나를 끌어당겼다.


그렇기에 피아노 치는 모습이 신기하다며 다가오는 그 빨간 눈동자에 나는 푹 빠져있었다.

어느 순간,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모습에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이런 감정은 어린 나에게 처음이었기에 조금 두렵기까지 하였다.

결국 나는 가장 신뢰하는 선배인 노조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었다. 이것이 사랑이라고는 생각도 못한채로.


나는 이것이 사랑이라고 알게 된 것은 이미 1년이 지나 그녀의 졸업이 다가오는 날이었다.

마음을 정리해 그녀에게 노래를 불러 허둥지둥 고백했다.


이 뒤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엄청 부끄러웠던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녀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보장된 미래를 가진 나에게 동경심을 품었고,

나의 달갑지 않았던 반응에 매일 다툼에도 불과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었다.


우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작 15년 남짓 살아온 꼬맹이가 무슨 사랑 타령이냐 자신에게 되물어봐도,

꼬맹이도 사랑의 감정 정도는 느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반박한다.


나는 분명히 사랑을 느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만이 아니라,

그녀에게 일일이 반응하는 내 신체에서부터 뼈져리게 느꼈다.


그런데, 뭐?



“음-솔직히 여자끼리라니, 사회 나가려보니까 더럽게 느껴지더라고. 주위사람들 다 멋진 남자랑 연애하는데

나는 이쁜 여자랑 뽀뽀한답니다……. 으엑. ”


“…….”



니코쨩은 입에 물고있는 빨대를 잘근잘근 씹으면서 말했다.



“아아~ 그러니까 마키쨩도 빨리 그런 마음 버리고 남자 한번 만나보는건 어때?

뭐, 니코처럼 귀여운 사람이 취향인 것 같으니까,

내 주위에 귀여운 남자는 한두명 정도는 소개시켜줄 수도 있……?”



나는 그녀의 입에 물려있는 빨대를 쏙 뽑아갔다.

그것으로 라떼 속의 휘핑크림이 잘 섞이도록 저은 뒤, 툭툭 털어 쟁반 위에 조심스레 올려놨다.

몇 모금 마시지 않은 L사이즈의 바닐라 라떼 수류탄은 그렇게, 그녀의 뽀얀 얼굴에 투척되었다. 



“에. 푸앗. 잠깐, 뭐하는, 으겍!”


“그러고 다니면 누가 안더럽게 느껴지겠어? 바닐라 냄새 풀풀 풍기면서 집이나 가라고.”


“……뭐라고?”


“니코쨩 말이야, 이런말 하려고 바쁜사람 불러냈나봐? 가서 그 잘난 남자들이랑 오디션 연습이나 하시던가.”



저질러 버렸다.

완전히 미움받겠지, 이제는.



“뭔……. 진짜 완전 재수없다니깐…….”


“그래. 나도 지금의 니코쨩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잘있던가.”



나는 그녀의 얼굴을 이리저리 째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까만 머리카락부터 분홍색 원피스의 끝자락까지 향긋한 라떼가 흘러내리는 그녀를 보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같이있던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이런 상황에, 내가 할 수있는건 최대한 쪽팔리지 않게 당장 카페를 뛰쳐나가는 일 뿐이었다.





죄책감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니코쨩은 그저 나를 위해 해준 말이었는데, 내가 너무 심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름 크리스마스 선물로 다이아몬드가 이쁘게 박힌 반지도 준비해 놨었는데, 두 개 다 내가 껴야할 것같다. 

후회는 없다.




“저기……. 야자와 니코 맞죠? 니시키노 마키랑 무슨, 아 일단 사인을 좀…….”





기다려. 가지마 마키쨩, 발이 떨어지질 않아.

안돼, 저 손을 붙잡아야 하는데…….





“……그런 사람 몰라요.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나 역시 마키쨩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휴지로 얼굴을 닦으면서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카페에서 놀기엔 아직 하지 못한 것들이 많으니까.



연습이라던지, 연습이라던지, 연습이라던지, 아니면…….




이제 마키쨩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떻게 달래줄까 생각해둬야 하는 것이라던지.


계획하지도 못한 일이, 하나 더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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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부터 시끄러운 벨소리가 울린다. 시계를 보니 지금은 오후 2시로, 아침이 아니었다.

어제 밤을 새서 7시까지 공부한게, 자고 일어났는데 오전이 아닌 것의 원흉이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하나요였다.



“하나, 요……. 안녕…….”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내 입술은 아직 잠이 덜깼는지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다.


「어라? 미, 미안해 마키쨩. 아직까지 자고있을줄은 몰랐어... 조금있다가 다시 전화할까?」


“괜찮아……. 무슨, 일인데?”


「그게, 니코쨩이 오디션에 떨어졌」


“베에엑?! 그 생방송이라면! 니코쨩 분명 거기서 떨어지면 아이돌 포기한다고 했단 말이야! 말도 안돼! 이럴순 없어! 어째서야, 뭐가 문제였던건데! 그 회사, 찾아가서 박살내주겠어!”


「지, 진정해 마키쨩! 광고 CM 말하는거야!

생방송 오디션은 저녁에 하는거라구……. 내가 말하려는건 따로있어.」


맞다,  저녁에 하는 오디션이었구나.


니코쨩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하루에 몇 개씩이나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처음에 붙은 곳은 회사가 부도로 망해버렸고,

두 번째는 6인 그룹으로 꽤 대박날 뻔 하다가 한 멤버의 마약복용으로 인해 강제해체당했다.

세 번째 역시 그리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대학생활과 연습을 병행하며, 아주 가끔씩 유명 엔터테인먼트에 지원하기도 한다.

물론 온갖 더러운 수단들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선택된 한명이 되기란 쉽지 않았지만.



「그, 니코쨩의 성대에 부종이…….」



하나요는 말하기 조금 껄끄러운듯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왜 말하다 마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이내 나는 하나요가 무엇을 이야기 하고싶은지를 직감했다.


그제서야 어제 일이 떠오른다.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니코쨩의 말이 떠오른다. 그 후 집에 돌아가서 나는 죽을듯이 공부했다.


시간 날때마다 몇 번이고 공부해서 완벽하게 외워버린 교과서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읽지 않은 전문 서적들을, 몇 번이나 쳐다봤다.


천천히 복습하려고 사둔 문제집도 몇 시간만에 전부 풀어버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뇌리에 박혀버린 그녀의 한마디가 절대 빠지지 않을 것 같았다.

더 이상 공부할 것이 없어지자, 그 한마디가 계속해서 내 신체를 침식해나갔다. 내 눈동자는 점점 깊은 바다로 변해갔고, 그것이 넘쳐 흘러 어느샌가 분노라는 감정으로 변해갔다. 그녀를 증오하기 까지 했다.


「그래서 방금 오디션도 떨어지고, 이제 노래를 부를 수가」


“됬어. 알고있으니까.”



나는 그녀를 증오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울화를 어떻게 감당해야 했었을까.

이것이 밤에 읽었던 전문 서적에 적혀있던

‘노르에피네프린’ 호르몬이 과다분비 되었을 때의 분노 현상이구나,

직접 체험하다니 대단해- 라며 자신을 다독이다 보니, 그제서야 내 상황을 이해했다.


나, 차였구나.


이때는 펼쳐놓은 답안지를 구깃구깃하게 적신 물 웅덩이 조차도 원망스러웠다.


전화번호부의 니코쨩을 삭제해버려도, 이미 머릿속에 백업해둔지라 소용이 없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사진을 전부 지워버려도, 클라우드에 전부 자동으로 백업되는지라 소용이 없었다.


내게 남아있는 추억들과 클라우드 계정은 차마 없애지 못했다.

그야 니코쨩과의 기억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보물과도 같은것이니까.


그렇게 스마트폰에 그녀의 번호를 다시 등록한 뒤 움켜쥐고 울다 지쳐 잠들었던 것이다.


「성대 부종이란거 혹시 심각한거야? 니코쨩은 괜찮다고 하던데 안괜찮아 보여서.」


“으음, 지속적인 피로와 과도한 성대의 혹사 등으로

점막을 지속적으로 자극할 경우 성대 점막이 부어오르고 성대 부종이,

어, 초기에는 그냥 며칠 쉬기만 해도 가라앉고”


「아, 응. 일단 알았어!」



분명 며칠을 밤새서 연습했겠지? 오디션이 이틀 연속으로 두 개라니.

심하지 않으면 그냥 꼼짝없이 집에서 따뜻한 물이나 마시면서 쉬면 되는 일이지만…….



「일단 오디션 끝나면 다같이 크리스마스 파티 하기로 했으니까,

마키쨩은 다른 일 없으면 되는대로 준비하고 10시에 오디션장 앞 키라키라 치킨집으로 와.」



“알았어.”



다같이라니, 당연한 거지만 니코쨩도 오겠지.

그것도 그냥 니코쨩이 아니라 전국민 방송으로 울려퍼지는 괴상한 목소리로 오디션에 떨어져서

엄청나게 낙심하고 있는 니코쨩이 어색하게 내 옆에 딱 앉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 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어제의 일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차마 얼굴은 못 쳐다보겠지.

 

하지만 니코쨩도 잘못했는걸, 찰거면 제대로 찰 것이지 그렇게까지 사람 상처주는게 어딨어.

사실 내가 차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니코쨩이 나에게 조언을 한 걸 수도 있고.



그런데 영원히 안 볼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심하게 말해버리면…….


어라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솔직히 여자끼리라니, 사회 나가려보니까 더럽게 느껴지더라고. 주위사람들 다 멋진 남자랑 연애하는데,』



나는 진심이었다. 내가 얼마나 그녀를 좋아하는지 누구도 감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진심이었다.

이틀 전 까지만 해도 단 한번도 내 의지를 굽힌적이 없었는데,

그것을 본인에게 직접 들어버리니 정말 내가 느꼈던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그저 동경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몇 년 간의 의지가 창문 밖으로 날아가 차에 치여 죽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빨리 그런 마음 버리고 남자 한번 만나보는건 어때?』



어차피 결혼이라면 이성간의 혼인만이 인정되는 나라이니까, 언젠가 이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의 준비만 된다면 부모님이 정해주신 신뢰성있는 남성과 결혼 할 생각은 하고있었다.


그런데 그 때가 너무 일찍 와서 문제지.

하필이면 차이는 엔딩이라니, 너무나도 비극적이잖아 이건…….


니코쨩, 지금도 연습 하고 있을까? 그런 목 상태로 오디션에 나가봤자 망신만 당하고 내려올게 뻔한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진건지 그녀와는 한참 다른 나로써는 전혀 상상할 수가 없다.


……나는 그녀를 무대에서 제일 가깝게 볼 수 있는 최전열 티켓을 가지고 있다.

이번 생방송은 각종 SNS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여러 후보생들이 선별을 거쳐서 단 75명만 등장하고,

3개의 회사에서 4명씩 총 12명만이 합격하고 63명은 그대로 떨어진다.



그녀는 성공한 12명중 한 명일까, 아니면 실패한 63명중 한명일까?

오디션의 시작은 7시 부터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연습하고 있을 니코쨩을 봐야하니

서둘러 씻고 나가야겠다.


또, 나는 12명중 한 명이 될 사람을 코 앞에서 보러 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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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37분. 대형 방송국의 공동연습실 입구에는 쥐 죽은듯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런 방음기술이라면 안에서 비명을 질러도 못 알아채겠는걸.


영화관 문처럼 두껍고 무거운 문짝을 밀고 들어서니,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휑 한 연습실의 벽면에 붙어있는 거울에는 오직 나 혼자만이 비춰지고 있었다.


너무 일찍 온 것은 아닌지 다시 뒤를 돌아 돌아가려는 순간, 마스크를 쓴 ‘그녀’가, 내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니, 니코쨩.”


“……왜 왔어.”



그녀의 목소리는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고,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냥, 니코쨩이 보, 보고……싶어서.”


“……니코가…했던 말의 의미를…못 알아들었나 봐…?”


“알았어, 도, 돌아갈테니까 이제 말 하지마.

괜히 말하다가 더 안좋아지면, 정말로 오디션에 떨어질 지도 몰라…….”


“니코는……이번 오디션 떨어지면……접으려고.

이제 다시 도전할…용기도 없고, 너무 많이……실패해버려서,

잘 될지도 모르겠고…그나마 대학에서……학점이라도 잘 따고…있으니까……

아…진짜 목 너무…아픈거 아니냐고…….

의사가 오늘은……괜찮을 거라고 해서…CM은 버리고 이거에 몰빵……하려고…했는데…….”  


“그, 그만 말해! 그러다가 정말 목 나가버리면 끝장이잖아!”


“……내 무대는……니코니코…25 더하기 50, 마지막 75번째 니까 잘 봐두라고…….

비록 탈락하는……모습이더라도…그게 마지막 무대……니까,

혹시…연습하는……거, 보고싶으면…개인 연습실……, 따라 와…….” 



니코쨩은 나에게 이상하리만치 호의적이었다.


그녀는 어제의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려는 느낌이었고, 또한 없었던 일로 하고 싶다는 분위기였다.


아니, 이건 내 머릿속의 생각을 어느순간 그녀에게 맞춰본 것이다.

그녀는 그저, 나와 헤어지는 것 자체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것 뿐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조금 슬플지도 모르겠지만,

내 스마트폰 연락처에는 이미 ‘니코쨩’이 아닌 ‘야자와 니코’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제는 그냥 친구로써, 선배로써 곁에 있는 것이 이 사람의 전부다. 


“노래는……못 부르겠지만, 춤…추는거라도……볼래…?”


“…….”






친구로써, 선배로써라니, 그런걸로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여태껏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뭔데. 어른이 되면 하고 싶었던 제대로 된 프러포즈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평범한 사이로 돌아가기엔,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지 않은 것들도 많아서,

헤어진다는 것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인데,

이렇게 멀어진다면 지금껏 너를 위해 해온 짓들은 다 뭐가 되는 건데…….


너를 위해 처음으로 했던 한심한 짓. 내가 했었던 고백.

노조미에게 쫒기다 음악실로 숨어들어온 그녀를 위해 피아노를 치다가

그 자리에서 생각해낸 멜로디에 내 용기와 마음을 담은 가사를 노래로 만들어 부른 조촐한 사랑고백이었다.


이따금 다시 불러보려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기억나게 된다면 프러포즈 때 써먹으려고 했었는데, 이것도 무산되는 걸까.



“…안 와……?”





아직 마음을 정리하기는 무리인 것 같다.

증거로, 얄밉기만 한 니코쨩의 태도에 하나도 화가 나지 않는다.



“가, 갈게…….”



우리가 평범한 사이였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아야 할 텐데 말이다.



“……따라와.”



두 개의 상반된 마음이 교차하며, 나를 더 괴롭게 만든다.


이렇게 나를 평소처럼 대해주는 니코쨩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었으면.

또, 이런 사소한 행동에 쉽게 짜증낼 수 있는 나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볼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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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저희 회사의 가치관과는 조금 다른 외모를 가지신 것 같습니다.

가창력도 약간 별로인 것 같네요.”

 

“이야, 쟤 예선은 어떻게 통과한지 모르겠네. 키는 멀대같이 커가지고. 나도 안가져가.”



심사위원은 생각보다 거침없는 말솜씨와 천장을 뚫을 듯한 눈높이를 자랑했다.

74명의 참가자 중 선택된 합격자는 단 5명 뿐이었다.


사실 저들(5명에 들어가지 못한 나머지 69명)보다

준비조차 하지 않고 오로지 연습만을 하며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활동했던

스쿨 아이돌 시절의 내가 훨씬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건 기만이 아니라, 정말이다.


74번째 참가자가 울면서 무대를 뛰쳐나가자, 한 심사위원은 특기인 듯한 모함을 내뱉었다.



“이야, 어떻게 괜찮은 애가 한명도 없냐.”



특히 저 ‘키비히 엔터테인먼트’ 의 녀석은 정말로 마음에 안든단 말이야.



“이제 마지막참가자인가요, 나와주세요!”



마지막 참가자는 야자와 니코.

방금 참가자와는 대조되는 작은 키를 가진 여성이, 무대를 뚜벅 뚜벅 가로질러 정 가운데에 멈춰섰다.


연습실에서의 피곤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반짝거리는 눈과 자신만만한 웃음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심사위원들은 스태프가 건내주는 서류를 한 장 한 장 들춰보고서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모함했다.


모함이 계속 될 때 마다, 자신감 있던 니코쨩의 표정은 굳어만 갔고,

관객석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잔뜩 웃음 꽃이 피어만 갔다.


이 심사위원들은 정말로 모함이 특기인 것 같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참가자의 기를 죽이고 시작하면 누가 잘 할 수 있겠는가.


저런 말이 어딜 봐서 웃긴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사자는 전혀 웃고 있지 않으니 이제 좀 그만해 줬으면 좋겠다.

한낱 관객일 뿐인 나로써는 이 상황을 좋게 바꿀 능력이 없으니,

혹시 니코쨩이 날 쳐다보면 ‘화이토다요!’ 포즈를 취해주는 수 밖에 없다. 


2분동안의 정말로 기나긴 모함 타임이 끝나고, 그녀의 자기소개 시간이 찾아왔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관객석에 앉아있는 나를 정확히 쳐다보았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에게 그 천사같은 미소를 날린 것이었다.


나는 아까 생각한 대로 ‘화이토다요!’ 포즈를 취해주었다.

그녀는 눈을 돌려 다시 심사위원쪽을 바라보았고, 거침없는 심사위원의 말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이야, 3번이나 실패했으면 과연 언제쯤 포기하려나? 그럼 자기소개 한번 해볼래?”


“넵, 니코니코니- 야자와 니코 입니다! 말씀해주신대로, 아이돌 3수 하고 왔습니코!

연습을 너무 많이했나, 목이 조-금 아프네요! 양해해주면서 심사해주세-요!”



그렇게 니코쨩의, 마지막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무대가 시작되었다.

노래는 고음이나 저음으로 기교를 부리는 화려한 곡이 아닌, 본연의 감성과 소리로 승부하는

잔잔한 피아노 곡이었다.


작곡가에게 무료로 선물 받은 곡을 편곡해서 도전한다는 니코쨩.

예전 같았으면 나에게 작곡을 맡겼을텐데,

이제는 업계에서 통하지 않는 내 실력으로는 무리라고 느꼈던 것일까.


이 가사는 마치, 그녀의 목소리 하나 하나에 설레이던 그 시절의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담은 듯 했다.


사람은 노래를 들을 때 자신의 감정과 비교하고, 또 감정을 노래에 맞추어 가며 듣기 때문에,

어쩌면 의미 없을 가사를 자기 멋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노래는 조금 우울한 분위기 것 같다.

지금 내 감정은 어찌되었던 간에, 니코쨩의 마지막 오디션이 심사위원에 마음에 들어야 할텐데.

내겐 아직도 어린아이 같기만 한 그녀에게 잔잔한 노래는 어울리지 않을 줄 알았으나,

역시 노래를 부를때 중요한건 곡의 분위기를 청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인 것 같다.


그런 청중들 중 한명이었던 나는, 당연히 이 노래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다.

가사의 한 구절이 끝날 때마다 내 심장을 계속해서 찔러왔다.



자신의 마음이 거절 당하는 것이 무서워, 쉬이 고백하지 못했던 한 소녀의 이야기였다.



니코쨩에 대한 내 감정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조금씩 그것을 인정해가며, 부모님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받게 될

편견으로 가득찬 억압과 핍박을 상상하며 괴로워했다. 


아주 오래 전에는 동성애가 정신질환 취급을 받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 과학이 발달하며 동성애는 선천적인 것으로 밝혀지고,

이 분야의 과학자들에게는 정신질환 취급을 받지 않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과학자가 아니니까.



『쟤, 1학년의 니시키노 아니야? 레즈라던데, 실제로 보니까 좀 역겹네.』 



노조미에게 했던 상담 내용을 누군가가 듣고 퍼트린, 터무니 없는 소문이었다.


나는 이러한 니코쨩이 이러한 소문에 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금은 마음 편하게 지내다가

졸업식이 얼마 남지도 않은 찰나, 내 마음을 노래로 만들고 감정을 섞어 니코쨩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너였고,

적어도 너가 졸업하기 전, 너가 나에게서 떠나가기 전에 내 입으로 진심을 담아 고백하고 싶었지만,

너 역시 나를 역겨워하게 될까봐 두려워서 지금이라도 노래로 전한다는 가사.



내가 그녀에게 선물해준 노래는,

그런 내용이었다.



한창 눈을 감고 마음을 부르던 니코쨩은, 노래가 후반부에 도달하자 살며시 눈을 뜨며 내 쪽을 바라봤다.


그녀가 이번에도 정확히 나를 쳐다본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이 노래를 듣고 나서 처음으로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좋은 노래네.』


『이 노래의 대상이 니코쨩이라면 어떨 것 같아?』


『에, 니코라면 무섭다던지 그런거 없이 확실히 고백할텐데 말이야.』


『그래. 난 니코쨩같지 않아서, 이런 노래로 밖에 고백할 수가 없어. 』



그때의 나는 정말이지, 부끄러운걸 애써 참느라 엄청 힘들었는데 말이야.








아, 그렇구나…….


이 노래는,

























니코쨩의 작곡가인 내가…….



























--














“아~ 노래를 잘못 채용한 것 같아요.

목소리가 이런 분위기는 아닌데, 그걸로 이런 잔잔한 노래를 채용해버리니까 다 망치는거죠.

저는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넵”

첫 번째, 탈락.



“이야, 솔직히 노래는 진짜 죽이는데 목소리가 마음에 안드네. 나도 버린다.”


“넵…”

두 번째, 탈락.





“음,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이에요.

자칫 지루해 질 수 있었던 잔잔한 노래에, 특색있는 자신만의 목소리로 감성을 전달한 것은 정말

재능있는 참가자라고 생각합니다.”




“네, 넵.”

세 번째…….




사실 나는 마키쨩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마키쨩은 요즘 너무 바빠서 라인 한통조차 보내지 못했었으니까,  

이왕 만나는거 좋은 느낌으로 만났으면 하니까.


그래서 약간의 충격과 혼돈의 반전 이벤트를 준비했다.

마키쨩이 고백할 때 불러줬던 노래를 아는 작곡가한테 부탁해서 조금 편곡해 달라한 다음,

이것을 오디션에서 부르는 느낌으로.


마키쨩과는 다르게 나는 멜로디부터 가사까지 하나하나 빼먹지 않고 전부 기억나니까.



처음엔 정말 저 계획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드라마같은 연출이 될 수 있을까- 싶어서 여러 가지 생각하다 보니,

이런 엄청난 큰일이 발생하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때 마키쨩이 달려나가기 전에 붙잡았어야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 욕심이 마키쨩에게 상처만 준 꼴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오디션 봐주러 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4시부터 와서 기다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마키쨩의 마음을 조금 시험해 본 것도 있지만,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우리 마키쨩.


노래가 끝나갈 즈음, ‘마키쨩 정말로 미안해! 전부 이 상황을 위한 연출이었다구!’

라는 말을 눈빛에 심어서 마키쨩에게 전달했지만,

뭔가 약간 다른 뜻으로 이해한 것 같은 표정을 지어버려서…….  



이 말은, 오디션이 끝나면 전해줘야겠다.


지금은 이 실낱같은 희망의 말을 전달해 주고 계시는 심사위원님에게 집중하자.


“하지만, 가창력이 약간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목소리가 특색있고, 감성을 잘 전달한다고 해도

애초에 노래를 못부르면 끝이잖아요?”


“아, 그건 목이 아파서…….”



“자기 목 조차 혼자 관리 못한다면 그것도 수준 미달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 그렇습니다…….”

   

“네, 그럼 제가 굳이 야자와씨를 선택할 이유는 없네요.”




세 번째…….


나는 그냥 희망이라던지 기대라던지 마음을 전부 접어버리고, 마키쨩을 바라봤다.

마키쨩은 마침 그 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야자와씨, 듣고 있습니까?”



나는 항상 나에게 희망을 품어주었던 마키쨩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며칠 밤을 새워 연습하고, 하루종일 자고, 또 며칠 밤을 새고, 하루종일 자고.

이렇게 불규칙한 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마키쨩을 만나기 하루 전, 노래를 부르려고 하니까 갑자기 쉰소리가 나는게 아닌가.

병원에 가보니 성대부종이라고. 성대에 너무 무리가 가면 생기는 병 중 하나라고 한다.


내가 준비했던 노래의 깔끔한 고음이 담긴 하이라이트 부분은,

음을 엄청 낮추고 하이라이트인 것을 그나마 알아차릴 수 있게 리듬을 변경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하기만 한 뭣도 아닌, 아무것도 없는 노래로 바뀌어졌다.


하지만 원래부터 곡이 좋아서 그런지, 내가 잘 부르기만 하면 완벽히 합격할만한 노래였지만,

목이 이렇게 된 이상 잘 부르는 건 무리니까, 이 잔잔한 감성이라도 살리려고

이틀 동안에 스파르타식으로 혼자 연습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감성 폭발 니코니- 창법은

당연히 심사위원의 마음에 쏙 들 줄 알았는데, 역시 무리였나 보다.   



“어쨌든, 저는 딱히 야자와씨를 선택하고 싶지는 않네요.

저기 관객 분들이 마지막이라고 희망 전개라도 바라는 것 같은데……”



“야 이 멍청아!”



맨 앞자리에서 외치는 눈물로 갈라진 단말마는,

정적이 흐르던 무대를 가로질러, 내 귀에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사람 답답하게 하지말고 그냥 말하라고오오!”



주인공은 바로 마키쨩이었다.

어라 잠깐, 마키쨩이 그렇게 말해버리면 심사위원님이 조금 상처받을 지도 모르겠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나에게 확실히 전달 되었다는걸 느낀 것인지, 

재빨리 뒤를 돌아 관객석을 가로 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기다려, 마키쨩!”



나 역시 기다리라는 내 말을 무시한 채 출구 쪽으로 뛰기만 하는 마키쨩을 바로 따라잡기 위해,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석을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관객석의 사람들은 전부 우리 둘을 쳐다보았다. 마키쨩이 지나간 길을 따라,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길을 만들어 주었다. 이것은 마치

내가 ‘모세의 기적’의 ‘모세’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에 치이면서 앞으로 달려 나가는 너와, 훤히 뚫린 길을 따라가는 나. 

때문에 그녀와는 다르게 달릴수록 어느 정도 속도가 붙어서,

달려가는 마키쨩을 따라잡아 그 왼손을 붙잡을 수 있었다.


마키쨩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괜히 우는 모습으로 나를 째려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은 조금 무서울지도.



무대에서 나만을 찍고있던 카메라들이

어느새 두명으로 포커싱이 맞춰져서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우리를 바라보고있었다.



“이 노래, 마키쨩이 선물해준 곡이잖아.”



카메라 뒤의 스태프들은 양 팔을 X자로 치켜올리며 제스쳐를 취한다.

이것은 카메라를 정지시키라는 뜻인데, 뒤에서 그래봤자 보일 리가 없지.


지금은 이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나가야 할 것같다.

전국민이 보는 TV앞에서 마키쨩의 이런 꼴사나운 얼굴을 보여줄 수는 없지!



“이거 조금 김빠지게 불러버렸는데, 용서해줄거지?

응, 마키쨩- 용서해주세요 니코-”



마키쨩에게 약속했었다. 이번 오디션에 떨어지게 된다면 아이돌은 이제 그만두겠다고.

내가 오디션에서 부를 곡과, 내 컨디션은 정말로 그 75명중 최고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뭔데, 나 싫어하는 주제에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니코 말이야, 마키쨩 싫어한다는 말은 한 적 없는데…….”


“뭐, 무슨…….”


“아니 이게아니라…….

나중에 말해줄게! 니코 지금 좀 부끄럽거든, 카메라 다 나 찍고있고 사람들 다 나 보고있고오오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마키쨩은 내 손을 꽉 잡고 출구를 향해 뛰었다.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오디션장에서 우리의 앞길을 막아서는 장애물은 없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사랑의 도피를 하고있는 기분인걸.

우리는 아무도 가로막지 않는 두꺼운 문을 열고 앞을 향해 함께 뛰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핸드폰을 들고 뛰어오는 어느 7명이 눈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다시 뒤를 돌아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든 광경을 찍고있는 카메라는, 전국민에게 우리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아이돌 4수생인 나와, 그녀를 기다리던 멋진 우정의 친구들…….



아마 내 인생 최고의 퇴장씬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것이 내 인생 최악의, 마지막 아이돌 오디션이었다.
















-













우리는 약속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치킨집에 도착했다.

미리 와서 조마조마하게 TV를 보고 있었던 7명은, 마키쨩이 심사위원에게 ‘멍청아-’라고 말했을 때부터

무언가 큰일이 났음을 직감하고 바로 오디션장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우리가 회장을 뛰어나가는 장면 이후, 방송은 중단되고 광고만이 화면에 띄워지고 있었다.

마침 TV속의 나를 보고있었던 손님들은, 당연히 눈치채고 자기들끼리 웅성대기만한다.


마키쨩과 나는 세수를 하러 화장실을 갔다온다는 핑계로 밖에 나가 잠깐 시간을 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인데도, 눈은 내리고 있지 않았다.  




마키쨩은 먼저,

내가 진심으로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건 알고 있었으며, 바닐라 라떼를 부은건 미안하다고 나에게 사과했다.

정말 사과해야할 것은 나인데. 


그 때. 너를 상처 입힐 생각은 아니었고,

단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너의 관심을 끌어서 오디션때 감동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을 뿐이라고, 상처 입혀서 정말 미안하다고, 

또 좋아한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를 약간 시험하려는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아차, 이건 괜히 말한 것 같다.


나는 필사적으로 마키쨩의 눈을 피했다.



“뭐야. 왜 눈을 피하는거야 니코쨔…….”



마키쨩은 말을 하다 말고 바깥인데도 크게 들려오는 TV소리와, 선명히 잘 보이는 대형 화면에 시선을 빼앗겼다.

기나긴 광고 끝에, TV에서는 크리스마스 생방송 오디션의 최종 합격자 명단이 띄워지고 있었다.

나 역시 화낼 줄 알았던 마키쨩이 의외로 조용해서 눈알을 돌려 같은 쪽을 바라봤다. 












이번 오디션의 합격자는 총 6명.

12번, 25번, 34번, 46번, 67번

그리고…….  














































한참 멍한 표정으로 TV만 쳐다보던 마키쨩은,

언제라도 울음을 터뜨릴것같이 시뻘겋게 변해버린 내 얼굴을 두손으로 잡고 돌려, 내게 말했다.







“있잖아,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비한 게 있는데…….”














마키쨩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고, 뚜껑을 조심스레 열었다.

내 눈은 이미 눈물로 가득차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는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


























































“손, 내밀어줘.”



































지금이 아니면, 줄 타이밍을 못 잡을 것 같아서.












































응, 고마워.



마키쨩의 마음, 확실히 전달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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