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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어쩌면 애절할 그날의 생일이야기


* [어쩌면 애틋할 그날의 생일이야기]의 후편입니다.

본편을 먼저 감상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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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대하고 기대하던 제 생일입니다!

하늘도 제 생일을 축하하는 듯, 비가 펑펑 내리네요.


하지만 지금은 궁도부의 대회 준비가 한창이므로,

이른 아침부터 평소보다 조금 멀리 있는 과녁에 활시위를 당겨봅니다.

숨을 가다듬고 가볍게 손을 놓으면,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정중앙에 꽂히는 화살.


왠지 오늘은 좋은 예감이 드는군요.


사실 이 아침 연습은 원래 방과 후에 있었던 일정이지만, 그 때에는 다른 부실로 찾아가야 하니까요.

바로 아이돌연구부입니다.


분명 작년 누군가의 생일이 찾아오는 날, 모두 본인 몰래 생일 파티를 꾸몄었으니,

이번에도 확실히 무언가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오늘 등교 때부터 호노카는 말을 심하게 버벅거리면서 어색하게 행동했고,

지금 부실의 문 밖에서는 린이 머리를 살짝 내놓고서는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습니다.

아마 눈치 채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겠죠.


제 옆에 놓인 전신 거울에 비친 린의 빠릿빠릿한 눈동자가 선명합니다.

도대체 왜 몰래 감시하는 걸까요? 저라면 그냥 들어와서 구경한다고 했을 겁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저는 역시 눈치 채지 못한 척 태평하게 활시위를 당깁니다.

이번엔 정중앙에서 조금 빗나갔습니다.




한 번, 두 번. 



팍, 팍. 시원한 소리.




음, 좋아요.



점점 더 명확하게, 중앙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린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낄 겁니다.

이러다간 눈치 챘다는 것을 들키고 말겠어요.


조금 불안해져서, 한숨을 쉬는 척 하면서 뒤를 돌아봅니다.

오렌지색 잔상이 아래로 빠르게 움직이더니, 이내 문에서 덜컹, 하는 소리가 자그맣게 났습니다.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면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였으므로,

저는 그대로 걸어가 자연스럽게 화살을 몇 개 집어왔습니다.


역시 린은 대단합니다. 전혀 이상한 걸 못 느낀 것 같군요. 다시 목을 치켜세우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안심하고 아침연습을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는 또 다시 활시위를 당깁니다.

그렇게 아홉 번째 쏜 화살은, 과녁이 아닌 땅바닥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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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정말로, 저를 위한 생일 파티를 몰래 준비해놨다고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한번 당해본 상태이니,

코토리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저를 이리 저리 데리고 다니는 것도,

‘아직 파티의 준비가 전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몸으로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너무 티나지 않나요? 이런 건 코토리 답지 못합니다.

벌써 화장실만 5번 갔다 왔다고요.


결국, 학교 전체를 둘러보게 된 코토리는 스마트폰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매우 곤란한 얼굴로 제게 말했습니다.

  


“있잖아, 마지막으로 우미쨩이 궁도 연습하는 거 보여줄 수 있을까?”


“음……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에? 뭐가?”


아차. 무의식적으로 뭔가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해버렸습니다.

눈치가 빠른 코토리는 손에 있던 스마트폰을 꽉 쥐고선, 크게 놀란 표정으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동그란 눈동자가 부담스럽게 이쪽을 향합니다.


하루 종일 제가 했던 노력들이 모두 물거품이 된 것이군요.

호노카였다면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코토리는 바보가 아니니 넘어갈 수도 없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네요. 얼버무리는 건 포기하겠습니다.



“그도 그럴게, 작년도 다 같이 축하해 줬잖습니까. 다만, 이번에는 5명이겠네요.”


“역시 알고 있었구나……. 아니야. 이제 곧 도착한다고 하는걸?”


“세분 다 바쁠 텐데 고생이네요. 저 하나 때문에…….”


“아냐 아냐, 다들 시간이 남아서 오는 거라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코토리는 방긋 웃으며 앞장서서 궁도부실로 향했습니다.

어차피 저 역시 알고 있었다는 것을 들통 났으니 그냥 궁도 대회 연습도 할 겸,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솔직히 부담스러우니 세 분 다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에리, 에리는 더 더욱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학교를 떠나기 전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있을 수 있었지만,  

이렇게 불쑥 찾아와버리면 아직도 정리하지 못한 제 마음을 들켜버릴 것 같으니까요.


『 우미. 사실 나도 너를 좋아했어.

네가 조금만 더 빨리 고백했다면. 』


일부러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어도 괜찮았는데 말이죠.

에리의 그 한마디 덕분에, 제가 아직까지 되도 않는 희망을 가지고 있잖습니까.


당신의 시선은 아직도 노조미를 향해있겠죠.

저 역시, 매일 바라볼 수 없는 당신에게 시선이 향해있습니다. 

이걸 알게 되신다면 당신은 분명 조금 버거워 하실 텐데 말이에요.


혹시나 제 마음을 들킬까 조금은 두렵습니다.

하지만, 에리를 포함한 그 세 분은 제가 오지 말라고 해도 오실 분들이니까요.


그런데 조금 전부터 코토리가 제 얼굴을 너무나도 빤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뭐라도 묻은 것처럼,

한 부분만을 계속 응시하며 빙긋 웃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신경 쓰이네요.

결국 혼자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녀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코토리, 아까부터 왜 그렇게 쳐다보시는 거죠?”


“앗, 그게 말이지. 우미쨩 머리에 먼지 붙어있어.”



겨우 먼지 하나 때문에 그렇게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본 것인가요?

물론 저라도 엄청 신경 쓰일 것 같긴 합니다만, 이런 건 미리미리 말해달라고요.


저는 손으로 머리를 이리저리 쓰다듬어 보지만,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었습니다.

의외로 앞머리에 붙어있는 걸까요? 앞머리를 아무리 만져봐도 손에는 제 머리카락의 감촉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으음, 어디죠? 떼어주시겠어요?”


“응. 이것 봐? 하얀색이라 비듬인줄 알았어. 우미쨩 의외로 잘 안 씻을 것 같은 이미지니까?”


“저, 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목욕합니다! 알고 있잖아요!”



설마 정말로 안 씻는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겠죠?

코토리는 미소 지으며 조용히 제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정말, 은근히 사람 놀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니까요.


몇 분이 지났을까요.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궁도부실의 문 앞에 도착해있었습니다.


「아아아아악! 또 빗나갔어!」


열심히 연습하는 학생들의 처절한 이야기 소리가 빗소리와 어우러져 아름답게 들립니다.

곧 있으면 연습시간이 끝나갈텐데도, 저렇게 열정적인 모습은 정말로 보기 좋죠!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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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되어있던 궁도부의 방과후 연습이 끝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하지만 부실의 모든 부원들, 여기에 코토리도 포함해서 이 모든 사람이 오로지 저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이곳이 대회장인 것 마냥 식은땀이 흐르고, 괜히 손끝이 떨려 긴장됩니다.


생일 파티에 늦지 않기 위해 아침에 미리 와서 연습했건만

결국은 이렇게 또 마지막에 남아 연습하는 꼴이 되어버렸군요.


고요한 바람소리만이 들려오는 가운데, 저는 침을 꿀꺽 한번 삼키고 활시위를 놓습니다.



슉,


      팍.



활을 떠난 화살은, 바람을 가르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과녁에 꽂힙니다.

정확히 중앙을 가리키는 화살촉은 제 모든 노력의 결실입니다.


3학년이 된 저는 이제 뮤즈의 일원이 아닌,

아이돌연구부의 평범한 부원이자 오토노키자카 궁도부의 부장입니다.

그러니 이정도도 하지 못한다면 그건 또 이상한 것이겠죠.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매번 기계처럼 딱딱 중앙에 맞힐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게 된다면 저는 이미 국가대표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또 한번, 이번에는 주저하지 않고 빠르게 준비해서 쏩니다.

똑같이 가운데를 조준했지만, 영화처럼 첫 번째 화살을 갈라서 멋지게 꽂히지는 않고 

조금 옆으로 삐져나갔습니다. 


그래도, 이정도면 정말 좋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니, 모두가 저를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역시 부장! 상금으로 회식하는 미래가 훤히 보여!”


“나는 며칠 전에 오픈한 사이드바 무료인 고깃집이 좋아!”


“응, 역시 우미쨩은 멋지구나~” 



매번 들려오는 칭찬공세지만, 여기에 박수치는 코토리가 합세하니 조금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일절 부끄러운 내색은 하지 않습니다. 부장의 위엄을 지켜야 하니까요.



“그럼 부장, 우리는 먼저 갈게. 둘이서 좋은 시간 보내!” 



부원 분들이 전부 가버린 뒤, 부실에는 저와 코토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때, 코토리의 조용하던 스마트폰에서 진동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문자메시지였습니다. 



“누군가요?”


“으응, 준비는 다 됐는데 에리쨩이 바로 앞에서 차가 막힌다네.

계속 멈추면 그냥 내려서 걸어온다고는 하는데, 어떻게 할래? 기다릴래?”


“음. 기다립시다. 이왕이면 전부 모여 있는걸 보고 싶은걸요.”


“……그럼 기다리는게 좋을 것 같다고 보낼게?”



아아, 하필이면 제일 중요한 인물이 늦는군요.

그녀가 늦으면 늦을수록, 혹시 무슨 일이 생겨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됩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요. 너무 비극적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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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코토리도 제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으니, 마저 하던 고민을 계속 할까요.


그 날의 바로 전 날, 그녀의 생일 바로 전 날. 저는 노조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에리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째서 노조미냐 하면, 아마 그녀와 연인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이미 연인이 있는 자에게 고백을 한다는 것은,

당사자나 그 연인에게는 큰 실례이자 매우 불편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에리를 좋아하는걸요.


노조미에게 가벼운 인사와 함께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진지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분명 제가 다음 날 에리에게 고백을 한다고 전한다면, 매우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노조미는 목소리에서부터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함께, 담담한 반응을 보여줬습니다.


『 혹시 에리가 제 고백을 받아버린다면 어떻게 하실 거죠? 』


『 으음, 그 아가 받아 준다면 어쩔 수 없구마. 』


정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에리가 고백을 받아주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제가 고백하지 않을 거라 얕잡아 봤던 걸까요.


그렇게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뒤, 길지 않은 통화가 끝이 났습니다.


그 때의 저는 조금 바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상대가 있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것이 큰 실례라고는 해도,

어째서 직접 전화까지 해서 알려준 것일까요.


말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텐데 말이에요.



“……저기? 듣고 있어?”


“앗, 죄송합니다 코토리.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뭐라고 말씀하셨죠?”



이런, 너무 생각을 오래 했나봅니다. 코토리의 말을 무시할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죠.

혹시 길고 중요한 이야기였다면 한 번 더 사과해야겠습니다.



“으응……아직도 에리쨩 좋아하냐고 했어.”



아, 네. 그런 셈이죠.

그런데 이건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저 뿐입니다.

제 마음 속에서는 아직도 에리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저 밖에 없다고요.


이젠 코토리까지 합해서 두 명이네요.


당신은 어떻게 제 마음을 알고 계신거죠?

당황해서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거죠?


혹시 제가 방금 무의식적으로 말한걸까요? 가장 가능성 높은 건 이것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입으로 말해버리는 바보 같은 사람이 아닌걸요.



“아, 아니……. 그게……. 무슨…….”



생각하기도 전에 입술이 먼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세상은 자기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별로 그걸 느끼고 싶지 않았는걸요.



“역시, 좋아하는구나.”



아차, 생각하는 것을 그만 얼굴로 말해버렸습니다.

저는 그냥 바보에요. 눈치 빠른 코토리에게 들켜버린다면 숨길 수 없게 되는걸 알면서도,

이런 큰 실수를 두 번이나 하다니……. 





코토리는 잠깐동안 저를 가만히 바라봤습니다.


아무 말 없이 빙긋 웃는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무서웠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그 시선에서, 저는 조금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어째서죠?


이번엔 어째서 저를 그렇게 바라보는 거죠?




아.



그렇군요.



코토리는 저와 단 둘이 있을 때, 항상 저 미소를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별로 느껴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요.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 당연한 걸 수도 있지요.


네. 이제야 알 수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의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숨기는 억지 미소.


이것은 제가 에리에게 자주 지었던 미소입니다.


그러니 불안함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미소의 결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코토리의 입술은 서서히 열리고,


































“코토리는 우미쨩을 좋아하니까, 그 정도는 알 수 있는걸.”












저는 진실을 마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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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문의 손잡이를 돌리고, 천천히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정말 놀랄 만큼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폭죽소리와 함께

모든 분들이 입을 맞춰, 예상하던 그 소리를 힘껏 질렀습니다.



“우미쨩! 생일 축하해!”


“와앗-! 뭔가요-?!”



예상했던 풍경이지만, 우선 놀라는 척을 해봅니다.

모두 저를 놀래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겠죠.


한번으로 놀래는 건 끝났나 싶어서 조금 안심했습니다만,

다들 주머니에서 폭죽을 몇 개씩 꺼내더니 또 한 번 폭죽을 터뜨렸습니다.



“우와앗?!”



놀라는 척으로 끝내려했던 저를 진짜로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호노카의 뒤늦은 와~이! 소리도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정신을 바로잡고 부실의 책상을 보니, 커다란 생크림 케이크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아- 저게 바로 저를 위해서 준비한 케이크군요.


린과 노조미는 재빨리 전등을 끄고 커튼을 친 뒤, 성냥으로 촛불을 켰습니다.

코토리는 제 어깨를 툭툭 치고 슬며시 미소 지었습니다.


또 그 미소입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분명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때, 저를 좋아한다는 말에 도저히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에리가 도착했다는 문자메시지가 오지 않았다면, 저는 거기서 무슨 대답을 했을까요?


코토리는 제가 에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네.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것 입니다. 저도 압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생각보다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죄송합니다. 저는 정말로 아직도……


당신을 좋아할 용기가 없어요.










……코토리는 항상 니코가 앉던 책상의 가운데 자리에 저를 안내했습니다.


제가 자리에 앉자마자 머리엔 반짝거리는 금색 털이 잔뜩 달린 고깔모자가 씌워졌습니다.

금세 정전기가 일어나서 머리가 이리저리 날라 다니네요.


이어서, 모든 분들이 자리에 착석하고 일제히 생일 축하 노래를 부릅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우미쨩…











생일 축하 합니다……♬










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머리가 조금 어질어질 해질 정도로 온 숨을 모아

그 많은 촛불을 한꺼번에 꺼버렸습니다.



모든 분들이 기쁘게 웃고 박수를 치는 도중, 노조미와 린이 급하게 일어나 불을 키고 커튼을 올렸습니다.



어째서 저 둘이 저렇게 분주한 걸까요? Lily White라고 챙겨주는걸까요?



아니면 노조미가 뭔가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아까 코토리와 제가 하는 대화를 엿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린은……역시 평소와도 같이 별 생각 없어 보입니다.



“우미우미우~ 생일 축하해우미! 선물은 바로 이 니.코.야 우미♡

오늘은 특별히 니코니-를 마음대로 이러쿵 저러쿵☆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도 괜찮습우미!”


“니코쨩은 치사하다냐!

돈이 없어서 생일 선물을 못 산거면 제대로 사과하라냐-!”


“야! 그런 거 말하지마라우미!

우리 애들 준비물 값이 어마어마하단 말입우미……. 우미, 죄송합우미…….” 


“니코쨩, 안 줄 거면 비켜. 나는 지금 줘야 하는 거니까.”



마키는 니코를 옆으로 밀쳐내고 두 손으로 들 수 있는 꽤 커다란 상자를 제게 내밀었습니다.

그리고선 얼굴을 잔뜩 붉히며 제게 말하였습니다.



“……이거. 호노카네 집에서 같이 만든 쌀만쥬야.

원래 먹을 건주지 않으려고 했거든. 그런데 우미한테는 도무지 뭘 줘야할지 모르겠어서…….”


“우미쨩 이거 말이지, 재료는 전~부 마키쨩이 사가지고 온 거야?”



의외로 마키는 평범하게 호노카와 만쥬를 만들어가지고 왔네요.

늘 그렇듯 분명 엄청 비싼 무언가를 사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호노카는 그렇다 쳐도, 마키가 만든 만쥬는 과연 무슨 맛일까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여기 들어간 쌀 말이야? 무려 1kg당 △△엔이나 하는 거더라구…….

호노카, 만들면서 손가락이 떨렸어…….”


“네?! 그, 그런 걸로 만쥬를 만든 건가요? 먹기 좀 불편한 가격이네요…….”


“뭐, 뭐야! 안 먹을 거면 도로 가져갈 거야!”


“아뇨! 먹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흥…….”



△☆엔 이라니……어떻게 그런 가격대의 쌀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요?

제가 살면서 봤던 가장 비싼 쌀도 △🌕엔 이었는데 말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마키. 기록을 갱신하셨네요.

먹으면서 혀가 덜덜 떨릴 것 같아요.



이어서, 한분씩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나 저에게 선물을 하나씩 주셨습니다.


린은 자신이 많이 다닌다는 라면가게의 세 달 무제한 이용권.


노조미는 마시면 행운이 오른다는 정체불명의 럭키 탄산수를 주셨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탄산이 아닌 그냥 음료수였습니다. 역시 노조미군요.



……이렇게 가다간 전부 먹을 것을 받아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럽네요.

마지막까지 선물을 주시지 않은 분은 니코와 에리입니다만, 

니코는…뭐, 받은 걸로 치겠습니다. 


노조미는 이제 에리의 차례라며 에리를 잔뜩 부추겼지만, 자기는 나중에 줄 거라며 쑥스러워 하셨습니다.

에리의 저런 모습은 조금 귀여울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마지막까지 그녀에게서 선물을 받지 못한 채로 생일파티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해산. 호노카는 나머지 학생회 일을 하러 가셔야 하고, 니코는 동생들에게 저녁밥을 챙겨주시기 위해,

린과 하나요는 무슨 이유인지 끝나자마자 바로 어디론가 뛰어가셨습니다.


아아, 같이 잔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만……. 역시, 두 분 다 여전히 사이가 좋다니까요.









그렇게 부실에는 저와 에리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코토리가 끝까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기 때문에,

뭔가 꾸미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측이 되는군요.


에리는 등 뒤의 무언가를 계속 숨기며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도대체 저것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둘만 남았는데도 주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 걸까요?


이게 아니죠.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 때’와 너무나도 비슷한 풍경이거든요.


하지만 모든 이야기의 결말이 완벽히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것은 앞으로 저에게 들이닥칠 상황을 예고할 뿐인 복선일 테니까요.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에리의 등 뒤에서는 커다란 꽃다발이 슬며시 머리를 내밉니다.


꽃잎은 하나같이 전부 푸르고 시원한 색상.

조금 흔들린 것만으로도 퍼지는 싱그러운 향기가 제 코를 자극합니다.

어째서 꽃다발인걸까요? 이렇게 된다면, 마치 ‘그 날’을 재현하려 하시는 것 같잖아요.


일부러 인가요? 당신은 코토리와 무슨 대화를 나누신 건가요?



“이거, 우미가 그 때 줬던 꽃다발이랑 똑같은 구성이야. 이쁘지?

꽤 인상 깊었거든. 한번 그대로 주문해봤어. 후후.”



제발 그렇게 웃지 마세요. 아직도 저는 그 미소만으로 심장이 빠르게 뛴단 말입니다.

당신이 떠나고 조금은 약해진 마음이, 다시 강하게 저를 끌어내리려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당신을 좋아하게 만들지 마세요. 저는 당신을 좋아해선 안됩니다.



“……당신은 코토리와 무슨 관계인겁니까?”


“글쎄? 우미가 어떻게 하면 나를 안 좋아할까 싶어서.”


“제가 코토리를 좋아하게 만들려는 속셈이죠? 전부 알고 계신 건가요?”


“맞아. 역시 우미네.”



무의미한 행동일 뿐입니다.

이때까지 코토리가 저를 좋아한다는 것을 단 한번이라도, 조금이나마 알아채게 행동하셨다면.

그렇다면 저 역시 그 분을 좋아하게 되었을 지도 모르지요.


여태껏 코토리에게서는 연애감정이란 것을 전혀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분도 일부러, 저를 위해서 그렇게 행동하셨을 겁니다.

저를 좋아하니까요.


하지만 이제 와서 이런 짓을 해봤자, 제 마음은 이미 에리에게 고정되어있는걸요.

이것은 그 어떤 누군가도 대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바뀌지 않을 겁니다.



“……아무 감정 없는 사람이랑 어떻게 연애를 하나요.”


“글쎄, 혹시 모르잖니.”



정말이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대답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네요.


에리를 처음 봤을 때부터, 저는 그녀와 조금 닮은 것 같다 생각했지만,

역시 그녀는 노조미와 훨씬 더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처음에는 노조미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부분보다, 닮은 부분이 더 많아지게 된 것은 과연 언제부터였을까요?


아마 앞으로도 노조미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에리는 점점 더 그녀를 닮아갈 겁니다.

이렇게 된다면 몇 년 뒤에는 저와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겠군요.


정말 싫습니다.

에리와 조금 더 가까이 있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요. 그녀보다 훨씬 늦게 태어난 제가

정말로 원망스럽습니다.


오늘은 왜인지 일이 잘 풀릴 것 같더만, 전부 제 헛된 희망이었을 뿐이네요.


허나 즐거운 생일이 이런 결말로 마무리 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조금 더, 조금이라도 더 에리와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싶어요.



“우미, 네가 정말로 날 좋아한다면 내 부탁쯤은 쉽게 들어줄 수 있겠지?”



역시 이런 어린 애 같은 말을 꺼내는군요.

만약 제가 호노카였다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겠죠?


지금은 정말로 호노카가 부럽습니다.

저도 눈치가 없어져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제 예상이 틀리길 빌어요. 빗나간 적은 별로 없지만 말입니다.



“코토리는 모르니까, 안심하고 대충 둘러대도 돼.”


“……네.”


“이 꽃다발, 받아줄래?”


“네.”



떨리는 손으로 겨우 꽃다발을 받아들고, 차마 에리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돌려 살짝 열려있는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어느새 내리던 비가 말끔하게 그쳐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하늘은 저를 축하해주지 않습니다.



에리, 어째서죠?

제 생일은 매년마다 오지만,

당신과 이렇게 이야기하는 순간은 오늘이 아니면 앞으로 영영 없을 겁니다.


어째서죠?


그래요. 아쉬운 건 오로지 저 하나뿐이겠죠.

당신의 마음에 제가 들어갈 장소는,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어째서죠?


결국 이런 결말인가요?

당신은 이 이야기를 이렇게 엉망으로 끝낼 셈인가요?


그래요.


그게 당신의 뜻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죠.
































저는 당신을 좋아하니까요.

































≫-‘ / ,→




















후우, 역시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것은 조금 긴장되네요.

그녀가 과연 제 마음을 받아줄까요?


이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어요! 

항상 긍정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 용기 있게 말해봅시다.


제 고백이라면, 분명 받아 줄 것이니까요!
















“……사실 화이트데이에 맞춰서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저 말고 다른 분들도 사탕꽃을 주니까 조금 지, 질투……가…….


여, 역시 좀 부끄럽네요…….”




“응, 멋대로 오해해서 미안해…이럴거면 과자가 아니라 다른걸 준비했을텐데…….”





“제, 제 생일에는 군것질거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생일선물을 달라고요. 무…무슨 소리인지는, 자, 잘 아시잖습니까…….” 





“응. 물론이야. 꽃다발이 정말로 이쁘네, 뭔가 우미쨩같아.”







그 꽃다발은 당연히 저를 닮았을 수밖에 없습니다.

푸른 장미부터, 하늘색 아네모네까지.


전부 제 이미지 컬러인 푸른색 꽃들만 모아서 만든 것이니까요.






“…이, 일부러 입니다. 그건 저를 함께……가져가 달라는 의미…니까요…….”







그러니까. 가져가주세요, 코토리.





제발요.





그 꽃다발과 함께, 제 마음을 가져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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