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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니코「전해주지 못할 편지를 쓴다」

※원작하고는 상관없는 패러렐 월드




바깥은 벌써부터 겨울이 찾아오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다.

무성하던 나뭇잎은 진작에 다 떨어져 뼈대만 남아 있었고, 꽃들도 잔뜩 웅크린채로 다시 한번 봄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며 나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눈을 꿈뻑이며 다시 한번 펜을 들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추워지는데 모두들 감기는 걸리지 않았을까.

어디 아프거나 하지는 않을까.

잘 지내고 있을까.

이루고 싶던 꿈들은 이루었을까.

언제나 웃으면서 지내고 있을까.




『잘 지냈었나요, 모두들.

 너희들이 이 편지를 보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제가 죽었다는 거겠죠.

 너희들에게 미리 말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쓰는 것만도 숨이 벅차온다.

손은 이미 자신의 손이 아닌 듯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살짝 나오는 마른 기침을 삼키며, 집안을 둘러본다.




모두의 키를 재고 표시해두었던 벽.

모두와 같이 밥을 먹었던 식탁.

모두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그리고 모두가 자신을 그려준 그림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

10년이 훌쩍 넘게 지났는데도 그렇다.




『너희들을 처음 봤던 그 순간이 생각납니다.

  부모들이 방치해두었던 너희들을 제 집으로 데려왔던 것도 기억납니다.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던 너희들을 웃게 해주려고 별짓을 다 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들어온 기념으로 처음으로 같이 사진을 찍었던 것 마저도 기억납니다.

  지금도 그 사진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너희들은 어색하게 웃고 있었는데 차츰 자연스럽게 웃게 되었습니다.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빠서, 관심이 없어서, 원하던 아이가 아니어서.

이유는 달라도 전부 상처받은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아이들의 선생님이었다.

또한...




『호노카는 원하던 파티쉐가 되었을까요. 당신이 만들어 준 과자의 맛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에리는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했었죠. 지금쯤은 그 꿈을 위해서 대학에 다니고 있겠네요.

  코토리는 디자이너가 꿈이라고 했었네요. 당신의 소식은 얼마 전 뉴스에서 봤답니다. 천재 디자이너라니 굉장하네요.

  우미는 이번에 양궁 대표로 올림픽에 나간다고 했었죠. 선생님은 아마도 우미가 대회에 나가는 모습은 보지 못할테지만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하나요는 아이돌로 데뷔했네요. 선생님도 봤답니다. 유감스럽게도 선생님의 귀는 그리 좋지 않아서 하나요의 노래는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말이죠.

  노조미가 쓴 책은 선생님도 가지고 있습니다. 노조미가 쓴 소설은 제대로 읽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노조미가 썼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답니다.

  린은 정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머리를 기르고 엄청 예뻐져서 말이예요. 그리고 화가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굉장하네요, 린.

  그리고 마키는 결국은 의사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정말이지 마키 답네요. 아니, 마키가 못 된다면 누구도 의사가 되지 못할 것만 같다고 생각해요.』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렇지만 꿈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고독함이라는 것을 맛 보고 살아왔기에 더더욱 그랬을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웃게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된 순간 모두가 떠나갔다.




『선생님은 요즘 들어서 너무나도 아픕니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종종 해주는 전화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미안해요.

  또 그걸 제대로 사과하지도 못 하고 이렇게 가게 되는 것도 미안합니다.




더 이상은 한계다.

떨리던 손은 진정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흐려지는 눈은 더 이상 앞을 구분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조금씩이나마 들려오던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마지막 말을 쓰자.




『너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선생님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다행이었어요.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선생님의 인생에서 한 가지 자랑거리가 있다면 너희를 만난 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랍니다.

  그리고, 이건 선생님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모두들 사이좋게 지내주세요.

  태어난 곳도, 성도 다르지만 자매처럼 가족처럼 그렇게 지내주세요.

  선생님과 지내던 그 시절의 너희들처럼요.

  그것만이 너희들에게 바라는 마지막 소원입니다.』




이걸로 끝인 걸까.

펜을 내려놓으면 되는 것일까.

아니지.

하나를 더 쓰고 싶다.




『고마웠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를 가지지는 못했지만 너희가 있어서 세상의 어떤 어머니들보다도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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