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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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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 쏟아지는 한밤 도시의 불빛들은 호노카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히 밝았다. 그녀는 지금 오토노키자카 앞, 눈이 부시는 밝은 거리의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과 높은 건물들 틈에서 호노카는 귀에 헤드폰을 착용하고 걷고 있었다. 그러나 딱히 무슨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뮤즈의 해체 후 공허해진 마음은 이리저리 휩쓸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 눈앞의 환상적인 불빛은 그런 것을 다 치워버리고 호노카를 설레게 하고 있었다.


“와, 예쁘다.”


그녀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어라이즈의 모습이 큰 건물의 대형 모니터에서 나타났다. 그곳의 그녀들은 프로로서의 전향을 알리며 무대에서 신곡과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부럽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그녀 스스로 놀랐다. 마음속으로 부러워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아예 그 모니터에 가까이 다가가기로 마음먹었다. 대형 모니터 앞에는 수많은 고등학생 등 많은 사람이 입을 벌리고 그들을 보고 있었다. 절도있는 춤, 세련된 가사와 어라이즈다운 음악, 그들다운 의상이었다.


“부러워!”


이번엔 스스로 인지하고 한 말이었다. 그래서 참을 수 없었다. 누가 보아도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며 모니터 속 어라이즈의 춤을 따라 추었다. 몸이 노래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실 마음이 먼저 반응한 지 오래였다. 뜨거운 무언가가 속에서 올라왔다.


그 곡이 끝난 후 호노카는 열기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 자신을 쳐다보는 몇 명의 사람들을 뒤로하고 달아오르는 마음을 삭이기 위해 건널목을 건넜다. 반대편으로 간 호노카는 주위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나 어딘가 혼자 있을 만한 곳은 없는 듯했다.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최대한 빨리.


집에 가는 길은 호노카에게 너무 길었다. 마음이 뛰고 있었고 헤드폰에서는 끊임없이 어라이즈의 노래가 재생되고 있었다. 계속 보고 싶기만 했던 화려한 밤의 도시도 그렇게 끌리지 않았다.


마침내 집에 도착한 이후 호노카는 자신의 방으로 뛰어들어가다시피 했다. 유키호와 그녀의 엄마가 살짝 놀랄 정도였다.


“호노카? 왔어?”


“응!”


그런 대답 단 한마디 이후 2층으로 올라가 방 문앞에서 선 호노카였다. 그리고 갑자기 손이 떨려왔다. 문고리를 잡고 서서히 열었다. 그리고 닫는 그 손은 이번엔 그리 빠르지 않았다. 문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소리를 내며 닫혀갔다.문을 모두 닫고도 호노카는 방에 불을 켜지 않았다. 그리고 침대 위로 쭉 뛰어 철퍼덕 누워버렸다. 이제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도 없었다. 이상하게 볼 사람도 없었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녀는 서둘러 목에 걸친 헤드폰을 빼고 침대 밑에 내려놓았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호노카가 눈물을 그친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별이 창문 밖에서 빛나고 있었다. 호노카에 방에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달빛도 있었다. 창분 밖으로 하염없이 그녀의 시선을 보내던 호노카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전화번호부를 재빨리 확인하고 코토리와 우미의 이름을 차례대로 찾았다. 심호흡 후 얼굴에 살짝 남은 눈물방울을 닦으며 호노카는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코토리의 휴대전화는 꽤 오랫동안 받지 않고 있었다. 호노카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들었다.


“여보세요?”


그 소리에 호노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코토리?”


코토리는 졸린 목소리였다. 소리도 작아 호노카의 귀에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호노카 지금 밤 아니야? 무슨 일 있어? 나는 자고 있었어.”


호노카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손은 주체할 수 없이 움직여 이미 코토리와 전화까지 연결해 놓은 상태였다.


“미안 코토리. 그런데 나 꼭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응? 뭔데? 말해 줘. 다 들어줄게.”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에 호노카는 다시 심호흡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이 나오려는 그 순간에 호노카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봐도 아닌 건 아닌 것 같았다.


“내일 3학년 입학식 하는 날이지?”


호노카는 원래 하려던 말과 전혀 다른 말을 꺼냈다. 코토리는 태연하게 답했다.


“응. 우리도 이제 3학년이야!”


호노카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냥 갑자기 설레서 전화했어.”


몇 번의 대화 후 호노카는 전화를 끊었다.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후련하지 않았다.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진짜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하지 못했다.


호노카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대신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아둔, 츠바사가 준 명함을 들었다. 흔들리지 않고 그 명함을 바라보다가 그것을 두 손으로 잡고 꼭 껴안아 버렸다. 그리고 다시 팔을 펴고 더 보았다. 다시 가지런히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는 츠바사의 얼굴이 떠올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도.


“프로로 전향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해.”


어떻게 될지 몰랐다. 호노카는 더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그냥 침대에 누워버렸다. 눈물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까 다 쏟아낸 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대로 누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유키호가 깨울 때까지.


“호노카! 언니!”


아침을 깨우는 목소리에 금세 호노카는 눈을 떴다. 3초 정도 잔 것 같았는데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재빨리 발을 들어 침대 옆에 두었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키고 문으로 향했다. 그녀가 연 문 앞에는 유키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일어났네?”


“일어난 게 그렇게 이상해?”


호노카는 하품을 하며 1층으로 내려갔다. 내려간 그곳엔 엄마가 벌써 아침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유키호와 같이 앉은 그녀는 약간 졸린 와중에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르게 식사를 마쳤다. 그날 호노카는 유난히 평소보다 동작이 빨랐다. 곧바로 다시 올라간 호노카는 이른 시간에 준비를 마치고 다시 내려왔다. 가족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호노카는 집을 나서고 심지어 뛰기까지 했다. 오토노키자카까지 가는 길이 유달리 멀어 보였다. 아직 잠이 덜 깬 탓인지 다리는 약간 후들거리기도 했지만, 마음이 급해 아무 상관 없었다.


급한 마음만큼이나 호노카에게 그 날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새 학년 이사장님의 연설을 듣고 배정된 반을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오토노키자카 2학년, 이제는 3학년이 된 그들에게 주어진 단 두 반. 호노카가 들어간 그곳엔 코토리와 우미가 모두 있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어서 참을 수 없는 마음에 학교에 빨리 온 보람이 있었다. 호노카에게 코토리와 우미는 언제나 같이 있는 친구여서 떨어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그 날도 그들과 하루를 보냈다. 3학년으로서의 첫날은 2학년 때의 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호노카는 어젯밤 생각한 그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적당한 때가 보이지 않았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말을 하려는 그때 어디선가 2학년이 된 그들이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


“이제 3학년이다냐.”


린의 말에 호노카는 먹던 빵을 내려두고 반갑게 맞았다. 옆에는 마키와 하나요도 같이 있었다.


“당연히 같은 반이지?”


우미의 말에 마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요는 약간 수줍어하며 말을 이어주었다.


“같은 반이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한 반밖에 없기는 하지만.”


그리고 떠나간 3학년을 먼저 이야기 한 건 마키였다.


“이제 에리랑 노조미와 니코는 학교에서 잘 못 보겠네.”


벚꽃 잎이 바람에 흔들려 그들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호노카는 그들 생각을 하니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쁜 쪽은 아니었다. 그립다고 하기보다도 더 강한 무언가였다. 꼭 앞을 보면 에리가 교복을 입고 연습하자고 말을 하거나 노조미가 사투리를 쓰며 말을 하거나 니코가 ‘니코니코니!’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말하니까 많이 그리운걸요.”


우미의 나지막한 말에 모두가 동감했는지 여섯 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떨어지는 벚꽃잎을 맞아 누군가는 앉고 누군가는 서 있었다. 오랜 침묵이 이어지고, 그것을 깬 것은 또 마키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 3학년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요?”


사실 호노카도 누구도 그것에 대해 자세히 아는 바는 없었다. 그들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기에 니코가 그녀의 꿈을 뮤즈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어가려 하는지, 혹은 아닌지 몰랐다. 에리와 노조미도 이후 행보가 뮤즈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알 수 있었으므로,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냥 나는 보고 싶다냐.”


린은 무척 보고 싶은 듯했다. 그곳에 있는 여섯 명 모두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점심시간을 마치고 헤어졌다. 물론 다음 날 다시 만날 것이었다. 아이돌 연구부의 새로운 시작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키호!”


새 학년에서 가장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유키호와 아리사의 입학이었다. 호노카는 하루 모든 시간을 마치고 유키호와 아리사에게 향했다. 곧 그들도 아이돌 연구부에 들어와 호노카와 같이 활동할 부원이었기에 선배로서도 인사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호노카는 첫날 감상에 관해 물어보았다.


“오늘 아침에 나 처음 학교 가는데 별 이야기도 안 하고 그냥 먼저 가버렸지?”


호노카는 아차 싶었다. 우미와 코토리 생각, 또 새 학년이라는 조급함 섞인 마음에 그냥 일찍 집을 나와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미안. 내가 진짜 신경 쓰고 있는데 실수로 깜빡했다. 그런데 어쨌든, 오늘 하루 어땠어?”


“그냥 좋았어. 평소에 오고 싶었던 학교라 다 좋았어. 반 친구들도 좋은 것 같고 아리사도 좋대.”


아리사의 표정도 무척 밝아 보였다. 호노카는 당부의 말을 한 번 더 하고 집으로 향했다.


“곧 있으면 아이돌 연구부 홍보도 시작하고 부원도 모집해야 해. 잘 할 수 있지? 에리가 많이 도와줄 거야.”


“언니가 집에서도 많이 알려주고 도움 주고 있어요.”


아리사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진심으로 활동에 대한 기대감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사실 아리사는 호노카와 뮤즈의 전 멤버들, 그리고 오토노키자카 학원에 지금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꼭 보고 싶고 함께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호노카가 직접 동아리 활동을 조언해주는 모습은 상상으로만 해오던 아리사에게는 꿈 같았다.


호노카가 그렇게 떠나고 유키호는 아리사와 멀어져가는 호노카를 바라보았다. 걸어가던 그녀는 우미와 코토리를 만나고는 같은 방향으로 같이 갔다. 그녀들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며 웃는 모습에 그냥 기분이 좋았다.


“오늘 우리 집 올 거야?”


유키호의 말에 아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돌 연구부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더 하고 싶던 상황이라 그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러면 따라와. 작별인사하고 바로 또 만나게 돼버렸네.”


유키호는 아리사와 함께 호노카를 멀리서 따라갔다. 어느새 살짝 해가 주황색 선명한 빛을 내뿜으며 건물 너머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리사는 모든 상황이 낯선 것 같으면서 새로웠다. 매일 보던 해도 뭔가 다르게 보였다. 어쩌면 앞으로 오토노키자카를 다니면서 실망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한편, 호노카는 코토리와 우미와 함께 자기의 집에 들어갔다. 그들도 앞으로 아이돌 연구부를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지 대화가 필요하다고 공감했기에 그렇게 했다. 즐겁게 맞아주는 호노카의 엄마가 안내해주는 2층으로 올라가 호노카의 방으로 올라간 그녀들은 바로 또 들어오는 유키호와 아리사를 보고 살짝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어차피 이제 같은 부원이었다.


“이제 같은 부원이지?”


“부 모집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호노카가 그들을 맞아주자 우미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바로 내일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들어오려고 하는 학생은 엄청나게 많을지도 몰라.”


코토리의 말에 우미는 조금 다른 의견을 냈다.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요. 아까 들어보니 새로 입학한 1학년들은 오히려 부담되어서 잘 못 들어 온다고 하던걸요. 뮤즈의 출신학교 오토노키자카의 그룹이라면 분명 주목을 받을 텐데 부담이 심하다고.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음? 그런가? 우리가 부담될 만큼의 그룹이었나?”


호노카가 우미의 말에 조금은 놀란 듯 말하자 우미가 설명 비슷한 것을 해주었다.


“당연하죠! 오토노키자카는 이제 정말 유명해져서 다들 후속 그룹을 기대하는 눈치라고요. 여기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굉장한 관심의 대상이니까요.”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유키호와 아리사는 살짝 겁먹은 것 같았다. 그것을 간파하고 코토리가 위로를 해주었다. 언제나처럼 상냥한 말이었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도와줄게. 멤버 뽑고 같이 활동하는 것도 다 도와줄게. 잘 할 거야.”


그리고 코토리는 앞으로 2학년 세 멤버와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을 꺼냈다.


“우리는 이제 후속 그룹을 만들어야 하는데, 유키호와 아리사는 단독으로 그룹을 만들기로 했고 그러면 마키, 린, 하나요랑 우리가 6인 멤버로 새 그룹을 만들어야 하는 거지? 뮤즈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그룹으로.”


“뮤즈의 해체를 발표한 이상 뮤즈의 이름을 더는 써선 안 되니까요.”


우미가 덧붙였다. 그 말에 호노카는 그냥 속 시원히 다 터놓기로 했다. 자신의 현재 복잡한 마음과 심지어 울면서 지난밤 떠올렸던 생각을. 코토리에게 전화해서 꼭 하고 싶었던 말도.


“그것에 관해서 말이야.”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호노카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조용히 말했다.


“나 사실 어라이즈의 츠바사랑 만난 적 있어. 나한테 이렇게 말하더라고. ‘프로로 전향해서 뮤즈 그대로 활동하고 싶으면 연락해줘.’라고. 그런데 우리 결정했잖아? 연락 안 했어. 그리고 실은 어제 어라이즈 신곡으로 활동하는 모습 보고 많이 생각났어. 뮤즈도 저렇게 이어갈 수 있었는데. 할 수 있었는데. 그런데 어쩔 수 없잖아? 코토리한테 츠바사 이야기하려고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할 수가 없었어. 이미 다 결정됐고 에리랑 니코, 노조미도 각자 일로 바쁠 텐데 말이야.”


호노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방에 앉은 5명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호노카는 이때가 아니면 말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계속 말했다. 사실 무엇을 주장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어제 코토리한테 전화한 거야. 츠바사가 명함 주고 그런 부탁까지 했다는 거 이야기 하려고. 그래서 어떻게든 억지 써보려고. 그랬는데,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어서.”


창밖에선 비가 내렸다. 우미는 말없이 호노카를 살짝 잡아주었다. 같은 뮤즈멤버로서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미였다. 위로해줄 말이 없었다. 그냥 손잡아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 다 지나간 일이야.”


호노카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 순간 코토리와 우미도 마음에서 감정이 올라왔다. 지나간 일이라는 말이 가슴으로 날아와 날카롭게 꽂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우는 사람은 없었다. 1학년 앞에서 울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아리사와 유키호는 듣고만 있었다. 그들 마음속에선 일련의 대화를 듣고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책임감. 가볍지 않은 마음. 스쿨 아이돌 활동은 재미로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 분명히 그들이 시작할 활동은 그들 인생 전체를 바꿔놓을 수도 있었다. 무거운 마음에 아리사와 유키호의 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호노카도 그것을 보았다. 그래서 금세 가라앉는 마음을 다잡고 호노카답게 높은 목소리로 바꾸었다. 그리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말이야, 뮤즈 하길 정말 잘했어. 아리사랑 유키호도 걱정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 엄청나게 많은 일이 있을 거야. 또 상상도 못 할 일도 있을 거야. 그런데 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언젠가 울게 될 날 온다고 해도 말이야.”


그리고 그날 그들은 아이돌 연구부의 앞으로의 방향을 정했다. 아리사와 유키호는 최대한 새 멤버를 찾을 것이다. 이제는 9명의 뮤즈가 아닌 남은 6명은 새 그룹으로 오토노키자카를 졸업하는 그 날까지 활동할 것이다.


아리사와 우미, 코토리가 호노카의 집을 떠날 무렵은 어느덧 밤이 찾아온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은 굉장히 빨리 지나갔다. 집을 나서는 그들을 배웅해주며 호노카와 유키호는 내일 보기로 약속을 했다. 이제 그들이 오토노키자카의 빈자리를 채워 줄 것 같았다.


“아이돌 연구부 말이야. 그전에는 어땠어?”


유키호의 갑작스러운 말에 호노카는 어떻게 대답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음? 어떤 점이?”


유키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냥. 분위기나 평소 활동이나 그런 거 말이야. 이제 우리도 그런 거 시작하게 될 테니까.”


“걱정되는 거야?”


호노카는 유키호가 조금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분명히 부담감이 있었다. 호노카의 눈에 그것이 너무 잘 보였다.


“우리도 처음엔 말이야, 아무것도 몰랐어.”


호노카는 거실에 앉아서 유키호를 마주 보며 계속 말을 해나갔다.


“춤도 안무도 작곡도 아무것도 몰랐고 정말 시작할 방법도 못 찾았어. 그냥 무작정 음악 틀고서 따라 추는 게 전부였어. 그런데 소중한 사람이 생기고 만나는 사람이 생기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거야. 하기 힘들면 언제든지 물어봐. 다 도와줄 테니까.”


유키호는 아무 말이 없었다. 호노카의 진지한 말은 오랜만에 듣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대답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호노카는 이해하고 ‘잘 자’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여전히 창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간 호노카는 감성적인 마음이 되어서였을까, 3학년 멤버가 더 그리워졌다. 언제나 학교에 가기만 하면 볼 수 있는 그들이었다. 아무 약속 잡지 않아도 인사하고 같이 있을 수 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별수 없었다. 전화밖에는.


신호음이 가고 호노카는 그녀답게 무작정 기다렸다. 그리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신호음은 에리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호노카는 반갑게 인사했다.


“에리?”


“호노카? 이 밤중에 무슨 일이야?”


에리는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호노카는 에리를 안심시켜주었다.


“밤이라 그냥 특별한 일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목소리 듣고 싶었어.”


“음. 그랬구나. 이제 3학년이지?”


에리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호노카는 그 목소리를 분명히 자주 듣기는 힘들 거라는 사실에 슬퍼지는 느낌이었다.


“전에는 학교만 가면 볼 수 있었는데. 들을 수 있었는데. 그렇지?”


에리는 전화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워하는구나, 여전히 좋아하고 있구나, 그것이 좋았다. 잊히지 않고 오토노키자카에서 함께 했던 시간이 소중한 게 여전해서 그랬다. 에리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밤이면 뮤즈 생각으로 잠이 들었다.


“학교생활은 어때? 여전히 좋아? 아이돌 연구부는?”


호노카는 있는 그대로 대답해주었다.


“뮤즈 활동이 끝난 이후로 오히려 부담돼서 부 활동 신청을 적극적으로 안 하는 모양인가 봐. 하긴 나 같아도 그랬겠지? 우리가 사실 그렇게 대단한 그룹도 아닌데. 우리 여섯 명은 남아서 새 그룹을 만들기로 했어. 9명이 아니니까 뮤즈는 아니야. 뮤즈라는 이름은 아홉 명 일 때만 붙일 수 있으니까.”


“아리사랑 유키호는 어때?”


에리의 질문에 호노카는 또 대답해주었다.


“새 멤버를 구하려고 해. 아직 본격적으로 부 활동 시작한 게 아니라 될 수 있는 대로 모집 중이야. 우리가 처음 니코 설득하던 것처럼. 그렇게 하겠지?”


그러나 에리는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잘 안 풀릴 가능성’을 먼저 염두에 두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지원하려는 학생이 뜻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어? 작곡하고 안무도 맞춰줄 멤버를 찾기가 많이 힘들지 않을까?”


“그런가? 어떻게든 찾지 않을까?”


에리는 언제나처럼 현실적인 조언을 먼저 해주었다.


“그러지 말고, 정말 못 찾겠거든 차라리 아리사와 유키호와 함께 그룹을 해 봐. 뮤즈라는 이름으로 하라는 게 아니야. 우리 생각해서 우리가 졸업하면 뮤즈를 해체하겠다고 말까지 해준 너희에게 뮤즈를 멤버 교체 후 이어가라고 할 수는 없겠지. 우리가 없는 완전히 새로운 그룹으로 아리사와 유키호를 도와주는 건 어떨까?”


에리의 말은 약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에리 입장에선 어떻게 보면 빈자리를 다른 멤버가 채우는 것이 언짢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설령 그 그룹이 더는 뮤즈가 아니라고 해도 떠난 자리를 다른 멤버가 채우는 것은, 분명 그럴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아리사와 유키호를 위해 에리는 먼저 그런 제안을 호노카에게 한 것이다.


“그래도 될까?”


에리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린, 하나요, 마키, 우미, 호노카, 코토리, 노조미, 에리, 니코. 이 중 한 명이라도 없으면 뮤즈가 아니야. 뮤즈는 해체되었고 이제 없어. 혹시 나중에 다시 만들어질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그러면 우리를 보고 시작한 사람들이, 그러니까 아리사와 유키호가 꿈만 꾸고 좌절하지 않게 하려면 나는 무엇이든 해 주고 싶어. 걱정하지 마. 뮤즈의 이름으로 활동하지 않으니까 약속을 깨는 것은 아니야. 우리 아홉 명이 아니니까 약속을 깨는 것은 아니야. 그러니까 나는 그래도 괜찮아. 정말이야. 애초에 우리 생각해서 여섯 명이 해체를 제안한 거니까.”


“그러면 만약 부원을 못 찾게 된다면 생각해 볼게.”


에리는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응. 그들의 꿈도 이루어줘.”


“이제 잘 시간이지? 밤늦게 전화해서 미안해.”


호노카의 미안해하는 목소리를 듣고 에리가 오히려 당황한 듯 보였다.


“아니야. 고민 있으면 언제고 전화해. 나는 멀리서 이렇게 도와줄 테니까.”


“고마워 에리. 그러면 잘 자.”


“너도 잘 자.”


호노카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당장 유키호에게 이 말을 전할까 싶었지만, 어차피 이제 매일 학교에서 또 부원으로 만나게 될 것이니 상관없었다. 일단 잠을 자고 내일 말하기로 했다. 내리는 빗소리를 맞으며 호노카는 피곤함에 지친 몸을 침대에 뉘고 잠을 청했다. 빗소리가 유난히 말랑말랑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한편, 에리는 호노카의 전화를 끊고 역시 침대에 누웠다. 눈은 천장을 향해 있었고 달빛은 하늘색 눈으로 들어가 아름다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눈의 깊은 곳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은 방 구석구석을 훑다가 한 곳에 정지했다. 그곳엔 뮤즈의 마지막 라이브 사진이 예쁜 액자에 담겨있었다.


에리는 멀리서 수납장 한 편에 놓인 그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선 지난 여러 추억이 마구 스쳐 갔다. 그것이 좋고 그 분위기가 좋아 가만히 누워 계속 생각해보기로 한 그녀는 어느 지점에서는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고 어느 지점에서는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다 지나간 일, 이제 과거의 일. 그런 생각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때를 기억하는 지금이 에리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리사도 잘할 수 있겠지.”


에리는 혼자서 속삭였다. 아리사는 분명히 잘 할 거라고 믿으며 또 그녀를 도와줄 호노카, 우미, 코토리도 믿으며 더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아리사가 그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기를 원했다. 아예 그들과 함께 새 그룹을 만들어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그날 밤은 모두에게 뜻깊은 밤이었다.


그리고 아침이 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침은 모두에게 찾아왔다. 에리는 눈 부신 햇살을 맞아 눈을 떴다.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 설레는 마음이었다.


에리는 아침을 먹으면서 아리사에게 어젯밤 호노카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리사는 깜짝 놀랐다. 다른 이름이기는 했지만 여섯 명의 멤버가 남아있는 그룹에 자기와 유키호가 들어가도 된다는 말은 놀랍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생각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


아리사는 한 번에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에리도 이해했다. 설령 잘못될 경우를 가정하고 한 말이었으니 아리사가 좋은 멤버를 구해서 새롭게 그룹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 말만은 당부하고 학교에 보냈다.


“어려운 일 있으면 선배들에게 꼭 부탁해.”


“알았어. 내가 말 안 해도 잘 도와주셔서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아리사는 그 말을 남기고 오토노키자카로 학원으로 향했다. 에리는 기분 좋게 손 흔들어 주었다.


가는 중간에 유키호를 만난 아리사는 그 이야기를 꺼냈다. 유키호는 생각보다 심하게 반응했다.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음? 나는 3학년이 괜찮다면 그것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유키호는 철저하게 부정했다.


“아니야. 그럴 거면 시작도 안 했어.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아.”


유키호가 워낙 완강하게 거부하는 바람에 아리사는 더 이야기를 이어갈 수도 없었다. 유키호는 방과 후 아이돌 연구부에서 호노카를 만나면 그에 대해서 확실하게 매듭지어야겠다고 말하며 의지를 내비쳤다.


수업이 끝난 후 유키호가 워낙 당당하게 찾아온 탓에 호노카는 놀랄 지경이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야?”


“에리 언니가 그렇게 말했어? 우리가 남은 여섯 뮤즈 멤버 자리에 들어가도 된다고?”


“그 이야기 들었구나? 만약 너희가 멤버를 못 구하게 되면 말이야.”


그러나 유키호는 조금 더 강하게 말했다.


“나 그렇게 의지하고 싶지 않아. 우리 스스로 잘 해보고 싶어. 어떻게든 구해서 해보고 싶어.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말은 호노카에게 분명히 해둔 선언 같은 것이었다. 호노카는 알겠다고 하며 그 날 유키호와 아리사의 새 멤버 구하는 홍보를 도왔다. 우미의 우려와는 달리 스쿨 아이돌만을 목적으로 오토노키자카에 온 학생들 몇 명이 입부 신청을 해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에리의 우려도 해소되었다.


“이렇게 많이 신청할 줄은 몰랐는데요.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한 건가요?”


“아니야. 그렇게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어.”


우미가 신청하는 학생들을 보고 놀라자 코토리가 그 상냥한 목소리로 다독여주었다. 좋은 일이었다. 아리사와 유키호는 처음부터 시작하는 꿈을 이루게 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남은 여섯 명의 뮤즈 멤버들이었다.


같은 아이돌 연구부였지만 그룹은 따로 생성되는 상황이기에 그 날 이후 방과 후에 아리사와 유키호를 더 만날 일은 없게 되었다. 물론 집에서 호노카는 계속 만나겠지만 코토리나 우미는 새 그룹 만들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여섯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방향을 토의해 보던 중에 문득 떠나간 멤버들을 마지막 라이브 이후 다시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들 뮤즈 활동을 끝내고 바쁘게 각자의 길을 가느라 시간이 없었다.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더 커졌다.


“니코는 정말 오랫동안 못 봤어.”


코토리의 말에 우미도 동감했다.


“맞아요. 니코는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지금은 뭐 하고 있을까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니코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이 니코에게도 최고의 선택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니코가 바로 그 날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들은 니코가 불러 집으로 찾아가게 되었다. 적잖이 그리운 모양인지 연락을 받자마자 ‘니코니코니!’를 연발하며 집으로 불러들인 니코였다. 오랜만에 가는 집에 여섯 멤버들도 마음이 뛰었다.


니코의 집 앞에 도착한 그녀들은 문을 열어주는 니코에게 인사를 하며 만날 수 있었다. 니코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목소리도, 얼굴도, 머리도, 모든 게 똑같았다. 저녁을 맞아 노을이 지는 니코의 집 안에서는 동생들도 같이 있었다.


“백댄서.”


그것은 멤버들을 보자마자 남동생이 한 첫 말이었다. 그것마저 똑같아서 멤버들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니코도 웃었다. 별 상관없었다. 그저 좋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멤버들의 말에 니코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바쁘게 지내고 진로를 준비하고 이것저것 안 해본 생각이 없다는 말. 멤버들은 하나하나 진중하게 들었다. 니코가 말하는 과정에서 점점 심각해졌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가장 심각해진 대목은 뮤즈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랬어. 그럴 줄 알았어. 뮤즈를 그냥 떠나보내고 그럴 수 있을 줄 알았어. 아무리 내게 소중한 뮤즈였어도 언젠가 다시 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아프게 떼어내는 상처처럼 나중에 아물어 갈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더라.”


멤버들은 공감해주었다. 그리고 위로의 말을 하는 대신 니코의 말을 계속 들었다.


“정말이야. 매일 너희 생각 얼마나 했는지 알아? 내가 이런 말 하니까 이상하지. 그런데 그랬어. 진지한 이야기야.”


니코의 집 어디에도 뮤즈 관련 그 어떤 것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멤버들의 시선을 느끼고 니코가 그것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저것들 다 보이지? 사실 몇 개는 떼어내고 버리려고도 했어. 이제 잊어버리려고. 정말 해체니까. 그런데 정말, 그게 안 되는 거 있지.”


한숨을 한 번 쉰 니코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사실 몇 개는 실제로 버릴 뻔했어. 그런데 슈퍼 아이돌 뮤즈의 니코 사진을 왜 버리느냐고, 동생이 그렇게 말하는데 버릴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못 버렸어. 아직도 해체된 걸 몰라.”


“노조미나 에리는 어때? 어떻대?”


호노카는 그 질문을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반드시 해야 할 것 같았다. 같은 3학년이라 더 많은 교류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니코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라면 의외였고 예상했다면 예상할 수 있는 말이었다.


“너희 그거 알아? 노조미는 해체하고 거의 매일 나랑 만났어. 에리보다도 더. 뮤즈를 잊을 수가 없대. 내가 편한 건지 매일 나한테만 전화하고 만나자고 하더라.”


“에리도 그래.”


호노카는 무심결에 내뱉었다. 모두의 이목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하던 호노카는 시선을 느끼고 부담스러워 다시 말했다.


“아니, 내 말은 그런 것 같아.”


“그걸 어떻게 알아?”


마키의 물음에 호노카는 밤에 전화 통화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화하는 목소리에서 느껴졌어.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거.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믿어.”


전화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마침 전화가 왔다. 니코의 휴대전화였고 화면에는 ‘토죠 노조미’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니코는 그 자리에서 전화를 받았다. 망설이지 않았다.


“여보세요?”


“니코 맞제? 오늘 저녁 같이 먹자는 약속 기억하나?”


익숙한 사투리가 들려오자 니코는 이렇게 말 해버렸다.


“노조미. 그러지 말고 아예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먹자. 내가 요리해 줄게. 재료는 충분해.”


노조미와 몇 번의 대화를 하던 니코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은 노조미를 기다렸다. 노조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약 30분이 지나자 그들이 있는 집 밖에서 초인종이 울려왔다. 그리고 니코는 집 주인으로서 나가서 문을 열어주었다. 노조미의 초록빛 눈동자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눈동자는 금세 커지며 놀라게 되었다. 집 안에는 에리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다 와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에 노조미는 말을 잘 잇지 못했다.


“어? 어떻게 여기에 와 있는기가?”


“응? 우리 원래 매일 보던 사이 아니었어? 해체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상한 거야?”


마키가 그렇게 말하자 노조미는 서둘러 다가와서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얼핏 눈물이 살짝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나 없이 오토노키자카는 잘 돌아가고 있는기가?”


다들 농담을 주고받으며 오랜만에 모인 자리를 축하했다. 그 사이 니코는 요리를 완성했다며 식탁으로 그것을 들고왔다. 하나요를 위한 밥도 잊지 않았다.


“참, 에리가 없지. 에리 지금 올 수 있나?”


노조미가 아직 멤버들과 제대로 이야기를 터놓기 전에, 요리의 김이 다 식기도 전에 에리부터 찾았다. 그리고선 재빠르게 자기의 휴대전화를 꺼내 그곳에 있는 에리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에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리. 지금 니코 집으로 올 수 있나? 이유는 묻지 말고 빨리 오레이.”


“응? 노조미? 갑자기 무슨 일이야?”


“모른다. 빨리 오레이.”


노조미는 그리고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당황하는 에리의 목소리만 전화기 너머 들려올 뿐이었다. 니코는 요리를 에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자고 제안했다.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에리가 니코의 집에 도착한 것은 꼬박 30분이 더 지나서였다. 이번엔 여덟 명 모두가 현관문 앞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울리는 초인종을 맞아 다 같이 문을 열어주었다.


하늘색 눈동자와 노란 머리카락, 하얀 피부를 한 소녀 앞에는 여덟 명의 그리운 얼굴들이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에리는 놀라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다른 멤버들이 금방 잡아주어 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뮤즈는 다 함께 저녁을 먹었다. 학교에서의 합숙 이후 오랜만이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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