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 아이돌이라 해도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이할 때가 종종 있다.
그중에서도 근래에 들어서 가장 위험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 인물이 오토노키자카 학생회실 안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어, 어째서 내가?!”
스타일 좋은 금발미인, 아야세 에리가 손으로 책상을 내려치며 항의하듯 말한다.
“왜 내가 러시아어 수업을 담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치만...”
코토리가 난감하다는 듯이 옆에서 딴청을 피우는 호노카와, 그리고 한숨을 푹푹 내쉬는 우미를 바라본다.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강력히 요구하는 에리에게 우미는 어쩔 수 없이 자초지종을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에리도 알고 계시죠? 저희 학교는 제2외국어 강사를 외부 시간제 강사를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거야 잘 알고 있어. 일단 나도 학생회장이었으니까.”
“그런데 최근에 러시아어를 담당하시는 강사분이 갑자기 다른 일이 생겨서... 본의 아니게 저희 학교쪽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것까진 알겠는데, 왜 하필 나냐고.”
“그건...”
우미가 호노카를 지그시 바라본다.
코토리와 우미의 시선을 나란히 받게 된 호노카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한다.
“선생님을 구할 때까지 내가 에리에게 당분간 러시아어 수업을 맡기자고 이사장님께...”
“역시 범인은 너였구나, 호. 노. 카!!!!”
이토록 화난 에리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순간 움찔한 호노카였지만, 그녀도 결코 악감정으로 이런 일을 벌인 게 아니라는 생각을 품은 에리가 화를 진정시킨다.
제3자의 시선에서 보자면 에리는 어떤 의미로 러시아어 현지인이기도 하다.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살다 오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난 러시아어, 잘 모르는데...’
왜 그녀가 일부러 하라쇼만 연달아 외치고 있겠는가.
그게 다 사정이 있어서다.
“알았어, 어쨌든 하면 될 거 아니야. 당분간만 하면 되지?”
“응! 고마워, 에리!”
호노카가 눈을 반짝이면서 에리의 두 손을 마주잡아준다.
그래.
당분간만이다.
선생님을 구할 때까지.
그리고 드디어.
방과후, 러시아어 수업을 맡게 된 에리가 등장하자, 수업을 기다리고 있던 여고생들이 작게 탄성을 자아낸다.
교내에서도 에리의 인기는 매우 높은 편.
덕분에 에리가 등장하자마자 작은 ‘꺄~’소리가 먼저 에리의 귓가를 간지럽힌다.
하지만 에리는 그것보다 더 걱정인 것이 따로 있었다.
‘...러시아어를 가르치란 말이지...’
헛기침을 하면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에리.
“안녕하세요, 여러분. 아야세 에리에요.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칠판에 뭔가를 끄적끄적 적기 시작한 에리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한다.
“여러분, 러시아에서 기쁜 일, 훌륭한 일, 잘한 일을 했다는 뜻으로 내뱉은 부사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하라쇼(хорошо́)-! 입니다!”
누군가가 외친 말에 에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좋다’라는 긍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하라쇼(хорошо́)에요.”
다른 학생의 모범적인 대답에 에리가 이번에 다른 질문으로 넘어간다.
“놀라거나 자주 내뱉는 감탄사로는요?”
“하라쇼(хорошо́)...?”
“네, 정답이에요. 그리고 또... UTX 옥상에서 어라이즈의 공연을 보고 놀랐을 때 내뱉는 감탄사는요?”
“하, 하라쇼....”
“뮤즈가 예선을 돌파했을 때 기쁜 마음을 표현하는 한 단어는?”
“...하라쇼...”
“정답!”
에리가 칠판을 쾅 내려치며 말한다.
“그만큼 하라쇼는 매우 중요한 언어랍니다. 러시아어에 있어서 하라쇼 하나만 알고 가면 언어소통의 50% 정도는 다 소화할 수 있는 훌륭한 단어에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셧업 하라쇼(хорошо́)!!!”
“히익?!”
러시아어인지 미국말인지 구분이 안 가는 혼합형태의 하라쇼를 선보인 에리가 눈을 흘기며 반론을 가한 여학생을 노려본다.
“하라쇼를 무시하는 몰상식함은 러시아어를 배울 자세가 안 되어 있다는 뜻이에요. 잘 기억해두세요, 여러분. 제가 결코 하라쇼 이외에 러시아어를 몰라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니에요. 하라쇼의 중요성을 강요하기 위해 일부러 하라쇼만 말하는 것일 뿐이라구요!!”
그동안의 억울함을 풀어내기라도 하듯 에리의 목소리가 교실의 공기를 가른다.
“그런 의미로 여러분들은 저에게 10 하라쇼를 받을 때까지 완벽하게 하라쇼 발음을 마스터합니다. 알겠습니까?!”
“네,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하라쇼로 통일합니다!!”
“하, 하라쇼!!!”
그렇게 해서 시작된 지옥 하라쇼(хорошо́) 훈련.
대략 2시간동안 하라쇼 발음법, 하라쇼 필기법, 하라쇼 활용법, 응용법 등을 배운 학생들이었지만.
“저기... 에리?”
“......”
호노카가 어색하게 웃으며 작은 서류 종이를 바라본다.
러시아어 수업을 취소하고 싶다는 학생들의 빗발치는 항의 때문에 우미와 코토리는 이미 넉 다운.
그나마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호노카의 시선에 에리가 팔짱을 끼고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완벽하게 하라쇼(хорошо́)한 수업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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