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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폐교, 그리고 나타난 길

그날 학교 복도 벽면에 붙어있던 말을 잊지 못한다. 단 두 글자였다. 가장 큰 크기로 맨 위쪽에 쓰여있던 소식은 더할 말도 없었고 덜어낼 말도 없었다. 폐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의미가 너무나 컸던 그 말이었다.


평소처럼 우미와 코토리와 학교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그날도 빵을 사 먹으러 교실을 나가려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여러 사람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문이 사실인지, 갑작스러운 말에 우미와 코토리는 서둘러 학교의 게시판으로 가 보았다.


그러나 소문은 사실이었다. 너무도 황당하게 폐교라는 말이 쓰여있던 탓에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우미나 코토리도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살짝 몸이 흔들려 뒤로 넘어질 뻔했다.


"호노카!"


코토리와 호노카의 그 말에도 나는 쉽게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물론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나를 약간 부끄럽게 했다. 사실 폐교는 3년 뒤에 하는 것이지 그때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마음에 걸렸다. 오토노키자카는 우리 집에서 의미가 큰 학교이고 나에게도 그랬다. 그래서 그 날 유키호가 '오토노키자카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말에 더 분개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정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1학년이 한 반 밖에 없는 학교는 사실 폐교 위험에 있는 것이 분명하니까.


나는 어쩌면 오토노키자카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지키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그날 엄마가 오토노키자카의 졸업 앨범을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엄마의 표정은 정말 맑았다. 그리고 행복해 보였다. 얼핏 보이는 사진들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교복 입은 모습들도 가득 담겨있었다. 사라진 학교를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슬픈 일이 될 것 같았다. 당연히 그럴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오토노키자카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면 UTX를 선택했을 것 같았다. 처음 본 그 날의 UTX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햇빛을 반사하는 유리 건물, 높은 옥상, 그냥 무언가 첨단처럼 보이는 시설들도. 분명히 가고 싶은 학교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1학년은 몇 반이 있는데?"


나는 유키호의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한 반."


단 한 반이었다. 솔직히 그렇게 말하고 내 방으로 올라갈 때 3학년은 세 반이나 있다고 말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런 유키호가 제 발로 오토노키자카에 들어가게 하고 말겠다는 생각이 생겼다. 밑도 끝도 없는 오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UTX의 A-RISE를 만난 건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에 나는 오히려 그곳에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날 나는 UTX에 갔었어야만 했다. 지금 내 옆에서 무엇이 다음 안무로 좋을지 이야기하는 니코, 행복하게 밥을 찾는 하나요, 코토리와 의상을 고르는 린도 그 날 처음 만났다. 그 날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니코의 대답은 나와 같았다.


"당연하지! 내가 어떻게 처음에 너를 쫓아다니면서 그만두라고 했을 것 같아?"


하나요와 린도 기억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 날부터 우리는 뮤즈였는지도 모른다.


A-RISE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나와 함께 UTX 앞에서 커다란 화면에 나타난 멋진 춤과 예쁜 의상을 보자면 누구든지 그랬을 것이니까. 우리의 뮤즈가 아무리 뉴욕에 와서 이렇게 공연까지 앞두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나는 그날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연습하고 있으니까. 아직도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으로 보이는 것인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니까.


사실 오늘도 멤버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어떻게 처음 스쿨 아이돌을 시작하게 되었고 마음을 먹게 되었는지. 모든 멤버들이 니코와 하나요, 린이 나와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다. 생각해보니 그 날에 대해 전혀 말 한 적이 없었다.


"그러면 그때부터 뮤즈가 시작된 거네? A-RISE를 지금껏 단순한 라이벌로만 생각해서 미안할 정도인데. 어쩌면 가장 먼저 뮤즈를 만들게 해 준 사람들이었네."


에리의 말이 마음 깊이 들어왔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경하던 소녀가 동경 받는 소녀가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언제 한 번 에리가 A-RISE한테 선물이라도 해야겠는 걸?"


"이미 엄청난 스타라 우리를 만날 시간이 있을까?"


에리의 대답에도 분명 나와 같은 감정이 들어있었다. 누구나 뒤쫓을 사람을 보고 달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폐교가 아니었다면, A-RISE가 아니었다면, 춤을 추고 싶어 하던 에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노조미는 우리와 행복할 수 있었을까? 니코는 동생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했을까? 그냥 이런저런 생각에 아찔했다.


"있잖아. 만약 학교가 폐교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나의 뜬금없는 물음에 멤버들은 빨리 대답하지 못했다. 창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고 다들 생각에 잠긴 것인지 무엇인지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갑자기 멤버들이 마구마구 좋아졌다.


"그래도 언젠가 우리는 만났을 거야."


"정말 그럴까? 처음에 에리랑 나, 엄청나게 싸웠었잖아."


에리는 살짝 부끄러운 것처럼 얼굴을 붉혔다. 노조미가 옆에서 변호해주었다.


"그때는 에리도 불안한 때였으니까. 다 지나간 일인데 어때?"


그러나 에리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갑자기 그 말에 나는 살짝 울컥했다. 에리가 미워서도 아니고 다른 이유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새어 나오는 건 참았다.


"우리는 만났어야만 했으니까. 호노카는 길을 만들고, 우리는 따라간 거야."


에리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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