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럽갤문학/단편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lovelive&no=8185312&page=1&exception_mode=recommend

[ss번역] 아리사「유키호는 μ's에서 누구 오시야?」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DAYS ARE SHINNING 이렇게 힘낸다면

DAYS ARE SHINNING 반짝하고!


삐삐삐삑. 8시를 알리는 알람. 햇빛이 눈부시다. 의사가 되고 처음 맞는 생일이자 대학교 입학 이후 처음으로 여유롭게 지내는 생일. 오토노키에서 지냈던 마지막 해의 생일은 하나요와 린이 깜짝 파티로 자신을 울렸다는, 다시 생각해보면 부끄러워서 어디로든 숨어들어가고 싶은 생일. 하지만, 절대 잊고 싶지 않은 그런 생일. 그도 대학교 입학 직후니 괜찮았지 곧바로 학부 공부가 시작돼서 몇년간은 그야말로 기계처럼 살았다. 밤 늦게까지 별 의미가 있나 싶을 근육 이름을 외우다 잠이 들고 아침에 허겁지겁 일어나서 아침은 커녕 머리나 간신히 말리고 나가는 일상의 연속. 하나요랑 린 정도야 간간히 만나고 다녔지 다른 뮤즈 멤버들은 라인으로 얘기도 제대로 못 했던 게 몇년이었다. 혼자 돌아가는 길이 그렇게 어색하다는 걸 삼 년 만에 다시 실감했어. 고등학교 때와는 수준이 다른 공부량에 하루이틀 걸러가며 혼나고 웬 모를 기대로 옥상에 올라갔다 담배 냄새에 기겁해 뛰쳐내려온 것도 부지기수. 언제나 활기차게 날 이끌어줬던 호노카와 린. 힘들 때 은근히 어리광부렸던 에리와 우미. 장난에 많이 화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이 웃었던 노조미. 마주보기만 해도 마음 속 곳곳에 녹처럼 낀 슬픔을 녹여줬던 코토리와 하나요. 그리고, 니코짱. 그땐 정말 힘들었다. 혼자라는 게 그렇게 외로웠다니. 전엔 미처 그걸 몰랐어.


그 얼굴을 하나 둘 떠올려보다 그때 얼굴을 한번 보고 싶어졌다. 침대에서 나와 책상 옆에 붙어있는 책장을 본다. 손에 닿는 곳에 있는 전공 서적과 의자를 딛고 올라서야 잡을 수 있는 높은 곳에 있는 졸업앨범. 손에 바랜 책과 소중하게 놔둔 졸업앨범을 번갈아 본다. 졸업앨범을 꺼내려 의자 위에 올라서니 책장 위에 무언가가 눈에 띈다. 창문을 열고 먼지를 털어보니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앨범. 이게 아직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고등학교 졸업앨범도 꺼내 침대에 다시 앉는다. 초등학교 앨범과 중학교 앨범은 볼 게 없었다. 난 그때도 역시 귀여웠지만 단체사진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몇장 안 보고 휙휙 넘기다 보니 어느새 맨 뒷장이었다. 책을 읽은 게 아니라 그냥 얼기설기 묶어 놓은 새하얀 종이들을 넘겨본 것 같았다. 맨 뒷장을 통째로 차지한 '서로에게 메시지를 적어 봅시다!' 페이지도 새하얗게 비어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다시 보니 좋지만은 않았다. 손은 고등학교 졸업앨범으로 움직였다.


새하얀 배경에 수많은 추억들이 가득. 여러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 먼저 나온 동아리 사진은 아이돌 연구부. 아, 내 생일에 찍은 사진이야. 환하게 웃고 있는 나와 따라 웃는 8명의 여신들. 뒤이어 나온 3학년 A반 단체사진. 센터는 나. 몇 장을 넘기면 코이즈미 하나요, 또 몇 장을 넘기면 니시키노 마키, 다시 몇 장을 넘기면 호시조라 린. 모두 예뻤다. 몇십 분이 걸려 도착한 마지막 페이지엔 웬 하얀 롤링페이퍼. 이건 하나요와 린이 몰래 만들어 졸업식에서 날 기어코 울게 만들었던 바로 그 롤링페이퍼. 원래는 하얀 종이 한 장이었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모여서 써넣은 여덟 가지 마음이 담긴 소중한 책.


삐삐삐삑. 아홉 시. 정각을 울리는 탁상시계. 오늘은 아무 약속이 없었다. 간만에 쉬는 날이라 어디 쇼핑이라도 하러 갈까 싶었지만 그러진 않았다. 내일부턴 전공의로서 힘든 일상을 보낼테지만 오늘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오래간만에 머리를 만지고 오래동안 입지 않던 빨간 원피스를 꺼내입고 기다렸다. 어제 어머니가 우연히 린의 어머니를 만났단 얘기를 들으니,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뮤즈의 모두들이라면 어떻게든 알고 날 불러줄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파란 하늘과 새햐안 구름 그리고 새빨간 태양. 휴대폰을 보니 린이 메일을 보냈었다.


"오늘 9시 30분! 역 앞! 간만에 놀자냐! 뭐하고 놀 건지는 비밀이다냐!"


역시. 정말 오랜만에, 정말로 보고 싶었던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가자.


허겁지겁 도착해서 정신이 없을 때 멤버들이 튀어나와 날 놀라게 할 거였다던 린, 그런데 내가 너무 빨리 도착해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는 하나요. 어떻게 알았냐는 멤버들의 말에 기뻐서 만나러 왔다는 내 대답. 모두 의아해하는데 자긴 내가 쓸쓸해해서 만나러 왔다는 니코짱. 정말이지... 그래도, 그런 말을 들어서일까. 왠지 그런 기분이 들어. 아 참, 나가기 전에 롤링페이퍼에 뭘 했는지 알아? 후훗, 내 예쁜 입술로 내 마음을 빨갛게 그려뒀어. "고마워".


하얀 롤링페이퍼는, 어느새 아홉 가지 색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


'럽갤문학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야세 에리, 가장 오래된 팬  (1) 2017.10.05
취중진담  (0) 2017.07.15
리본  (0) 2017.07.15
전통있는 화과자집의 재생  (0) 2017.07.15
니코마키 린파나 영화관 더블데이트  (1) 2017.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