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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단편

고등학교 선생님 에리

에리에게 학교 공부란 쉬운 일이었다. 언제나 철두철미한 성격을 가진 그녀이기에 하루하루는 계획된 삶이었고 학교생활도 어느 정도 짜인 틀 사이에 있었다. 그래도 단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뮤즈 멤버들을 통해 경험하며 겪는 일들도 다양해졌다.


에리가 얻는 것이 있다면 다른 멤버들도 얻는 것이 있었다. 에리의 성격은 우미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면을 가진 멤버가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에리에게 의존하고는 했다. 3학년이기도 하고, 공부도 워낙 잘했다.


에리가 처음 그 질문을 받은 것은 여름이 찾아올 때쯤 학교의 모든 일과가 끝난, 온전히 뮤즈 멤버들끼리 남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던 때였다. 대부분 당연히 그들의 이야기는 라이브나 앞으로 활동의 방향에 대한 말이었다. 그것도 에리와 우미가 이끌어가는 면이 없지 않았다.


평소와 같은 그 장소에서 긴 책상 주변 의자에 둘러앉은 그들 중에 유독 하나요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언가 고민이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에리가 그것을 간파하고 몇 번 질문이나 말을 걸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기에 주위 멤버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에리는 알고 있었다.


“하나요, 그러고 보니 곧 시험이지?”


에리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았다. 하나요는 분명히 시험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스쿨 아이돌 활동에서 전혀 부족함 없는 하나요가 고민할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런 자리에서도 티가 날 만큼이라면.


“어? 응, 2주 뒤가 시험이야.”


작고 하늘하늘한 말씨가 작아지며 목소리를 더 내었다. 그리고 몇몇 멤버는 그로 인해 시험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같았다.


“2주 뒤가 시험인가?”


호노카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실 시험은 그녀에게 큰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몇 년 전이 아마 기억나는 그녀의 시험공부 기간이었다. 그래서 그때도 그랬다.


“시험이 곧 다가오는 것도 몰랐어요?”


우미가 훈계와 비슷한 말투로 다그치자 호노카는 그냥 웃어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우미를 더 화나게 하여버렸다.


“아직 멀었잖아?”


우미의 몇 번의 다그침은 다른 멤버들도 긴장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나요는 그녀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되어 더 움츠러들었다. 노조미는 심하게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 반성하게 되었다. 린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 왜 다니는 거에요? 그런 식으로 하면 학생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미안해 우미. 조금 더 할게.”


그러나 우미의 화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멤버들이 나중에는 조금 말려야 할 상황까지 갈 정도로.


“조금 더 해서는 안된다구요!”


그리고 말리는 사람은 역시 에리였다. 우미가 뮤즈 멤버 전체를 관리한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가끔 지나치게 화를 내는 부분이 있었으므로. 그럴 때는 에리가 나서야만 했다. 에리가 아니라면 그런 우미를 막을 사람이 없었다. 마키는 가능할지도 몰랐지만, 에리보다는 가만히 있는 성격이었다.


“그 정도 말하면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말 한 번 하고 나면 항상 조금씩 진정되고는 했다. 우미가 에리를 혼내듯이 해 본 적은 없었다. 비록 호칭은 없어도, 선배와 후배 관계에서 당연하기도 했다. 그 한 마디에 우미는 작게 한 마디만 덧붙이고는 그만두었다. 호노카는 그제야 조금 살 것 같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도 수업 전혀 안 듣잖아요.”


그리고 에리는 무언가를 깨닫게 될 수 있었다. 스쿨 아이돌 활동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공부라는 것을. 그래서 그에 관한 의견도 조금 듣고 싶었다. 입을 열고 끝쪽에 앉은 멤버들도 다 들을 수 있게 대화를 꺼내 보았다.


“그런데 다들 학교 공부는 어때?”


가장 먼저 대답한 것은 니코였다. 갑자기 무거워진 것 같은 분위기에서 그렇게 말할 사람은 니코밖에 없었다.


“뭐, 할 시간이 더 많으면 좋겠지만 스쿨 아이돌 하기로 한 이상 힘든 부분도 있지.”


공부에 큰 비중을 두는 말은 아니었다. 니코에게는,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니코에게는 스쿨 아이돌 활동이 공부보다도,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대답이었다. 에리는 니코의 말이 근거가 충분하다고 느꼈다. 혹시 너무 많은 시간을 써서 학교생활에 반하는 행동이 되면 안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잘 조절하고 있지 않을까?”


코토리는 언젠가 그녀 엄마의 말을 떠올리고 말했다. 오토노키자카의 이사장은 종종 그녀의 딸과 뮤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코토리의 노력으로 그 활동은 이사장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공부에 대한 것도 코토리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이사장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누가 지금 활동이 공부에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어?”


조용히 듣고만 있던 마키가 한마디 했다. 대부분의 멤버는 모르겠다는 듯 갸우뚱했지만 몇몇 멤버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노조미는 특히 그랬다.


“내 생각엔 우리가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도 같이 해보면 어떨까 하는구마.”


그녀는 3학년으로서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이 짧아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곧 사회에 나가게 될 그녀였다. 스쿨 아이돌 활동은 곧 끝이 날 수도 있었다. 적어도 그때까지 정한 바는 그랬다. 그리고 졸업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분명히 3학년 모두에게는 마음 한 곳에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른 학년 멤버들이 전력으로 쏟을 때도 3학년은 졸업 후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가끔 복잡해지고는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 해 본 적 있어.”


에리는 노조미의 말을 받아주었다. 아무래도 공부의 책임을 놓게 하고 활동에만 집중해서 졸업 이후 멤버들의 길이 막막해진다면 분명히 그녀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3학년으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을 하는 것, 그것이 또한 그들의 의무였다.


“노조미랑 요즘 그런 말도 했어. 만약 이번 두 번째 대회에서 우리가 실패한다면 그 이후엔 어떻게 해야 할지. 그다음 러브라이브에는 참가할 수 없고, 우승을 못 한다면 프로 아이돌의 길도 없는 거니까. 그러면 막막해지게 돼.”


2학년과 1학년 멤버들은 사뭇 진지해졌다. 마키와 우미의 눈은 반짝이기까지 했다. 실제로 그들도 느끼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면 일주일도 금방이었고 일주일이 지나면 한 달도 금방이었다. 그렇다면 1년이라고, 혹은 2년이라고 기다려 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나랑 공부해 볼 사람 없어? 3학년이 다 도와줄게. 강요는 하지 않을 거야. 개인의 선택이니까. 그런데 나는 생각을 해 봤으면 좋겠어. 연습 후에 해 보자. 그래도 우리들의 활동은 연습이 먼저니까.”


에리의 말에 가장 먼저 대답한 것은 하나요였다. 2학년과 3학년 멤버들은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린과 마키는 알고 있었다. 하나요가 먼저 나서는 성격이 아니지만 자기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게 적극적이라는 것을. 마키는 당장 그 날 아침 하나요의 모습도 떠올렸다.


하나요는 들어오자마자 자기 책상에 가방을 놓고 공책부터 폈다. 처음엔 뮤즈에 관한 무언가를 하나 생각했지만 마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첫 번째 수업 시간 노트였다. 하나요는 이곳저곳 필기를 해 두고 꼼꼼한 눈으로 쭉 보고 있었다. 여러 가지 색까지 섞어가며 열정적이었다.


“저, 나도 해도, 나도 괜찮겠지?”


“응. 당연히 괜찮아. 하나요랑 그러면 같이 공부할 사람?”


마키는 돕고 싶었다. 전교에서 공부로 이미 유명한 그녀였다. 뮤즈 멤버 이전에 같은 학교 학생으로서, 같은 반 친구로서 이미 돕고 싶었다. 거기다가 오랫동안 함께 해온 동료이기에 당연한 결정이었다.


“나도 할게. 그리고 다들 해보는 게 좋을 거야. 이런 건 모두에게 도움되는 활동이야. 내 경험은 그래.”


마키까지 나서자 다른 멤버들도 속속 합류하기 시작했다. 우미는 호노카를 같이 끌고 왔다.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듣는 내내 우미는 웃고 있었다. 웃음을 감출 수 없어 하는 표정이 멤버들을 웃게 할 정도로 ‘이 기회다!’하는 표정을 계속 짓고 있었다. 호노카는 겉으로는 어떤지 몰랐지만 속으로는 그런 우미가 마음에 들었다.


“호노카, 이제 공부 시작해야죠?”


“너무 그렇게 하면 부담된다구!”


그렇게 호노카도 합류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코토리도 당연한 순서였다. 호노카와 떨어지는 것은 이미 십 년도 넘은 전부터 코토리에게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면 나도 할게!”


린은 이미 합류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한구석에서 니코를 설득하고 있었다. 니코는 사실 가끔은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 동생들을 돌봐야 할 때도 있었다. 엄마가 평소에 늦게 오실 때면 늘 그랬다.


“그래도 좋은 기회다냐. 같이 해보자냐.”


니코는 얼마간 생각이 필요했다. 그녀가 주저하는 동안 노조미가 힘을 넣어주려고 모두 알고 있는 말을 다시 해주었다.


“나도 열심히하겠데이!”


결국, 니코와 린을 제외한 모두가 참가하게 되자 니코도 결단을 내렸다. 니코는 매일 참가하지는 못해도 가끔은 하기로 했다. 그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다만 그녀의 동생들이 걱정되었을 뿐이었다.


“나도 할 게. 린도 같이 할 거야.”


“그런데 니코한테 고민이 하나 있다냐.”


린은 서둘러 멤버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니코의 고민과 시간 분배의 문제였다.


“그러면 니코가 집에 가야 할 때 우리가 같이 가서 하자!”


호노카는 그렇게 말을 꺼냈다. 그녀는 요즘 니코의 동생들을 보고 싶었다. 호노카의 동생 유키호는 많이 큰 나이였고 어린 동생들이 퍽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그런 어린 나이의 아이가 없었으므로 니코의 동생은 그녀 머릿속에 깊게 남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니코는 괜찮겠어?”


에리가 사려 깊은 시선으로 물어보자 니코는 자연스레 동의했다. 눈빛이 부드러웠다. 생각해주는 것이 느껴지고 동생들을 좋아하는 게 느껴져서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면, 내일부터 시작하자.”


우미는 바로 에리의 말을 이어갔다.


“당장 시작해야지, 공부는 미루면 안 돼요.”


그래서 호노카의 표정은 더욱 암울해졌다. 사실 우미가 크게 생각해주는 게 고마운 게 먼저였지만,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것이었다. 이제 집에 가서 쉬는 날은 끝났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호노카 너무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돼. 멤버들이랑 다 같이하는 거잖아.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야.”


코토리는 조금 위로해주었다. 호노카는 그래도 여전히 힘들어 보였다. 코토리 자신은 멤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매우 설레게 느껴졌으므로 호노카도 그것을 느끼기를 바랐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공부는 더 잘 될 것 같았다.


“그러면 내일부터 시작할 테니까, 오늘은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 내일도 바로 공부하는 건 아니야. 어떤 식으로 할지 이야기부터 나눌 테니까. 그리고 마키와 우미가 공부를 워낙 잘하니까 선생님 일 좀 맡아 줄 거지?”


마키와 우미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뮤즈의 선생님이 되었다.


“코토리도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니야. 나는 사람들을 이끌고 나가는 건 잘 못 해서. 그냥 같이 따라갈 게.”


에리는 코토리의 의견도 존중해주었다. 그리고 자기가 맡게 될 일을 소개하고, 그 시간을 마쳤다.


“마키와 우미랑 함께 자신 있는 분야를 가르쳐 줄 게. 선생님이라고는 해도 도와주는 선배 개념이니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여전히 선배 호칭은 금지고.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코토리는 그런 에리의 모습이 선생님 같다고 느껴졌다. 그녀가 부정해도 정말 그녀에게 어울리는 직업 같았다. 순간 머릿속에 선생님이 된 에리의 모습을 상상하니 멋지게 보였다. 한 손에 분필을 들고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유연한 움직임으로 수식을 설명하는, 에리 선생님.


“갑자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집으로 가는 길, 평소처럼 다 같이 걸어가던 중 마키가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말투가 아니었다. 갑자기 시작된 그 자체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가르치는 게 처음이야?”


린이 물어보자 마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뒤로 저녁이 서서히 다가오며 어둑어둑한 주변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가르쳐 본 경험이 있기는 힘드니까.”


“그래도 마키라면, 친구들 많이 와서 물어보고 그렇지 않았어? 나라면 그랬을 텐데.”


하나요의 물음에도 마키는 똑같은 말을 해주었다. 그녀는 린과 하나요를 만나기 전까지는 홀로 공부를 해 왔으므로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본 경험이 없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선생님의 선생님이 되어 줄게.”


에리는 마키의 고민을 듣고 조금 위로해주었다. 자신감 없는 마키의 모습은 거의 처음 본 것 같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도전이지만 그것이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큰 도전임을 알기에, 에리는 그렇게 했다.


“고등학생 선생님 니시키노 마키!”


그러나 마키는 오히려 진짜 선생님은 에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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