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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연애실격




밤을 무서워했다.

밤이라는 것을 싫어했다.

밤이라는 것이 오지 않기를 바랬었다.

그렇지만 그런 바램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괴로웠다.

적어도 이런 감정이라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어이쿠, 처음보는 나으리로군요」

「음」

「어쩐 일로...아니, 이런 곳에 오신 분한테 물어보는 것도 실례군요. 어떤 남자가 좋으십니까?」

「남자여야만 하는 건가, 여자는 없나?」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만. 설마 그쪽 취향이...히이익!」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요! 그러니깐 제발 칼은 치워주십쇼!」

「흥」




벌벌 떨어대는 주인에게 대충 아무 여자나 넣어달라고 말을 던지고 안내 받은 방에 들어간다.

어째서 자신은 이런 곳까지 온 것일까.

평소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을, 오히려 혐오하고 있었던 이런 곳에.




「소, 손님. 들어가겠습니다요」




밖에서 들려오는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창가에 걸터 앉아 달을 한번 바라보고,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본다.

부드럽고 아름답게 내리쬐는 달빛을 나는 어째서 이렇게도 끔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그리고 그러면서도 어째서 보는 것을 그만두지 못 하는 걸까.




「야자와 니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아. 그렇게 굳어 있을 건 없어. 편하게 있어도 돼」

「그런 것은 할 수 없...」

「명령이야」

「...그렇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야자와 니코라고 자신을 소개한 눈 앞의 여자를 바라본다.

자신도 어리긴 하지만 이 여자는 그런 자신보다도 어리게 생겼다.

그리고 저 홍보석과도 같은 붉은 눈...특이하네.




「야자와 니코라는 이름은 본명인건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걸 왜 물으시는지」

「그냥, 이런 곳에서 일하는 자들은 가명을 쓴다고 들었기에 물어본 것 뿐이야. 역시나 가짜였군」

「그게 규칙이니까요」

「별 규칙도 다 있네」

「손님은 무가의 인물이시지요? 무가에도 무가의 규칙이 있듯이, 저희에게도 저희의 규칙이 있습니다」

「과연, 한방 먹었다」




이 여자, 보기보다 제법이군.

생김새로만 봐서는 겁을 먹고 벌벌 떨 것 같이 생겨서는 은근슬쩍 할 말을 다 한다.

포주 녀석도 제법 좋은 선택을 해줬군.

우연이긴 하겠지만.




「그러면 손님, 슬슬 시중을 들도록 하겠습니다. 손님같은 분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기에 부족함이 많겠지만 이해해주시길」

「나 같은 분이라면 여자를 말 하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그럼, 남자를 상대한 경험은 많은 건가?」

「글쎄요, 그런 것을 말하지 않는 것도 규칙에 포함되어 있어서」

「명령이라고 해도?」

「어떻게든 힘으로 듣겠다면 저로써는 어찌 할 도리가 없습니다만」

「아니, 됐어. 그런 멋 없는 짓을 할 수는 없지」




그런 짓을 하면 이 여자한테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테니깐.

어째서 이런 하찮은 여자한테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보다 시중을...」

「아니, 들지 않아도 돼. 나도 그런 취향은 없고, 그저 얘기를 할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니깐」

「얘기입니까, 손님도 특이하시네요」

「이런 곳에서 그런 소리를 들을 줄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소리인데」

「실례가 된 걸까요」

「전혀, 오히려 신선해서 좋네」



가볍게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그녀도 이내 따라서 쿡 하고 웃는다.

어찌 된 걸까, 이 여자랑 있는 게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야자와 니코가 본명이 아니라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름으로 통하고 있겠지」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그럼 다음에도 널 지명해도 될까」

「상관은 없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금방일거다」



별 볼일 없는 여자지만, 재미있는 여자다.

그렇기에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그 날 이후로 몇번이고 그 가게를 찾아가 그 여자를 지명했다.

몸을 탐하지도, 입술을 맞대지도 않고 그저 얘기를 하기 위해서.



「그러고보니 너는 어떻게 이런 곳에 오게 된 거지」

「흔한 얘기입니다. 어디에나 있을 법 한, 굳이 들을 가치도 없는」

「아니, 아무리 흔한 얘기더라도 네 입으로 듣고 싶어」

「별 거 아닙니다. 그저 부모님이 빚을 지셨고 딸인 제가 그 빚을 갚기 위해 팔려왔을 뿐인 그런 얘기입니다」




흔한 얘기인가.

아니, 나한테는 아니지만, 이 여자한테는 흔한 얘기겠지.

돈으로 사람을 사고 판다.

그런 것을 겪으면서 이 여자는 살아가고 있고, 그런 것이 있기에 내가 지금 이렇게 이 여자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겠지. 



「혹시 말이야」

「예?」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금방 포기했습니다」

「어째서지?」

「제가 도망치면 제 가족들이 해를 당하게 될 테니까요」

「널 팔아치운 부모인데도 지키고 싶다는 건가?」

「아니요, 부모님들은 걱정 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직도 어린 제 동생들이 어떤 꼴을 겪을 지 뻔히 알기에 도망칠 수 없는 겁니다. 저는 아직도 빚을 다 갚지 못했으니까요. 제가 도망치거나 하면 제 동생들이 저와 같은 꼴을 겪게 되겠지요」




이 여자는 정말이지.

한치도 방심할 수 없군.

거진 다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더더욱 알고 싶다.

과연 이 여자의 내면에는 아직도 뭐가 숨어 있을까.




「그러고보니깐 그렇지, 너한테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다」

「무엇입니까」

「노래를 불러줄 수 있겠나」

「노래입니까...저는 노래를 파는 가기(歌妓)가 아니기에 잘 부르지 못합니다만」

「잘 부르지 못해도 상관없어, 그저 너의 노래를 듣고 싶다」

「그렇습니까...그렇다면 준비를 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악기를 가져 올 셈인가, 그런 거라면 필요없다. 그저 너의 목소리만 있으면 돼」

「손님은 정말로 특이하시군요」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는 건 너 뿐이야」




그럼 하고 흠흠 목을 가다듬는 그녀의 입에서 노래소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눈을 감는다.

딱히 눈을 감고 들어야 노래가 더 잘 들린다는 말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째서인지 이러고 싶었다.

어쩌면 밖에서 내리쬐는 달빛이 마음을 흔든 것일 지도 모른다.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그러면 널 붙잡을 수 있을텐데」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며,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당신이 붙잡아 주시지 않더라도 난 머무를 겁니다」

「손님도 아시는군요」

「흠, 유명한 노래이니깐. 그것보다 네 말대로 정말로 노래를 잘 하지는 못 하는군」

「못하는 걸 못 한다고 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니까요, 오히려 못 하는 걸 잘 한다고 속이는 게 부끄러운 짓이겠죠」

「그건 그렇지」

「그것보다 손님은 노래를 잘 하시는군요, 어지간한 기녀들보다도 더...아, 이런 발언은 실례가 되겠군요. 죄송합니다」

「아니, 됐어. 사과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앞에서 노래를 해본 건 처음이라서 나름 즐거웠다」

「그렇습니까, 영광입니다」




어째서일까.

이 여자와 있으면 모든 것이 새롭게만 느껴진다.

단순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도, 그저 얼굴을 보는 것도,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것도.




「혹시 말이지」

「예?」

「내가 여기서 너를 빼주겠다고 하면 너는 나를 따라올건가?」

「아니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지?」

「그것 또한 규칙이기에」

「대체 무슨 규칙이 또 있단 말인가」

「비밀입니다」

「흥, 참으로 까다롭군. 까다로운 규칙과 까다로운 여자야」

「많이 듣습니다, 그런 소리」



「그렇지만 설령 내가 빚을 다 갚아 준다고 하더라도?」

「...괜한 기대는 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괜한 기대일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 아는 법이다」




나는 어째서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종종 꿈을 꾸고는 한다.

어둠이 나를 먹으려고 달려드는 꿈을.

벗어나려 하면 벗어날수록 오히려 벗어나지 못 하는 그런 꿈을.

그래서 밤이 싫다.

진짜로 먹힐 것만 같아서.

그렇지만 기분 탓일까.

오늘 꿈에는 그녀가...그리고 빛이...



「네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무엇입니까요, 나으리」

「야자와 니코, 그녀에 관한 질문이다. 그녀에게 남은 빚이 얼마나 되는가」

「그런 걸 왜 물으시는지...」

「이의를 제기하지 마라. 네놈은 그냥 묻는 질문에만 답하면 된다」

「예, 예. 그 녀석 몫의 빚은 별로 남지 않았습니다요. 그 녀석 정도라면 앞으로 두세달 정도만 더 일하면 갚을 수 있겠지요」

「그녀는 잘 나가나 보군」

「인기인입니다요. 개인적으로는 빚을 다 갚아도 계속 일해줬으면 합니다만」



「그런가, 그렇다면 하나 더 묻도록 하지」

「어떤 것을...」

「기생의 규칙...아니, 아니다. 실언을 했군」



이 이상 물으면 언제나 말했던 것처럼 멋 없는 짓이 되겠지.

적어도 그녀가 이 일을 그만두면 그때 다시 물어보자.



그 날 이후로도 나는 그녀를 계속해서 찾아갔다.

빚을 빨리 갚을 수 있도록 통상의 비용보다도 많은 금액을 지불하면서.



「생각해보니깐 손님, 저는 손님의 이름도 알지 못합니다」

「그랬던건가, 그러고보니 자기 소개를 하지 않았었군. 내 이름은 마키, 니시키노 마키야」

「니시키노 마키님입니까...좋은 이름이네요. 그것보다 더 이상 원래의 제 이름을 묻지 않으시는군요」

「의미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깐」

「의미가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이신지?」



「너의 진짜 이름이 어떤 이름이건간에 그것은 너를 이렇게 만든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겠지? 그렇다면 나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이름이다. 내가 알고 있을 너의 이름은 야자와 니코, 그것으로 족하다. 아니면 니시키노의 성을 받게 해줄까?」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니시키노님」

「마키라고 불러도 된다」

「목이 달아날 테니 그럴 수는 없지요」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맹세하지」

「아뇨, 니시키노님이 아니라 니시키노님을 따르는 자들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저는 니시키노님을 홀리는 해충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겠지요」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만 기다려라」

「무슨 소리신지요」

「그때 가서 말해주지, 기대하고 기다려라」

「기대하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조금만이라고 하니 말하는 건데 저도 곧 빚을 다 갚아 갑니다. 일주일 정도만 하면 이젠 이 일도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가...그럼 고향으로 내려가는가」

「아니요, 고향에 내려가도 별 볼일 없을테니 그러지는 않을겁니다」

「그럼...아니, 아니다. 이것도 그때 가서 말하도록 하겠다」

「오늘따라 비밀이 많으시군요」




담뱃대를 물고 여느 때처럼 애매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가 따라주는 술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매일같이 무료한 일상에서 그녀와 마주보고 있는 이 순간만이 살아있다는 실감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조만간에 이런 느낌을 계속 얻게 될 것이다.




「니시키노님, 이것을」

「이것이 무엇인가」

「편지입니다. 지금은 열어보지 마시고, 다음에 저를 만나게 되면 봐 주세요」

「지금 보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가」

「비밀입니다. 그저 소녀의 간곡한 부탁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알았다. 그 말 대로 하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무슨 할말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오, 아닙니다. 말이 헛나왔습니다」



그런 말을 끝으로 그녀가 따라주는 술을 다 마시고 방을 빠져나온다.

아마도 다음은 이런 관계가 아니라, 다른 관계로 만날 수 있겠지.

편지의 내용은 그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도록 하자.



「니시키노님.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응?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아니오, 잘 가시라고 했을 뿐입니다」

「실없기는...아까도 그런 소리를 했을텐데」

「예. 아마도 달빛이 너무 좋아서 취한 것 같습니다」

「나는 너한테 취한 거 같지만」

「과찬이십니다」




시간은 흐른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난 지도 일주일 가까이 흘렀다.

그리고 이쯤 되면 슬슬 다 갚고 그만뒀겠지 하고 생각했기에 그녀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셨습니까요, 나으리」

「음」

「유감스럽게도 나으리가 매일 찾으시던 그 애는 이제 없습니다요」

「아아, 그렇겠지. 그렇기에 왔다. 설마 벌써 떠난건가? 떠났다면 어디로 떠났나?」

「그, 그게...그...」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빚을 다 갚고 떠난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거면 이렇게 망설이지 않는다.

그런 생각에서 도출된 끔찍한 가설이 내 머리 속을 잠식한다.



「어디로 갔는지 말 해라. 말 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영원히 말 못하는 시체로 만들어주지」

「아, 아, 아, 알았습니다요! 실은...죽었습니다요」

「........뭐?」

「그게...어제인가 빚 변제가 끝나서 좋아할 줄 알았더니 그러지도 않고, 말없이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약을 먹고 죽었습니다요」

「농담 하지 마라, 그녀가 그럴리가」

「농담이 아닙니다요! 아직까지도 시체도 못 치우...」

「안내해라」

「예? 어디를 말입...」

「그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지금 당장!」

「예, 예! 예!」



부들거리면서 걷는 포주 녀석을 따라서 그녀가 있다는 곳으로 걷는다.

이런 건 농담일거다.

그녀는 장난을 좋아했었으니깐.

지금도 내가 가면 놀래켜주려고 준비하고 있겠지.

그래, 그래야만...



「...니코」




하는데 나의 눈 앞에 누워 있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이미 죽었다는 것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뜩이나 하얗던 피부는 더욱 더 새하얗게 질린 채로, 내가 좋아하던 그 눈은 더 이상 뜰 일이 없을거라는 듯이 굳게 닫혀 있었다.




「나가라」

「예?」

「나가라고 했다」

「하지만...」

「나가!」

「예, 예!」



황급히 뛰쳐나가던 녀석이 자빠져서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런 것 보다도 지금의 나는 그녀가 신경쓰였다.

어째서, 어째서...이렇게 되어있는 거냐.

내가 원했던 것은 이렇게 보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손님과 기생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써 널 보고 싶었다.

이런 모습의 널 보고 싶었던 게 아니란 말이다.




「왜 이래야만 했던 거냐...」




그녀의 차게 식은 얼굴을 쓰다듬다가 불현듯 그녀가 나에게 건네 준 편지가 떠올랐다.

설마 그것은 유서였던 것인가.

그때부터, 아니 그전부터 그녀는 죽을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 혼자서 들떠있던 것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품에 보관해 둔 그녀의 편지를 꺼내 읽어 본다.




『니시키노님.

 이런 식으로 인사를 전하게 되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도저히 마주보고 인사 할 자신이 없었기에 이렇게 하게 되었습니다.

 니시키노님을 처음 보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도 나 처럼 외롭구나, 하고.

 저처럼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데도 외로워 보이는 당신을 보면서 저는 내심 안타까웠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외롭게 만들었는가 싶어서.

 그렇기에 당신에게 다가가려고 했습니다.

 외로움이라는 걸 잊게 해드리고 싶어서.

 그렇지만 그것은 저에게는 실수였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기생으로써 실수였습니다.

 일전에 제가 말했던 기생으로써의 규칙을 기억하시는지요.

 기생으로써는 여러 가지 규칙이 있지만 어떤 규칙보다도 가장 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손님을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 규칙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니시키노님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을 사랑하게 되면 될 수록, 입장의 차이라는 것이 무겁게 다가온다는 것을.

 당신을 사랑하게 되고, 저는 처음으로 기생인 자신의 처지를 싫어하게 됐습니다.

 팔려와서 처음 몸을 팔게 된 순간에도 가족을 위해서라며 스스로를 설득하고 납득하면서 지냈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요.

 니시키노님이 저를 좋아하신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저도 당신을 좋아하기에, 그리고 같은 여자이기에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저는 당신과 같은 미래를 볼 자격이 없는 여자입니다.

 더럽혀진, 씻어낼 수 없는 더러움을 가진 여자입니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당신이 좋습니다.

 어딘가로 떠난다고 해도 당신을 좋아한다는 마음만은 사라지지 않겠지요.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지금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더욱 더 괴롭게 느껴질 겁니다.

 저는 겁쟁이입니다.

 아무리 강한 척을 해도 근본적으로는 겁쟁이입니다.

 그렇기에 도저히 그 괴로움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떠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이렇게 드리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니시키노님을 좋아하게 된 건 제 별 볼일 없는 인생에서 유일한 자랑거리였습니다.

 안녕입니다.

 아니, 안녕. 마키짱(ちゃん)』




「니코...」



더 이상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할 그녀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눈에서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지만 닦아 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계속.

혹시 우리가 이런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만났다면 이렇게 될 일은 없었을까.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니코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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