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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사무치도록 사랑하면 가슴에 꽃이 핀다.

“갑작스럽지만 독백입니다. 당찬 목소리, 확고한 눈빛, 찰랑거리는 머릿결, 꺾이지 않는 고귀함까지. 그녀를 표현할 단어들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이렇게 사무치도록 사모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미치도록 사무치면 마음속에 꽃이 핀다더니 이미 제 마음속은 그녀라는 꽃밭으로 가득 찼습니다. 매일매일 마주칠 때 마다,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연습 중에 교류할 때마다…. 언제나 미칠 것만 같은 행복감과 불안함을 느낍니다. 이 꿈결 같은 만남이…. 이 행복이, 피었다 이내 사라질 허상처럼 느껴집니다.

 처음 내게 햇살처럼 다가와 단 한 번에 날 녹여버린 당신…. 당신의 모든 것이 좋습니다. 그 중에서도…. 피처럼 붉은 당신의 눈…. 그 눈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흐으으으으읍.”


 “붉은색, 빨간색, 다홍색, 자홍색, 홍색, 요즘에는 외국어까지 써가며 빨간색을 명명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색의 이름으로도 당신의 그 눈을 설명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붉고 붉은 색, 피, 잔인함, 강조, 경고, 성, 적폐, 적대시, 생명, 반역, 부정, 사랑, 명예, 신분격차, 압도, 경외…. 당신의 눈은 내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주입합니다. 그런 것이 제 안에 들어올 때 마다 저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아요. 제 안에 가득히, 넘쳐흐를 만큼 당신에게 사랑을 받는 거 같습니다.”


 “흐으으으읍.”


 “니코, 그렇게 계속 움직이다간 니코의 고운 피부가상할거에요? 아무리 손수건을 대고 밧줄로 묶었다지만 그 얇디얇은 천 뒤엔 강하고 까칠한 밧줄이 존재 한다고요.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요.…. 후훗. 방금 문장은 재미있군요. 부정문이 세 개가 들어가다니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떤 교수가 부정문이 두….“


 “흐으으으으읍!”


 “어머…. 니코…. 지금 우시나요? 저런저런.….”


 우미는 의자에 묶인 채로 눈물을 흘리는 니코에게 다가갔다. 손수건을 꺼내 정성스럽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찍어내는 것은 유화를 그리는 화가의 손놀림 같은 경건함이 느껴졌고 그것이 니코를 더욱 미치게 했다.


 “그래도 걱정 마세요 니코. 당신의 가족들에겐 그저 우리가 잠시 합숙을 나간 것으로 말 했으니까요. 걱정하실 거 하나도 없어요. 봐요.”

눈물로 자꾸 흐려지는 니코의 시야 속에 우미의 스마트폰 화면이 들어왔다. 거기엔 니코의 엄마와 동생들이 합숙 잘 다녀오라고. 니코를 잘 부탁한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넨 메시지 들이 있었다.


 “자, 니코? 조금 진정 되셨나요? 그럼 마저 이을게요.”


 우미는 다시 니코와의 거리를 벌렸다. 희미한 촛불만이 일렁거리는 작은 공간이기에 둘의 거리는 그리 벌어지지 않았다. 우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사랑이 흘러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에게 너무나도 뜨거운, 크나큰 사랑을 주신 니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모합니다. 미치도록 사랑하고 제가 미쳐 감을 인식함으로 더욱더 사랑합니다. 당신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저는 행복하고 단신과 눈을 마주쳤단 이유만으로 저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요. 당신이 제 이름을 불러줌으로 저라는 사람이 오롯이 존재하는 것이 느껴진단 말입니다. 니코…. 아시겠어요?”


 “흐읍.”


 “짧은 것을 보니 부정의 말이겠군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니코, 자, 니코, 지금부터 할 말은 당신이 눈을 뜰 때, 밥을 먹을 때, 물을 마실 때, 제가 씻겨줄 때, 당신이 생리현상을 해결할 때, 잘 때마다 제가 당신에게 해줄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게 당신에게 처음으로 하는 말이니 집중해주세요. 누군가 말했듯이 처음이 힘들지만 한번은 두 번을 부르고 두 번은 세 번을 부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니코는 신음을 흘리기도 잊고 그저 떨고 있었다.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공포, 그저 단순하게 미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미친 것을 인지하고 그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로 자신을 대하는 사람에게 순수하게 공포만 느낄 수 있다면 그 사람도 미친 사람이리라.


 “니코. 사랑합니다. 세상을 우리를 갈라놓을 때 까지,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그녀의 고백을 듣는 순간, 니코는 기절할거 같았다. 기절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순 없었다. 그녀에게 해줘야 할 말이 있기에. 그 말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장날 것만 같았기에.


 “아하. 이런…. 내 정신 좀 봐…. 정작 제가 고백해놓고 당신의 대답을 듣지 못했군요.”


 우미는 천천히 니코에게 다가갔다.


 “자…. 대답해주세요. 제 뮤즈, 저의 신, 저의 주인, 저의 모든 것을 가지실 단 한사람…. 제가 사무치도록 사랑하는 꽃밭, 니코….”


 우미의 양 팔이 천천히 올라갔다.


 “잠깐 아프실 거예요. 좀 쌘 테이프를 붙였거든요. 니코의 입술과 그 주변이 상처 입겠지만 제가 정성스럽게 치료해줄게요. 사람의 침에는 소독과 치유의 기능이 있다고들 하잖아요?”


 니코의 입을 막고 있던 테이프가 천천히 벗겨졌다.


 “흡! 크흑!”


 마침내 입을 틀어막던 장애물이 사라졌다. 니코가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역시 부어올랐군요.…. 니코, 제 고백에 대한 대답은 다음에 듣겠습니다. 지금은 당신의 입을 치유해줘야겠네요. 치료가 끝나거든 대답해주세요.”


 우미의 입이 니코를 향해 갔다. 그러자 니코는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말. 지금 상황에게 벗어날 수 있는 마법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만! 그만 멈춰! 우미! 아무리 촬영이라지만 너무 열중한 거 아냐?! 그리고 너희! 당장 불 키고 이 정신 나간 자식 안 말려? 당장 이거 풀어!!!!”

 

 “크억!”


 니코의 말이 끝나자마 자마 마키가 우미에게 스파인버스터를 날리고 깔아뭉갰다. 에리는 빠르게 방의 불을 켜고 다른 멤버들은 니코에게 달려들었다.


 “미안하데이. 우미쨩이 너무 연기를 잘해서 우리도 무서웠다 아이가.”


 “미…. 미안해 코토리는 너무 무서웠어.”


 “호노카도 저리 끔찍한 결과일지는 몰랐어.”


 “잠깐만요! 왜 저를 그렇게 매도하시는 거죠?!”


 “조용이해! 이 미친년아!”


 “마키?!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그렇게 겁에 질린 멤버들과 여러 가지 감정이 북받쳐 올라 우는 니코, 깔리고 깔아뭉갠 채로 서로를 향해 큰 소리를 내뱉는 우미마키가 장내의 소란을 잠재우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용히 하고 맞아 이 미친년아!”


 “말이 심하다고요! 아야!

 



 “……. 촬영 결과물은 어때?”


 “그게….”


 우미의 양 옆을 마키와 에리가 앉고 니코의 양 옆을 하나요와 코토리가 앉고 다른 멤버들은 두 무리의 중간에 앉은 상태, 어쩐지 피해자 와 가해자의 대질심문과도 같은 인원배치인 상태에서 니코가 촬영 담당이었던 노조미에게 물어 보았다.


 “일단 촬영 자체는 완벽하데이? 그리고 우미쨩…. 이걸 튼다고 나도 감금하고 그러면 안된데이?”


 “안합니다!!!!!!”


 우미의 절규를 뒤로하고 노조미는 촬영물을 벽걸이tv에 연결하였다.


 “조금 돌려서…….”


 [……. 사모합니다.]


 “꺄아아아아ㅏㅏㅡㅡ. 파렴치해요!”


 “조용히 해 범죄자.”


 “마키! 아까부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역시…. 아무리 봐도….”


 “무섭다냐….”


 “다레가 타스케테.”


 “아……. 어쩌다 이런 일이….”


 아홉 가지의 다양한 반응 속에 드디어 영상이 멤버들이 우미를 처단하고 니코를 구출하는 장면으로 넘어갔다.


 “…. 제가 봐도 저는 범죄자였군요. 시각정인 정보뿐만 아니라 머릿속도….”


 우미가 자살기도자의 목소리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했다.


 “그…. 그래도 우미쨩이 연기를 되게 잘했다는 거잖아?”


 “맞아 우미쨩! 우미쨩은 그저 역할에 충실한 거잖아!”


 “저 수많은 대사들은 100%애드립이지만 말이지.”


 “마키쨩!!!”


 “아 알았어, 자제할게.”


 “죽어야…. 칼을 준비해야겠군요.”


 “우미쨩!!!”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간 새벽. 결국 마키는 우미에게 싸늘한 태도를 거둬들였고 뮤즈의 내부규칙엔 선배금지 말고도 비정상적인 촬영 금지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흐으…. 무서워….”


 저녁때의 무서운 체험 때문에 화장실에 가기 두려워하는 니코가 있었다.


 “그래도 이미 복도로 나왔고…. 조금만 더 가면….”


 벌써 문 앞에서 오 분 째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문이 열렸다.


 “어라?”


 “히익?!”


 잠시간의 정적.


 “크흠…. 니코 왜 여기에?”


 “그…. 그게……. 화장실을 가려고.”


 “니코도? 저도입니다. 같이 가실레요?”


 “으…. 응!”


 그렇게 둘은 화장실을 향해 걸었다. 그 얼마 되지도 않는 길이 어색한 침묵 때문에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저기!”


 “니코!”


 둘은 동시에 입을 땟다가, 다시 다물었다.


 “미안해!”


 “죄송합니다!”


 이번에도 동시에 말했으나 서로가 한 말을 알아들었다.


 “저기…. 아무리 연기라지만 너무 심취해서 니코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행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도…. 연기란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너무 무서워서…. 뒷수습 할 때도 도움을 못줬어 미안해…. 아까도 문 열고 나왔을 때 놀라서 미안.”


 “니코….”


 “히익! 다가오지마!”


 “….”


 “….”


 “저기 우미? 발걸음이 너무 빨라졌는데? 우미?”


 둘은 다시 아무런 말없이 화장실로 걸어갔다.


 “저기…. 니코.”


 “왜?”


 “저 촬영한 거 절대로 유출되면 안 됩니다?”


 “당연하지. 유출되는 순간 뮤즈는 끝장난다고. 아. 도착했다 그럼 우미 미안한데 나 먼저 이용할게.”


 “네. 기꺼이.”

 

 니코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 할 때. 문이 거의 다 닫혔을 때.


 탁.


 “에?”


 우미의 손이 문이 닫히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천천히 화장실 문이 열렸다.


 “니코?”


 “히익?!”


 니코가 온 힘을 실어 문을 닫으려 했으나 체격으로도 밀리고 매일 수련하는 우미의 힘에는 비할 수가 없었다. 결국 문이 다 열렸다.


 “제가 그때 했던 말들…. 전부 연기라 생각 하나요?”


 “오…. 오지마!! 꺄ㅑㅑㅑㅑㅏ! 도와줘! 살려줘!”


 우미가 들어오고 문이 닫혔다.


 “기억 안 나세요? 이 별장은 마키가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방음시설이 잘 갖추어져있단 것을.”


 “히이이이익!”


 니코는 바닥에 쓰려졌다.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미치광이가 지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자신의 눈을.


 “정말…. 정말로 예쁜…. 붉은 눈이에요. 니코…. 제 고백에 대한 대답은 다음에 듣겠다고 했죠?”


 “살려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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