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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니시키노 마키, 제자리걸음

스쿨 아이돌이라 해도 시간의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다.

졸업을 마친 야자와 니코는 대학교 1학년 중 첫 여름방학을 맞이하게 되고조금이라도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메이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왜 굳이 메이드 카페를 골랐냐고 묻는다면니코는 분명 이렇게 답할 것이다.

조금이라도자신이 스쿨 아이돌로 활동하던 그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서.

가게에서 간간히 흘러 나오는 스쿨 아이돌 노래를 들으며니코는 과거 뮤즈의 이름으로 활동했던 스쿨 아이돌의 노래가 나올 때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그렇게 한참 아르바이트를 하던 와중이었다.

 

어서오세요주인님...”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에게 무의식적으로 영업식 멘트를 날리는 니코.

그러나 도중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마키...”

 

대략 반년만에 만나는 니시키노 마키가 니코의 눈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2학년을 상징하는 다른 색의 리본을 걸친 교복을 입은 채 마키가 아무런 말 없이 테이블 하나를 차지한다.

그러자 니코가 자연스럽게 물과 메뉴판을 가져가며 말한다.

 

오랜만인데아무런 말도 없네?”

“......”

혹시 내가 보고 싶어서 찾아왔...”

“...그렇다고 한다면.”

 

마키의 직설적인 속마음에 순간 니코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반년동안 연락이 전혀 안 된 것은 아니다.

연락을 주고 받았긴 했지만실질적으로 직접 대면하는 건 반년만이다.

니코도 대학생활이라든지 아르바이트로 바빴고마키도 뮤즈 말고 새로운 스쿨 아이돌 유닛을 꾸리는 와중이었기 때문에 상호간에 직접 만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서로가 서로 바쁜 생활을 인지하고 있기에 굳이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마키가 직접 니코가 일하는 장소로 찾아온 것이다.

 

정말~”

 

한숨을 나지막이 내쉰 니코가 카운터에게 살짝 눈빛을 보내자카운터에서 일하고 있던 메이드 한 명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무언의 허락을 받은 니코가 마키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는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보이네.”

“......”

잘 안 풀리는 일이라도?”

 

마키는 본래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니코가 보고 싶어 왔다고 직설적으로 말한 탓에 니코 본인도 조금 놀라고 말았다.

 

...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걸까.”

 

마키가 힘겹게 첫마디를 뗀다.

 

어째서돈으로 살 수 있다면 사고 싶을 정도인데... 어째서 다시 돌릴 수 없어난 뮤즈의 멤버로서 있고 싶은데!”

“......”

니코도 충분히 그러고 싶을 거야그때의 우리들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잖아!!”

“......”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목소리를 높이는 그녀의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한다.

시간은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그녀들은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밀려 서서히 어른이 되어간다.

그리고.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게 마련이다.

 

난 뮤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니코의 말에 마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린다.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은 탓인지마키가 매섭게 니코를 노려본다.

 

무슨... 뜻이야?”

그 시절이 그립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 없어.”

무슨 소리냐니까!!”

잘 들어마키너도 언젠가는 오토노키자카를 졸업하게 될 때가 올 거야그럼 분명 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곁을 떠날 때가 되겠지.하지만 네가 말했듯이시간은 절대로 거스를 수 없어그렇다면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그게네가 남겨진 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니까.”

“......”

과거에 얽매이지 마네가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야.”

 

니코는 과거아이돌 연구부 부장이기도 했다.

호노카와 만나기 전까진혼자서 과거의 아이돌 연구부에 사로잡혀 아무도 함께 스쿨 아이돌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뮤즈를 만나고 나서니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

 

니코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어...”

너는 지금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구나.”

 

자신과 똑같은 갈등을 품고 있는 마키의 손을 살짝 잡아준다.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건 스스로 마키가 마음의 문을 여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때로 되돌아갈 수 없다면자신이 있어야할 새로운 장소를 찾으면 되는 거야.”

“......”

너라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어. ”

 

진심을 담아 마키의 손을 잡아준다.

니코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마키에게 자신과 같이 똑같은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니코가 마키의 등을 떠밀어줘야 한다.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공주님의 등을 살짝 밀어주는 것만으로도충분히 용기가 생겨나니까.

 

내가 있어야할 장소에... 니코도 있었으면 좋겠어.”

 

마키가 용기를 내어 니코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새빨개진 얼굴로 보아서는분명 용기를 내어 말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어찌보면 새침떼기 공주님의 용기 있는 첫 발걸음일수도 있다.

그 용기에 니코는 작은 보상을 주고 싶었다.

 

물론.”

 

뮤즈를 떠나고 나서 지금까지 남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는 진실된 미소.

그 미소 하나만으로도 마키에게는 충분한 동기가 부여되었다.

 

 

 

2년 뒤.

여전히 같은 메이드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니코는 이제 베테랑이 된 자신을 칭찬하며 오늘도 역시 뮤즈의 노래를 튼다.

손님들 역시도 스쿨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니아라면 충분히 기억하고 있는 뮤즈의 옛 노래를 떠올리며 자주 니코에게 그때 당시의 일을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많았다.

그게 기쁜 탓인지니코는 좀처럼 이 아르바이트를 관둘 수가 없었다.

아니그게 아르바이트를 관둘 수 없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아직맞이하지 않은 손님이 한 명 있었으니까.

 

-딸랑.

 

작은 방울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리는 가게의 문.

그 문을 바라보던 니코가 이윽고 처음에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이내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어서와.”

 

니코의 말을 들은 붉은 머리의 소녀... 아니이제는 엄연히 니코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의 1학년 신입생이 된 아가씨니시키노 마키가 마주 미소 지어주며 대답한다.

 

다녀왔어니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