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럽갤문학/단편

언니랑 언니가

문득 몸이 움찔했지만, 그저 잠이 덜 깬 거라고 생각했지.
문득 선선한 바람이 들어왔지만 아직은 꿈 속이라고 생각했어.

"코코로, 코코아, 코타로~ 일어났-"

눈을 번쩍 뜨고 말았어.
정말이지, 뭐람...바보같아.

너무 버릇이 되서 평소처럼 말해버렸어. 난 지금 혼자인데. 조용히 숨을 들이마쉬며 천장을 바라보니 어디선가 잠을 깨우는 메미소리가 들려와. 어찌나 요란한지 다시 잠들면 혼내주겠다는 것처럼 들리더라구. 잠옷아래로 살짝 끈적이는 살갗이 그다지 기분 좋진 않았어. 간밤에도 더웠구나. 깨달았지.

여름 방학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이 무더운 여름날, 야자와 니코는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습니다. 그래봤자 불과 그저께부터 시작한 일인데 아직 영 익숙치 않네요.

그래, 불과 그저께 저녁부터 시작했거든.

이 모든 원흉은 조금 이상하지만 마마야.

"짠! 이게 뭘까~요!"

종이를 손에 들더니 신나서 휘두르던 마마. 그 물건은 온천 여행 무료 티켓! 마마의 직장에서 어떻게 빽이 닿아서 얻게 됐다고 하더라구. 문제는 티켓 수였어.

"마마. 이거..."

재차 새봤지만 어딘가 좀 이상하잖아. 한숨을 푹 내쉬며 티켓 다발을 흔들어보였어.

"세장이잖아."
"앗."

당연히 마마가 얻어온 거니까 마마는 가야하지. 항상 고생하기도 하니까 마마가 여행을 한번 다녀온다면 나도 기뻤고. 그럼 한장.

코타로는 어떻게 온천에 따라서 그냥 들어가는게 가능하려나. 하지만 어찌됐든 한명은 집에 남겨질 수 밖에 없던 거야. 남은 두장으로 알 수 있는 건 뻔하잖아.

당연한 소리지만, 남겨지는 한명이 어린 동생들 중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결국 답은 정해져있었어. 하지만 착한 딸인 니코는, 맏언니답게 말해버린 거야. 마마가 민망하고 난처해지기 전에 니코의 입으로 말한다면 해결되는 일이었으니까.

"마마. 푹 쉬다 와. 니코가 어차피 방학이니까 집에 있을테니 걱정하지 말구."

물론 몇번이나 미안해했지. 마마는 착한 사람이거든. 그래도 결국은 동생들을 데리고 가는 쪽으로 결정했어. 몇번이나 뽀뽀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우리 착한딸',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어.

이렇게 해서! 니코니는 희생정신을 발휘해 혼자 집에 남겨져 버렸던 거에요! 흑흑~


뭐 꼭 나쁘기만 했던 건 아니야. 온천을 꼭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동생들을 간만에 마마가 돌봐주는 동안 니코도 좀 쉴 수 있지 않겠어?

그런 생각에, 모두가 출발한 그날 저녁부터 시작해서 하루를 조금 넘는 시간 동안은...좋았던 거야. 혼자서 두다리를 쭉 뻗고 뒹굴거리기도 하고, 코코아가 또 코타로를 때려서 울리는 일도 없으니 맘놓고 조용히 쉴 수 있었구~ 조금은 좋았던 거야.

"흐그으으으으어어어...!"

짧은 시간 말이지. 그래.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도 않는 지금 이 순간.
지금 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흘려보낸 좀비같은 이상한 소리, 외로움에 겨워 낸 소리였습니코. 역시 니코니느은~ 정신 없고 몸은 힘들어두~ 귀여운 동생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좋았던 거랍니다. 생각해보니 언제나 함께 있었으니까. 갑자기 찾아온 이런 날은 왠지 쓸쓸했던 거야...
있지. 한가로운 메미소리를 들으면 왠지 평화로우면서도 우울하지 않아? 왜 그런 기분이 드는 걸까. 한번은 어릴때 정말 아무도 없는 시골에 있던 적이 있어. 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람 하나 없고 적막한 산골짜기에 둘러싸여 가만히 있다 보니 조금은 센치해지는 거야.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헀지만 동시에 너무 평화롭기에 우울하다고도 생각했어. 바쁘게 살아가고 수많은 일이 일어나는 도심지에서 아예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고있다는 느낌이었던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치열한 세상을 살다가 엄마가 있는 고향집으로 돌아온 그런 느낌을 그때부터 받았던 거 같아. 니코니는 참 조숙하지요?

그리고 지금, 아키하바라의 한복판에서 니코는 그 기분을 다시 한번 맞닥뜨렸어. 쨍쨍한 햇살에도 멈추지않고 달리는 전차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와 조금은 잡생각을 걷어내 줬습니다. 우리 집 바로 옆에 선로가 있거든. 가끔 베란다를 열고 내려다보면 조금 운치가 느껴지기도 해.

그러다보니 다시 현실적인 감각으로 돌아와서,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었어. 끙하고 부스스 일어나 주방으로 터덜터덜 걸었고 냉장고를 열어 확인해봤어. 마마가 출발하기 전 배려심 깊게 장을 봐준 덕분에 귀찮을 일은 덜었어. 이것저것 볶음밥 정도는 해먹을 재료가 있었지.

그냥...

"내가 싫을 뿐이지."

누구도 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대며 문을 닫습니다.

혼자 먹는 밥. 싫어. 맛없어. 조금 코가 시큰해질 뻔 했다...분명히 준비해야 되는 수고는 훨씬 더 없는데. 혼자서 4,5인분을 해서 동생들을 먹여줘야 하는 수고도 없는데.

조금도 기쁘지 않아.

쳇! 앞으로 노조미한테 조금 잘해줄까? 이런 외로움 속에서 지냈던 거였구나.



혼자서 뒹굴어봐도 답이 나올리 없었으니까. 대충 옷을 걸쳤습니다. 아무도 없는 베란다 창문을 잠그고, 아무도 없는 거실을 지나, 아무도 없는 현관에 도달해 신발을 신고, 아무도 없는 집의 불을 껐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드업네~ 무지 더우어~"

늘어지는 소리를 내며 혼자 걸었어. 정말~ 이렇게 대책 없이 더워도 되는거야? 녹아내릴 것 같았엉~! 이래서야 곱게 가꿔온 니코니의 피부가 검은 반점이 생겨버릴 거야. 얼마나 시간을 들여서 신경쓰고 있는데. 물론 대우주 넘버 원 아이돌님께는 당연한 케어니까 소홀히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보면 같이 노는 뮤즈 멤버들을 부를 수도 있었을 거라고, 그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을꺼야. 니코도 그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라구...

그치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노조미도 엄청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러 잠시 먼곳까지 갔고, 에리도 방학을 틈타 할머니를 뵈러 러시아까지 날아가서 근처에 없었어. 으와. 이렇게 보니까 더 멀잖아.

그렇다구 다른 아이들에게 연락하기에는~ 우응~ 조금 폼이 안나잖아요. 니코니가 언니인데 동생들에게 먼저 연락해서 만나자고 하다니이~ 히잉~ 이렇게 생각하니까 조금 서운해지는 걸~ 모두들 왜 먼저 불러주지 않는거야~?




잠깐, 거기 당신 지금 썰렁하다고 했어?











뭐, 어쩄든 좋아. 더 걷는 것도 재미없어져서 가까운 음식점으로 들어갔어. 주문을 마치고 턱을 괴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많은 차들을 훓어봤어.

좋겠다~ 저 사람들도 어디론가 놀러가는 걸까나. 아니면 이미 여기로 놀러온 걸까. 아무래도 아키하바라 한복판이니까. 방학을 틈타 굿즈를 노리고 온 학생들부터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준비하는 매장도 많겠지.

모두가 다 쾌활했어. 한없이 행복해보이고.

꼭 부러웠던 건 아니야. 흥...절대 아니니까.

항상 맏언니로써 많이 양보하고 하긴 했지만, 그것도 다 당연하니까 하는 일인걸. 동생들을 사랑하니까. 가족을 위하고 싶으니까.


...역시. 아무래도 다른 아이들이라도 부를껄 그랬나. 그치만...

린은 아무래도 시끄러운데다가 니코에게 하는 짓도 건방지구, 하나요는 세트로 같이 올테니. 마키? 어휴, 말도마. 그 솔직하지 못한 거 상대해주다간 스트레스가 더 쌓일걸. 코토리....글쎄. 우미는 아무래도...

"주문하신 메론소다 나왔습니다~"
"방학을 이용해 수련을 게을리 하지말고 공부에 매진해야하느니 어쩌느니하겠호노카?!"

깜짝 놀라서 올려다보자 유니폼을 입은 익숙한 얼굴이 눈이 휘둥그레졌어.

"여기서 뭐해?"
"니코쨩이야말로!"
"내가 먼저 물었잖아. 아, 그래. 뭐..옷 입고 있는 거 보면 알겠지만."

호노카는 남색 세로 줄무늬가 파인 원피스 유니폼을 입고 주문지를 들고 있었어. 치마가 짧은데다가 세모꼴로 들려있어서 아슬아슬하고 귀여워. 잘 어울리더라구.

"알바중이니?"
"으, 응..."
"왜 대답이 그래? 부끄러워 할 것 없잖아."
"아니, 그게 아니구우..."
"...뭐니?"

호노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갑자기 니코의 얼굴로 입을 가까이댔어. 그와중에도 계속 눈치를 보고 어딘가 불안해보였고. 손을 입에 가져다댄 호노카가 조용히 입을 열었어.

"실은 호노카,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란 말야."
"무슨 소리야?"

나참~

빠르게 이야기를 속삭인 호노카가 사정을 말했어. 어제 아침에 가게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이리저리 구경을 하다가 그만 팔뚝으로 야외에 진열되어있던 와인 병을 하나 떨어뜨려 깨뜨렸고...

"그게 2만엔짜리였다?"
"후으으! 너무 비싸! 호노카의 용돈으로는 낼 수 없었어! 하는 수 없이 여기서 무상으로 일하는 걸로 대신하긴 했는데...아직도 6일이나 해야만 해. 히잉...집에 가고 싶어. 일 너무 어렵단말야."
"엄청나구나."

그래. 어딘가모르게 위화감이 들었어. 그게 이유였던 거구나. 나는 차분히 앞에 놓인 메론소다를 들어올리고 말했어.

"호노카."
"응?"
"미안하지만, 나 이거 안 시켰어."
"에엥?! 미안해!"
"아냐. 괜찮아. 고생하는구나. 참."
"미안해. 니코쨩. 금방 갔다줄께?"

허둥지둥 쟁반에 메론소다를 올린 호노카는 이리저리 가게 안을 서성이다가 곧 짜증스런 눈빛으로 말없이 바라보는 한 젊은 여자 손님을 보고서야 다가가기 시작했어. 그치만 저렇게 걷다간...

"꺄악!"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 뭐에요!"

그야 당연히 넘어지겠지. 기가 막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메론소다가 여자의 하얀 바지를 물들였고, 같이 앉아있던 다른 손님들에게도 튀어버렸어. 아마 꽤 아팠을텐데 호노카는 자기 무릎도 돌보지 않고 서둘러 일어났고 허리를 연신 숙여댔어.

"......"

잠시 말을 잃고 바라봤어. 그렇게나 사과하는데도 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어. 물론 호노카의 잘못이니까 어쩔 수 없긴 하지만...그래도 친한 아이가 그렇게 한소리를 듣는 걸 보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거든. 그렇게까지 할 필요있나, 하고 여자가 조금 원망스러워 보이기도 했어.조금 편파적이긴 하지만.

어느새 호노카의 귀여운 얼굴이 일그러지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어두워졌어. 불행중 다행으로 여자는 씩씩대며 어깨에 백을 걸치고 가게를 나가버렸어. 화가 가라앉은 것 같진 않았지만, 결국 한참 어린 상대에게 세탁비를 받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나보지. 곧이어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어. 남자 점장인걸까.

"히익!"

뭐야! 니코니, 엄청 쫄았잖아! 빡빡 민 머리에 덩치는 산이 걸어다니는 것 같고 이마에 긁힌 자국까지 있는 무섭게 생긴 사람이 성큼성큼 걸어왔어. 흑백의 턱시도를 입긴 했지만, 무슨 죠죠야? 근육때문에 불어있는 옷이 당장이라도 터져서 단추를 발사할 것 같았어. 그 아저씨는 자그마한 호노카의 몸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더니 사냥개처럼 으르렁댔어.

"코사카 양, 도대체 몇번째야! 왜 일을 가르쳐줘도 못해!"
"아우...죄송해요."
"좋게 해결해주려고 했더니 이럴꺼야? 장난해? 지금 로스 나온게 더 늘어간다고!"
"..죄송해요..."

두 푸른 눈은 풀이 죽어 바닥만 바라보고 기어갈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어. 한숨을 푹 내쉰 점장은 곧 훽하니 뒤돌아서더니 차갑게 한마디를 남기고 가버렸어.

"하여간 요즘 것들은..."
"주문하신 스트로베리 선데 나왔습니다~"

누군가 해맑은 목소리로 니코니의 앞에 주문한 걸 제대로 올려놨지만, 이미 들리지 않았어.

들릴리가 있나. 호노카가 어디론가 터덜터덜 움직여 사라지고 있었거든. 축 늘어진 어깨는 이 더운 날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보다도 더욱 힘없어 보였지.

말없이 일어나 뒤를 쫓아갔어.

가게의 한구석에 숨어서 얼굴을 벽쪽으로 향하고 있는 호노카가 있었어. 어떤 얼굴일지는...뻔하지. 가만히 어깨에 손을 짚었더니 돌아봤어.

"히히."
"...니코쨩..."

미리 피고 있던 손가락 덕분에 볼이 쿡 찔린 호노카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얼굴을 홱 돌리고 얼굴을 주먹으로 닦아댔어.

"울지마."
"아, 안 울었어..."
"거짓말."

정말...하여간 한눈을 팔 수가 없는 아이라니까.
요 바보는. 하여간 항상 이런식입니다. 첫만남부터 그랬지. 어느날 갑자기 폐교되는 학교를 지키겠다고 어처구니없는 계획을 말하며 니코니를 끌어들이질 않나. 항상 그래. 남의 시선 속에 마음 속에 불쑥 들어와 버리지. 정말 호노카스럽다니까.
참 희안해. 호노카라면 왠지 이럴 것 같긴했어. 호무라 일을 할때는 그래도 빠릿빠릿하더니. 여기선 왜 이렇게 덜렁대고 있을까? 항상 엉뚱하고 사고뭉치라니까.


그치만...이건 만화가 아니야. 실제로 그런 덜렁이짓은 가게에 굉장한 민폐야. 귀엽지 않지. 더이상 그렇게 뒀다간 가게도, 호노카도 좋지 않아.

부드럽게 물어봤어.

"호노카? 일을 6일이나 해야되니?"
"흐윽..으응..."

훌쩍이는 호노카의 어깨를 잡고 돌리려 했지만, 고집스럽게 뿌리치며 얼굴을 숨기려 했어. 게다가 바보같이 힘만 쎄서 니코니가 떨어져 나갈 뻔 했지. 엇박자로 빠르게 돌려버렸더니 조금 놀란 얼굴의 호노카가 나를 내려다봤어. 어이구~ 눈물 범벅이 됐잖아. 다정하게 웃으면서 말해줬어.

"둘이서 하면 빨리 끝내줄 수도 있는거지?"
"...에?"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되묻더라구.

"들은대로야. 니코가 도와줄께. 같이 일하자. 그대로 더 있다간 뭐 하나 더 깰 것 같다. 호노카 여기서 평생 갇혀있겠다구. 두번다시 가족들도 못 만나고 이 가게에서 종신형을 살겠네! 어머~ 무서워!"
"무, 무슨 소리니. 니코쨩. 그럴 순 없어. 니코쨩에게 너무 미안하잖아."
"폐라면 이미 끼쳤다구. 엄청 걱정시켰으니까."
"에쿠!"

머리에 가볍게 춉을 갈겼더니 나보다도 크면서 움찔하는 모습이 귀여웠어.

"이런 모습을 봐놓고 집에 가봤자 나란들 편히 쉴 수있을 것 같아? 도와줄께. 내가 누군지 잊었어? 서빙계 초인기 메이드 니코린스키님의 지도라면 호노카도 구박받는 신세 탈출이야!"
"......"
"그리고 왜. 호노카가 맨날 떠들기 좋아하는 것도 있잖아. 뮤즈는 모두 하나라는거, 누가 힘들면 같이 나눠야지. 리더의 말을 충실히 지켜야하지 않겠어?"

잠시동안 멍하니, 이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냥 두 푸르고 예쁜 눈을 커다란 세인트 버나드 한마리처럼 꿈뻑이며 나를 바라볼 뿐. 천천히 다시 한번 그 빛나는 눈망울이 물기가 어리더니 또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에 갔습니다. 머리를 쓰다듬어줬어.

"자, 자. 울지 마.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이 힘들었지?"
"...웅..니코쨩. 정말 고마워."

그렇게 해서 니코니는 험상궃은 점장과 일대일로 마주보고 앉아 교섭을 하는 여장부같은 일을 해냈던 거랍니다. 휴우...정말 무서웠다니까. 그런 거인에게 말을 걸고 거래를 이뤄내다니.


여자아이로써 실격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팬티를 적실 뻔 했..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래도 의외로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고 흔쾌히 받아들여서 다행이었어. 교섭이랄 것도 없었지. 뭐, 이것도 니코니의 능력이라면 능력일까나?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의문이 들겠지. 그치만. 호노카에게 같이 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해주자 방방뛰며 기뻐했어. 이 모습을 봐.

이런 귀여운 아이가 그렇게 슬프게 울고 있는데 너무 가엽잖아?




그렇게 그날, 호노카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 바로 근무에 투입됐습니다!

"잘봐. 호노카. 가르쳐줄께."
"응응!"
""왜 자꾸 뭘 들고있던간에 쏟는지 스스로도 이상하지 않아? 드는 방법이 잘못된 거야. 이 쟁반을 잡아봐."
"잡았어."
"그래.팔을 너무 올렸어. 좀 내리고. 급하게 마음 먹지 말고 천천히 움직여."
"오오! 정말 편해졌어! 고마워~ 니코쨩."
"...그래."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일하자."
"응!"

잠깐 만진 호노카의 손이나 등은 굉장히 부드럽고...따뜻했어. 흐...흥! 항상 바보같은 짓만 골라 하면서 겉은 정말 여자아이답다니까. 소녀력이 물씬 넘치잖아. 소녀랄까, 너무 말랑말랑해서 아기같았어. 정신 차리고 보니 가슴이 조금은 두근거려. 바보같아~ 호노카 따위에게! 니코만큼이나 귀엽다고 인정해 줄 만해.

뭐, 아무래도 좋을까나. 한층 밝아진 얼굴로 호노카가 이리저리 메뉴를 나르고 있는 모습을 봤더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어.

몇시간은 무사히 흘러갔지만. 아직도 불안해서 가르쳐줄 것들이 많았어.

"아앙~! 어떻게 해! 이 치즈케익 세트 어떤 분이 시켰는지 까먹었어!"
"13번 테이블이야."
"에...정말? 니코쨩은 어떻게 호노카가 받은 주문까지 기억해?"
"훗. 궁금하니?"
"응. 엄청!"
"알았어. 가르쳐줄께. 일단 빨리 갖다드리고 와."
"응!"

뽈뽈대고 온 호노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해줬어.

"자, 호노카는 주문을 기억할 때 어떻게 하니?"
"우응~ 테이블 번호를 보고."
"바보야. 그렇게 하면 왠만한 천재도 까먹을꺼야."

지금 막 호노카가 갖다 준 테이블을 가리켰어.

"주문을 받을때는 테이블 번호보다 주문한 사람의 얼굴이나 뭘 입고 있었는지를 보는 거야. 지금 호노카가 갔다준 분들은 앞머리를 세우고 투톤 안경이 눈에 띄지? 그리고 보니까 근처 전기 회사의 옷을 입고 있어. 이런 걸 기억해두는 거야. 물론 잠깐 돌아섰더니 일행 중 한명이 화장실을 가버려서 보이지 않는 경우도 생기니까 한명만 기억했다간 낭패를 보겠지?"
"아~확실히 그렇네!"
"정말. 너무 당연한 거잖아. 지금까지 몰라서 고생했다니."
"에헤헤. 미안."

이럴 때 보면 뭔가 강아지같아서 귀엽다. 머리를 쓰다듬어줬더니 기분 좋게 싱글벙글거렸어.

"있잖아. 니코쨩."
"응?"

호노카는 잠시 눈을 피하면서 뜸을 들이더니 쑥쓰러워하면서 말했어.

"고마워. 호노카를 도와줘서."
"그래."
"일하는 것도 니코쨩이랑 함께 하니까 정말 즐겁다. 계속 점장님께 혼나기만 했고 다른 일하는 언니들도 호노카를 바보취급하구...외로웠거든. 에헤헤."
"신경쓰지 마. 또 모르는 거 있으면 니코한테 물어보고. 알았지?"
"응응! 아, 주문이다. 렛츠고~!"

또 쌩하니 없어져버리고, 하여간 이랬다 저랬다 한다니까.

그래도 뭐...나쁘진 않았어. 그날부터 호노카가 부쩍 밝아지고 일도 잘 하기 시작했거든. 솔직히 좀 놀랐어. 가르쳐준 건 많았는데. 그걸 응용하는게 빨라서.
하여간, 우미가 화내는 것도 이해는 간다니까. 머리도 좋은데 뺀질거리고 요령이 없어서 주위의 걱정과 실망을 사는 거야.
생긴 것도 귀여우면서 말야, 본인은 자각이 없는 것 같지만. 가게의 유니폼도 참 잘 어울려.

물론 여자력은 실격이라서 혼내줬지만 말야! 짧은 치마를 신경 안쓰고 테이블에 엎드려 기대고 있는 바람에 팬티가 홀라당 다 보였다구. 하여간 한눈을 팔 수가 없다니까.

'그런게 호노카쨩의 귀여움이라고 생각해~'

라고 감싸주는 코토리가 조금은 대단한 것 같아. 이렇게 몇시간 같이 있는 것만도 머리털이 빠질 것 같은데 요런 바보를 어린 시절부터 돌봐줬다니. 하여간 2학년의 호노카 보호자 그 두명은 알게모르게 억척스럽다니까. 좋은 엄마가 될 것 같네요.

그래도...좋았어. 호노카랑 같이 말을 하다보니까 지루할 틈은 없었거든. 이제야 좀 방학 기분이 나는 것 같았고. 재밌게 일했어.

식사도 가게에서 호노카와 같이 먹었더니 좋았습니다. 가게의 파스타같은게 굉장히 맛있기도 했고, 아무거나 잘 먹는 호노카를 옆에 앉혀두면 나도 식욕이 살더라고. 히히히.

메뉴도 좋고 누군가와 같이 먹어서 즐거움도 있고. 일이 정말 매끄럽게 흘러갔지.




그렇게 3일간의 일이 무사히 끝나고 떠나는 날이 됐습니다.

"수고많았어! 코사카양, 야자와양."
"수고하셨습니다~"
"점장니임~ 이런 것 정말 필요없는뎅~"
"내가 고마워서 그래. 받아놔."

점장님은 문앞까지 따라나와서 배웅해줬어. 우리의 손에 봉투 한장씩 특별히 보너스를 쥐어주기도 하는 등. 알고보니까 생긴 것만 그렇지 꽤 착한 사람이었더라구. 니코와 호노카가가 일도 잘하고 생긴 것도 귀여워서 가게의 매상이 좀 늘기도 했는데 그랬더니 지금까지 호노카에게 미안했다며 사과하는 등...조금 뻔해서 능글맞긴 하지만 싫지 않은 사람이랄까.

"야자와양~ 정말 일 더 할 생각없어? 아쉽네."
"아이~ 니코니는 학생이잖아요. 학업에 최선을 다해야죠. 나중에 시간되면 꼭 또 올께요."
"그래그래! 또 봐!"

더할나위 없이 일이 잘 풀렸어. 호노카랑 수다를 떨면서 거리를 걸었어.

"히잉...호노카 앞으로는 주위에 비싼 와인이 있으면 조심할꺼야."
"네네~ 교훈이 있었다니 그래도 다행이네."
"헤헤헤. 그러게. 후와~ 홀가분해! 아."

갑자기 호노카가 발을 멈추길래 돌아봤어.

뭘까.

뭔가 굉장히 이뻐. 어느덧 저녁노을이 져가는 거리에서, 그 노을은 호노카의 귀여운 오렌지빛 머리카락 만큼이나 눈부셨어. 오렌지빛의 경계가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빛났지. 그 물결의 중심에는 호노카의 귀엽게 머뭇대는 얼굴이 있었고.

"니코쨩. 정말 고마웠어."
"별 거 아냐. 한가하기도 했고."
"니코쨩은 참 상냥해."
"흥. 호들갑은."

흠칫 놀랐어. 아무렇지도 않게 니코의 손을 잡고 헤실헤실 웃어대길래 말야.
그치만 싫지는 않았지.
그렇게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걸어서 어느덧 집 방향이 갈리는 역근처까지 다다랐어..

"그럼 니코쨩, 바이바이~"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요란하게 손을 흔들고는 호노카가 뒤돌아서 가기 시작했어.

문득, 뭐였을까.
갑자기 치솟아오르는 아쉬움.

"저, 저기..!"

말하려고 하다가. 황급히 목소리를 낮췄어.
최근 느꼈던 짧지만 싫었던 그 감정, 텅빈 집에 니코 홀로 남아 쓸쓸히 잠들고 밥을 먹던 그 기억들.

너무 싫었어.

반대로 너무 좋았어. 호노카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렇다고...내입으로 말하기엔 선배로써 좀 부끄럽잖아~ 여기선 어쩔 수 없이...품위를 지켜야지. 그렇게 서서히 멀어져 가는 호노카의 뒤를 하염없이 바라봤어.

"왜 그래? 호노카."

갑자기 멈춰서더니 뒤돌아선 호노카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어. 나에게 서서히 걸어오더니 싱겁게 웃어버렸어.

"뭐야~ 놀리는 것처럼. 빨리 말해."
"호노카. 니코쨩이 참 좋아."
"무슨 러브히나 같은 소리야, 갑자기. 고백도 참 뜬금없네."
"그치만~ 니코쨩 정말 고마워. 호노카를 그렇게 며칠씩이나 도와주고. 왠지 니코쨩이랑 헤어지기 아쉬운걸."
"바보같긴."
"니코쨩에게 보답할 방법이 없을까? 그러고 보니까 니코쨩 집에 혼자라고 했네? 밥은 잘 먹고 있어? 호노카가 반찬 싸다줄께!"
"푸핫. 서빙 한번 하는데도 넘어지는 호노카가? 반찬에 돌이라도 왕창 들어가겠는걸?"
"아앙~ 너무해애~!"

팔뚝을 마구 때리는 호노카의 주먹이 싫지 않아.

잘됐네. 이것도 기회겠지.

"그, 그럼~! 니코니의 집에 놀러와."
"응?"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어.

"왜~ 니코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며? 니코니 좀 심심하기도 하구. 괜찮으면 놀러와도 좋아."

정말 호노카는 바보같은 표정이 다양하고 완성도가 높구나. 꼭 사탕껍질을 벗겼는데 돌멩이가 들어있는 걸 본 원숭이같은 표정으로 호노카가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어.

"에. 그치만. 호노카가 니코쨩에게 보답을 하는 거잖아? 호노카가 니코쨩네 집에 가면 신세를 더 지는 것 아닐까나?"
"뭐, 좀 이상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좋은 일이야."


피식 웃는 호노카를 따라서 니코도 웃음을 지었어.

"호노카라면 환영이니까. 올래?"
"응~! 신난다아~! 그럼 엄마에게 전화 한 통화만 할께!"










호노카의 어머니가 흔쾌히 허락해주신 덕분에 같이 니코의 집으로 오게 됐어.


"와~이! 니코쨩의 집~ 실례하겠습니다~"
"그래그래. 한껏 시끄럽게 굴고는 있지만."

어쩌다보니 정말로 같이 오게 됐네.
잠깐은 움찔했어. 집에 대한 감상이 어떨까 해서. 하지만 쓸데 없는 걱정이었지 뭐야.

"흥흥~ 뭔가 니코쨩의 냄새~ 히힛."
"뭐니. 멍멍이도 아니고. 이쪽으로 와."

강아지같은 감상에 바로 안심해버렸지.

"흐음~ 그러면, 밥 먼저 먹을까? 아니면 먼저 씻을까?"
"니코쨩은 배고프지 않아?"

가만히 배에 손을 얹어 봤어. 그러고보니.

"휴~ 그래. 일 끝나고 나니까 긴장 풀려서 갑자기 배가 고프네~ 호노카도 밥 먼저 먹을래? 니코가 직접 맛있는거 해줄께~"
"오! 기대된당~"
"그래. 잠깐 기다려. 시간 좀 걸리테니까."

냉장고를 여는 마음은 한없이 즐거웠어.

요 며칠간은 밥맛도 없고하니 대애충 때우곤 했는데. 드디어 재료들을 쓸 기회가 왔네.
이야~ 뭘까....
이 설렘. 평소에 동생들에게 해주던 때와는 색다른 이 감정. 역시...같이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실컷 들었어.
누가 보면 안될텐데.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며 혼자 피식 웃는 모습이라니.

어디, 실력 발휘 좀 해볼까?



 

 

 

몇분뒤 된장국을 끓이느라 두부를 썰고 있을 때 호노카가 다가왔습니다.

"냄새 좋다~ 메뉴가 된장국이랑 뭐야?"
"기대하라구. 니코니 특제 소스를 첨가한 연어랑 계란말이니까 말야~"
"우와! 둘다 좋아해~"
"호노카가 맛없는 게 있긴 해?"
"에헤헤. 없지!"

피식 웃음을 나누고 먹기 좋은 크기로 쓴 두부를 한쪽으로 치웁니다. 양파를 좀 넣으면 좋을 것 같아서 한 알을 잡고 반으로 쪼갰어. 그리고 이어지는 칼질로 곱게 썬다...익숙한 일이지.

"대단하다 니코쨩~ 손 엄청 빨라!"
"헹. 별 거 아니지."

한참이나 말없이 신기한 듯 보던 호노카가 다시 입을 열었어.

"니코쨩. 호노카도 해보고 싶어. 도와줄래."
"그래? 그럼 고맙지. 국물 간 좀 봐줄래?"
"에~ 그런 거 말구. 니코쨩처럼 멋있는 거 할래~"
"칼질 해 본적 있어?"
"없지."
"즉답이냐."

혀를 끌끌 찼어.

"안해봤으면 안돼. 위험하니까."
"히잉. 왜..."
"호노카를 바보 취급하는게 아니라 원래 칼질이 그런거야. 오래 걸리기도 하구."
"칫! 됐어."
"무슨 한두살 먹은 애도 아니구..."

 볼을 부풀리고 도끼눈으로 돌아가길래 달래주려고 팔을 만졌어. 하는 수 없지.

"알았어~ 그럼 맡겨볼까?"
"정말?"

 바로 화색이 돌아오는 얼굴이 참 알기 쉽다.

"여기 무 있지? 이 상태에서 4분의 1 크기로 썰 거야?"
"오케이!"
"아. 창문 열어놔야 하는데 깜빡했네."

중얼대며 저만치 베란다로 걸어가 창문에 손을 얹었어.

그게 실수였지.

그 왜...애기들은 항상 돌발행동을 하잖아? 잠깐 손놓고 뒤돌아보니 아이가 없어졌다는 경험담도 수두룩하고.
항상 동생들을 돌보고 있지만 니코니도 조금은 내공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쾅!

깜짝 놀라 뒤돌아봤더니...세상에, 믿을 수가 없더라.

쾅! 쾅쾅!

오늘 난 분명히 호노카를 데려왔을텐데. 야만전사가 아니라 말이지. 호노카는 어깨 높이까지 칼을 올렸다가 내리쳐서 무를 베고 있었어. 아니...베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당근에게 교수형을 선보이고 있었어.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코. 저런 움직임이라면 우미와 검술로 겨뤄도 20합을 받아낼 수 있지 않을까?

단숨에 달려가 칼을 빼앗았어.

"크로마뇽인이냐아!!!"
"에엑?! 너무해!"
"위험하잖아! 뭐하는 거야!"
"그치만...무가 잘 안썰려. 힘을 주느라고."
"가르쳐 줄 때까지 기다렸으면 됐잖아!"

금새 풀이 죽는 얼굴을 보자니 어디에 맞춰야 할지 조금 머리가 아파왔어.

자, 다시....

다정하게 손을 잡고 칼을 쥐어줬어.

"자, 손목에 크게 힘을 주지 마. 또 칼날은 손목보다 높게 올라가는게 아니야."
"이렇게?"
"그래. 잘했어. 한쪽손은 이렇게 고양이 손을 만들어. 안 그러면 베이니까."
"앗. 정말 되네. 헤헤. 멋대로 해서 미안해. 니코쨩."
"그래. 큰일날뻔 했잖니. 오늘 메뉴는 된장국이야. 호노카 손가락 국이 아니라구."
"에헤헤."
"맘 편하게도 웃는다. 참..."

한숨을 푹 내쉬고 웃어버렸어. 분명 알바는 끝났는데. 어째 니코의 호노카 지도는 아직 계속되는 것 같아.

그래도...정말 사고뭉치지만 왠지 미워할 수가 없어. 그게 호노카랄까.


 

 

 

 
우여곡절 끝에 보기 좋게 쟁반에 담은 반찬이 우리를 기다리고 이제 먹기만 하면 돼. 나도 슬슬 못 참겠더라고. 타이밍 딱 맞게 잘 됐어. 16세 아동 K사카양을 데려와 앉혔습니다.

"휴...다 됐다. 배고팠지?"
"아니야~ 고생 많았어. 씻지도 못하구."
"그래..먹고 나면 목욕물 받아놀께. 호노카부터 바로 씻자. 이제 밥만 푸면 돼."
"그래! 이걸 열면 되는거지?"
"잠-"

내가 잘못 본게 아니었다면, 밥솥은 아직 압력이 다 빠지기 전이었거든.

거기에 손을 뻗치니까.
심장이 떨어져나가는 줄 알았어.

"스타아아압!"

소리치면서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가고 호노카의 머리에 춉! 헐떡이는 나를 호노카는 머리를 문지르며 울상을 한 채 쳐다봤어.

"아우..왜 그래!"
"바보야. 열었으면 큰일이라구!"

손가락으로 밥솥을 톡톡 쳐보였어. 아직 다 되질 않았다는 걸 호노카도 뒤늦게 발견했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며 중얼댔어.

"죄송해요오..."
"휴, 괜찮아. 호노카가 안 다쳤으니까 다행이지."

수명이 줄어들지도 모르겠습니코...


그렇게 잠깐 난리가 있긴 했지만, 식사는 즐거웠습니다. 호노카는 연신 맛있다면서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어. 그걸 보는 나도 기뻤지.
요리는 뭐가 어찌 됐든 맛있게 먹어주면 요리한 사람이 정말 보람 있으니까. 문득 합숙때가 떠올랐어. 그때도 모두에게 요리를 해주긴 했지만 이번엔 좀 특별했지. 뮤즈 활동을 시작하고 그 멤버를 처음으로 초대해서 대접한 저녁, 성공적이었어.


니코도 들떠서 평소보다 배는 먹어버린 것 같아. 배가 불룩하게 나온 모습이 조금 여자력 실격이긴 하지만, 뭐 어때~ 즐거운걸.











다 먹고나선 호노카의 손을 잡고 욕실 앞으로 이끌었어.


"호노카, 땀 많이 났지? 자, 여기 바구니에다 옷 다 벗고 먼저 씻어."
"에. 그래도 돼?"
"응. 난 어차피 설거지도 해야하니까 나중에 씻을께. 옷 벗고 들어와. 목욕물 받아논다."
"오케이~ 고마워!"
 
차분히 물을 켜고 손으로 온도를 재다가 적당하게 맞춘 다음 배수구를 막았어. 가만히 흘러가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딘가 묘한 건 왜일까. 뮤즈 멤버, 그것도 어쩌다보니 호노카를 데려오게 됐네. 그것도 단 둘이야.

이거이거, 멤버의 아무개씨가 나였다면 설레서 심장마비로 죽었을지도 모르겠는걸? 코토리라던가 코토리라던가 또 코토리라던가. 히히히.

그렇게 생각했더니 뭔가 쓸데없는 스위치가 들어갔달까. 장난이 치고 싶어진 거야.

마침 들어온 발가벗은 호노카에게 핸드폰을 들이댔지.

"좋~은데?"
"자, 잠깐만! 뭐하는 거야~"

셔터를 눌러대는 소리가 울려퍼지자 가슴을 가리고 허둥지둥 대는게 귀여웠어.

왜 고대의 고문기술 중 일단 옷을 벗기는 게 있다더군. 사람은 일단 강제로 나체를 보이면 수치심에 기가 죽어버린다고 했었지. 지금의 호노카가 딱 그랬달까. 이히히! 가슴을 가리랴 날 멈추려고 덤비랴 바빴어. 이리저리 피하면서 계속 눌러댔지. 물론 정말로 정조준해서 찍은 건 아니야. 하지만 얼굴이 빨개지는 모습이 귀여워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아앙~ 하지마, 니코쨩~!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
"푸헬헬! 어차피 여자끼리잖아~"
"그치만~ 기록은 안돼애~"
"꺄하하하! 오토노키 게시판에 올려야지~"
"흐아앙~ 시집 못가게 되버려~"
"10장! 오케이~ 신생 스쿨 아이돌 그룹 뮤즈의 리더 K사카양! 그 감춰진 탄력적...잘못했습니다. 지울께. 장난이야. 설마 진짜 올릴 리가 없잖아."
"호노카 화낼꺼야?"

훌쩍이며 내 볼을 잡고 욕조로 밀어넣고 있는 호노카에게 패배를 선언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빠진닷..!

왜 이렇게 힘이 쎈 거야.










요 며칠간, 정말 수많은 일이 지나갔구나.

호노카와 교대해 들어간 욕조에 몸을 푹 담그고 늘어져 창밖으로 달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방학이 시작한지 얼마 안되고, 외로워하던 중에 우연히 호노카를 만나고, 호노카랑 같이 즐겁게 일을 하고, 결국 호노카랑 단둘이 집에서 자는 등. 즐거웠습니코.

"....히힛."

정말이지. 오늘의 니코는 정말로 니코답지 않아. 자꾸만 혼자서 웃다가 누군가에게 들키면 놀림 받을텐데. 괜시리 쑥쓰러워져서 얼굴을 물속으로 담갔어.

 

 

 
 

머리를 마저 말리며 방으로 들어갔더니 침대에 앉아있던 호노카가 쪼르르 달려와 팔을 잡고 잡아끌었어. 아까부터 계속 같이 있었는데 뭐가 이렇게 반가울까. 꼭 사람 좋아하는 강아지같아.

"니코쨩 이쪽이쪽~ 빨리~ 헤헤헤."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머리 좀 말려야 하잖니."

반쯤은 호노카의 손에 끌려가다시피 하며 화장대 앞에 앉았어. 니코니가 자랑하는 메이크업 스테이지랍니다. 꾸미는데 지식이 풍부하다 보니 이거저것 많이도 사게 됐지~ 그치만 조금도 비싼게 아니야. 여자, 아이돌, 소녀로써의 피부는 곧 평생 생명이라구? 가치가 충분한 투자지. 영양 크림을 손에 들고 조금 손에 덜어낸 뒤 얼굴에 가볍게 펴발랐어.

"이리 와봐. 호노카도 발라줄께."
"앗! 땡큐~"

 호노카의 얼굴에 이곳저곳 영양 크림을 발라줬어. 우와..반하겠어. 의외로 피부가 부드러워서 손이 절로 미끄러지네.

"이렇게 보니까 호노카도 피부 좋네."
"에헤헤. 고마워."
"조금은 분한 걸. 니코는 관리에 엄청 신경쓰고 있는데 피부에 신경도 안쓰는 호노카랑 별 차이가 없잖아?"
"아핫. 어떻게 알았어? 정말 하나도 모르거든. 화장품같은 건."
"호노카라면 뻔하지."

같이 씩 웃으며 한동안 이것저것 발라주며 놀았습니다. 머리가 그대로 말라버리기 전에 자, 빨리 드라이기를 키고. 긴 검은 머리를 흩날리며 털어줍니다.

어느덧 많이 자랐네. 이 머리도. 의외로 귀찮은 일이란 말이지. 머리를 이만큼 기른다는 건. 관리하기 힘들거든. 그치만 이렇게 지켜냈더니 아이돌로써의 이미지라던지. 결국 큰 무기가 되서 뿌듯하답니코.

다음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준 빗질을 위해 손을 뻗었는데.

"뭐해?"
"니코쨩. 오늘 호노카를 위해서 고생해줬으니까 호노카가 빗어줄께!"
"헤에. 좀 불안하지만 기대되는걸."
"아아 좀! 불안하지 않아~"

호노카가 툴툴대면서 니코의 뒤에 서서 빗질을 해주기 시작했어.

"어때?"
"흐음~ 의외로 기분 좋은데."

그럴 수 밖에. 그러고보니 누군가가 머리를 빗어주는 것도 꽤 오랜만이었어. 항상 동생들을 빗어주던가. 멤버들을 단장해주며 빗어주던가. 정작 내가 이렇게 빗질을 받아볼 기회는 많지 않았어.

정말 좋았어. 호노카의 빗질에서 뻗어나와 살짝 머리를 울리는 진동... 그동안의 피로가 몰려오면서 편안해졌고, 잠이 올 정도로 나른해졌어...아무것도 방해할 건 없었지.

뿌직

호노카가 엉킨 머리칼을 그대로 빗어버리기 전까지는 말이지.

"갸아아아악! 아파!!!"
"우와악! 미미미미미미미안해! 니코쨩~!"

너무 아파서 머리를 잡고 바닥에 뒹굴었어. 정말 무신경하네! 남자아이로 태어났다면 평생 솔로였을 거야! 게다가 여자아이로 태어났으니 더욱 문제 아니야?! 흐윽...니코의 니코니 헤어가..! 애써 가꿔온 소중한 모발이! 머리 어딘가에 손을 뻗어보니 몇가닥이나 빠져버린 머리카락이 잡혔어. 충격적으로 그걸 내려다 보다가 질끈 움켜쥐며 일어섰어. 속상해서 눈물이 찔끔 나와.

"흐윽...이게 뭐야! 어떻게 할 거야!"
"미안해! 니코쨩..."
"이 덜렁아! 오늘 계속 괴롭히네! 알바할 때 왠일로 잘하더니 끝나니까 바로 다시 평소의 바보로 돌아가냐! 아니다, 일부러 그런 거지! 발가벗은 걸 사진 찍었다고 복수한거지?!"
"아니야! 아우아아악! 믿어줘, 제발!"

크레용 신짱처럼 머리 양옆을 잡고 조여버렸어.

겨우 진정된 우리는 한참 뒤에야 불을 끄고 누웠습니다.

 

 

 

 

 

 
"니코쨩. 자니?"
"아니. 아직."
"아까 머리 뜯어서 미안해."
"휴, 괜찮아.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니까. 니코도 화내서 미안해."

같이 누은 침대는 조금 비좁긴 했지만 싫지않은 느낌이었습니다. 창문 너머로 은은한 달빛과 함께 아키하바라의 소음이 들려오는 이 시간, 이런 아늑한 느낌도 새로웠어. 그리고 호노카와 함께 하니 더더욱.

천장을 올려다보며 잠을 청했지만. 여전히 들뜬 건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

"저기, 호노카."
"응?"

바로 옆에 누웠으면서 뭘 굳이 돌아보는 거야...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댄 호노카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서 순간 시선을 빼앗겼어. 어두운 방안에서도 나를 부르듯이 뚜렷하게 빛났어.

"오늘 와줘서 고마워."

대답이 없었지만 말을 이었어.

"사실 오늘 부른 건 순전히 내 욕심 때문이야."

이마에 팔뚝을 얹고 멍하니 천장을 다시 바라봤어.

"사실 같이 일했던 그 날들도 그래. 계속 켕겨. 난 호노카를 도와준게 아니야. 내 외로움을 달래려고 한거지.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워버려서 뭐라도 집중할 일이 필요했거든. 그냥...미안해."

아마 창피해질까. 내일 아침이 밝으면 이 말들을 후회하려나.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본심을 털어놓고 있었어. 훗.

새벽의 공기가 , 그리고 호노카와 단 둘이 누워있다는 사실이...왠지 너무나 편안해서. 행복해서. 자존심이고 뭐고 의지하고 싶어졌어. 왜 그랬는지는 니코도 모르겠어. 하지만 사실인걸.

멍하니 그러고 있느라 호노카가 니코의 몸을 꼭 끌어안는 것도 뒤늦게야 알아챘지.

"호, 호노카?!"
"니코쨩. 참 바보구나."

부드러워서 정신이 아찔해질 것만 같다. 우리 둘 다 짧은 반팔에 반바지만 입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러면 어떻게 해...! 따뜻한 호노카의 몸이 살갗에 닿아와. 녹아버릴 것 같아..게다가 니코니의 가슴과 맞닿아 눌리는 뭉클한 이 가슴. 제, 제법 있는걸...것보다 너무 야한 거 아냐?! 이 느낌?! 이 상황?! 우왁...

게다가 아랑곳하지 않고 그 탐스런 머리카락을 내 볼에 가져다댔어. 니코의 목줄기를 살짝 간질이는 머리카락의 끝자락. 간지럽지만 너무 좋아..!

"호노카에겐 듣고 싶지 않거든..."
"그럴지도. 에헷. 그치만...미안하다느니 그런 말도 안되는 말하지 마. 니코쨩, 3일동안이나 니코쨩의 방학을 버려가면서 호노카를 도와줬잖아? 그런 상냥함은 단순히 외롭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윽."

호노카주제에 정곡을 찔렀다.

"그치만..! 아무튼! "
"사과할 필요 없대두."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혀를 끌끌 차고 말았어. 나도 참. 무슨 말을 하는걸까. 호노카도 비슷한 기분이었던 걸까.

무겁게 적막이 찾아왔어.

"저기, 니코쨩."
"뭐니."
"오늘만 언니라고 부르면 안될까? 돫!"
"허억..허억..!"

덕분에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어. 호노카에게 초음속 배게를 선사했더니 얼굴에 맞고 숨이 막히는 소리를 냈어. 니코는 멀찌감히 떨어져 앉아 숨을 몰아쉬었고.

"무슨 오그라드는 소리야, 이 바보야!"
"그치만~ 언니 맞잖아. 선배 이전에."
"그런 거 없기로 했잖아! 우리 사이에."
"그치만 니코쨩은 훌륭한 언니 맞는 것 같은데?"

호노카도 따라 일어나 주저앉더니 웃으며 니코를 바라봤어.

"항상 동생들을 돌봐주느라 바쁘고. 그러면서도 아이돌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구. 강하고 멋있어. 호노카도 집에선 언니지만 니코쨩이랑 비교하면 부끄러운 걸. 분발해야겠단 생각이 들어. 에헤헤."
"그래. 유키호랑 둘이잖아."

"응. 그래서 항상 궁금했어. 언니가 있어준다면. 어떤 기분일까...하고. 그런데...요 며칠간 그 답을 찾은 것 같아. 니코쨩이랑 같이 하면서.."
"아윽...누가 내 몸 좀 펴주세요..."

엎드려서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버둥거렸어. 민망해서 미치겠네.
그렇구나. '호노카와 2학년'의 '2학년' 너희 둘, 의도치 않게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버리는 이 바보에게 조련되어 온 거구나. 인정할께. 호노카. 상당한 파괴력이야.

"니코쨩~ 자꾸 말하는데 그렇게 오징어처럼 배배 꼬이고 있을꺼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니코를? 좋은 언니라고?"
"응.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래?"


안심해도 되는 걸까. 그렇다면. 항상 동생들을 돌보며 잘 하고 있는 건지. 막연히 불안할 때가 있거든.
오늘 호노카는 여러가지를 주고 가는구나.

"고마워."

내 대답을 들은 호노카는 천천히 기어가더니 침대옆에 있던 호노카의 물건들을 뒤적였어. 그리고 아까 일이 끝나고 받았던 봉투를 두손으로 꼭 잡고 내밀었어.

"...뭐니?"
"이건 니코쨩에게 줄게."
"뭔 소리야. 이건 호노카의 몫이잖아."
"으응."

고개를 가로짓더니 호노카가 다시 입을 열었어.

"니코쨩이 없었다면 이런 건 받지도 못했어. 언니답게 도와준 니코쨩 덕분이야. 니코쨩이 받을 자격이 있어."
"바보같은 소리 마. 그걸 좋다고 채갈 줄 알았어? 니코니를 우습게 봤네~"
"받아줘어~"
"으왓. 어디 만져! 화낸다?"

덤벼들더니 나를 짓누르면서 봉투를 손에 쥐어주려고 했어. 건방지긴..! '언니'라매?! 이게 언니한테 하는 태도야?

"허억..그건...호노카가 잘 따라와서 받은 돈이야!"


버둥대던 우리는 동시에 멈췄어.

"스스로를 그렇게 바보처럼 생각하지 마. 호노카는 언제나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훌륭하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한명한명 모두 다른 8명을 모을 수 있을리 없잖아.

"...칫. 니코쨩은 고집쟁이."
"시끄러. 빨리 내려와. 무거워 죽겠어."

데굴데굴 굴러서 눕고 이불을 덮은 우리는 다시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어.
슬쩍 부스럭하는 소리를 내며 옆을 바라보니 호노카도 아직 잠들지 않았어.

에잇~ 정말 가지가지 하네.

홱 등을 돌리고 누워 말했어. 황급하게 입을 여느라 앞부분을 잘라먹고 말았지만.

"불러도 좋아."
"응?"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해버렸지.

"아침까지만이야. 언니라고...불러도 좋아."
"우와~! 니코쨩 함락!"
"시끄러! 윽."
"에헤헤~ 언니언니~ 니코언니~"

다시 무작정 끌어안고 얼굴에 볼을 부벼대는 강아지가 부담스러워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강아지가 힘이 쎄서 무리였습니다.

"아으...누가 내 몸 좀 펴주세요."

덕분에 잠은 다 잤던지라 늦게까지 수다를 떨며 놀다가 잠들었어.











"조금 더 있다 가도 된다니까 그러네."
"고마웠어. 니코쨩! 폐가 되기 전에 가야지~"

다음날 아침, 일찍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하는 모습.

무슨 꼭 어린애같지만 의외로 이런 쪽에선 예의 바르다고 생각했어. 역시 장사하는 부모님을 돕는다고 했던가. 그런 싹싹한 모습도 얼핏 보였고.

"...또 와. 호노카."
"응응! 다음엔 모두와 함께 올래! 재밌겠다."
"그러게. 내가 접대를 잘 했는지 모르겠네."
"최고였어~ 재밌었으니까 걱정 마. 니코쨩~ 바이바이~"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문을 닫고, 그 너머로 호노카가 사라졌어.

집에 또다시 혼자 남겨졌지만. 니코니의 얼굴에 피는 것은 쓸쓸함이 아니라 미소. 더 이상 마음속은 휑하지도 않았고 저 밖으로 들리는 메미소리도 우울하지 않아.

시원스레 돌아설 수 있었지.

자, 그럼 이제부턴 뭐한다~ 그래! 기운이 솟으니까 미뤄논 욕실 청소나 해볼까나~ 좋네~

사각

언뜻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아. 방향은 문쪽. 다시 몸을 돌려 바라봤더니 문 밑으로 뭔가 들어오고 있길래 가까이 다가가 봤어.

계속해서 소리를 내며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어제 호노카가 주려고 했던 자신의 보너스 봉투. 틈이 좁은지 이리저리 꾸겨지면서 들어오던 그건 어느새 절반이 넘어왔고, 곧 마지막으로 힘차게 날아들어왔어.

"..."

말없이 바라봤어. 지금 문밖에선 소리가 안나고 있지.

그렇다면...

타다다다닥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니코도 번개같이 문을 열고 나가 소리쳤어.

"죽을래. 호노카아아!"
"꺄아아악! 도망가자!"

빠르기도 하네. 분명히 복도는 꽤 긴데. 나갔을 땐 이미 모퉁이로 사라지는 호노카의 발목만 볼 수 있었어. 혼내줄 거야. 다음에 만나면. 한숨을 푹 내쉬며 봉투를 집어들고 슬며시 열어봅니다. 오, 짭짤하군...마마랑 동생들이 오는 날 고기반찬이나 사볼까.

조금 분하기도 한 걸. 막판에 지다니. 봉투를 내리고 피식 웃으며 복도의 저편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어.

"또 와. 호노카."

'럽갤문학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제  (0) 2017.10.21
그 무엇보다 달콤한  (0) 2017.10.17
사무치도록 사랑하면 가슴에 꽃이 핀다.  (5) 2017.10.06
마키쨩이 우리를 차별하는 것 같다냐.  (2) 2017.10.06
카메라와 스케치북  (2) 2017.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